모든 의미는 이중적이다. 양면적이다. 양가적이다. 사물 대상을 개념화한 것이 의미라고 한다면, 여전히 개념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사물 대상의 부분이, 그러므로 의미로 환원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기에 욕망과 맥락 문제가 매개되면서 좀 더 복잡해지는 것이지만, 이처럼 의미화되지도 개념화되지도 않은 채 남겨진 부분을 자크 라캉은 오브제a라고 부르고, 미하일 바흐친은 다성성이라고 부르고, 모리스 블랑쇼는 의미의 바깥이라고 불렀다. 나는 내가 하는 말속에 들어있지 않고(자크 라캉), 하나의 목소리에는 다른 목소리가 섞여 있다(미하일 바흐친). 그리고 의미는 의미화되지 않는 것들의 무미건조한 형해(화)일 수 있다(모리스 블랑쇼). 행간을 읽고 이면을 읽는 독서가 요구되는 것도 마찬가지. 표면적인 의미와 이면적인 의미는 다르다.
작가 황용진은 이런 표면적인 의미와 이면적인 의미의 다름과 차이를 더블(The Double)이라고 부른다. 이번 전시의 주제이기도 한 이 제목을 작가는 도스토옙스키의 동명의 소설 제목에서 빌려왔다고 했다. 주지하다시피 도스토옙스키는 내면적인 독백으로 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 왜 내면 독백인가. 외면적인 나와 내면적인 나는 다르다. 보이는 나와 실제의 나는 다르다. 도덕과 윤리, 합리와 상식으로 무장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제도적 장치의 요구에 부응하는 나와 그 요구로 억압된 나는 다르다. 그렇게 억압된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 내면 독백이다. 혼잣말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인데, 아니면 내면의 목소리 그러므로 자기_타자의 목소리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인데, 그러나 혼잣말은 억압된 말인 탓에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가 어떻게 이처럼 혼잣말을 하는지, 억압된 말을 하는지 볼 일이다. 가면이다. 사람들은 가면 뒤에 숨어서 이런 혼잣말을 한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억압된 말을 한다. 알다시피 가면의 어원은 페르소나에서 왔다. 사회적 주체를 의미하고, 제도적 주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가면 뒤에 숨은 얼굴이 아이덴티티(본성)다. 모든 사람은 그가 사회적 동물인 한 이런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중 분열과 자기분열을 피할 수는 없다. 작가의 그림에서 보면, 양손으로 찢어진 가면을 감싸고 있는, 가면에 가려진 얼굴이 보인다. 이중 분열과 자기분열을 증언하는 그림이고, 익명적인 가면에 가려진 자기를 직시하는 자기반성적인 그림이다. 너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양손에 가려진 어두움(아마도 존재론적 어두움)이, 비루함이 연민(그 자체 자기연민을 포함하는)을 불러일으킨다는 모리스 블랑쇼(최후의 인간)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가면의 또 다른 버전으로 작가가 제시해놓고 있는 것이 줄무늬 인간이다.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거나, 아니면 줄무늬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다. 가면이 그의 얼굴이라는 느낌이고(가면도 오래 쓰고 있으면 얼굴이 된다), 아예 처음부터 줄무늬 옷을 입고 태어난 느낌이다. 왜 줄무늬 옷인가. 그림에서 줄무늬 옷은 무슨 의미인가. 가면도, 줄무늬 옷도 그 뒤편으로 개인(차이)이 사라지게 만드는 익명성의 표상 같고, 외부로부터 개인을 감싸고 옥죄는 제도적 장치 같다. 초록색 줄무늬가 청테이프처럼도 보이는데,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제도에 길들어진 인간, 제도의 요청에 자기를 맞추는 인간, 그러므로 어쩌면 자기가 없는 인간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 제도와 개인의 억압적인 관계를 고발하고 증언하는 그림일 것이다.
그런 가면을 쓴 사람들이,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담을 넘는 것도 같고, 집단으로 누군가를 린치하는 것도 같고, 화면 바깥에 있을 누군가를 감시하는 것도 같고, 거부의 손짓을 하는 것도 같고, 오리무중의 추상적인 기호 앞에서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하는 것도 같다. 내면보다 어두운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 것도 같고, 그런, 자기 내면을 쳐다보는 것도 같다.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이 돌무더기처럼도 보이고, 머리에 머리를 잇댄 사람들이 석상처럼도 보이고, 머리와 어깨를 기댄 사람들이 큰 바위처럼도 보인다. 그렇게 그림 속 사람들은 사람이면서 풍경처럼 보인다. 그 풍경 뒤로 해변이 펼쳐지고, 구름이 떠다니고,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사실은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사태, 이란 전쟁과 같은 전쟁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난민을 그린 것도 있을 것이다. 국내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건을 그린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고 세계사적인 사건을 자기만의 형식으로 걸러내 존재론적인 사건(예컨대 저마다의 어둠을 직시하는 것과 같은, 부조리한 실존과 대면하는 것과 같은)이 되게 만든 그림들을 그려놓고 있었다. 작가가 한때 몸담았던 신형상주의 미술을 지금의 버전에 맞게 되 불러온, 사회적인 문제보다는 존재론적인 문제의 층위에 속한 그림들을 그려놓고 있었다.
고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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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진/ 가면 쓴 사람들, 줄무늬 인간
황용진/ 가면 쓴 사람들, 줄무늬 인간
고충환 | 미술평론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