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판정 받으면 수십억짜리 미술품도 수입 세금 ‘0’어느 날 외국 미술가의 작품들이 전시를 위해 항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통관 중 뜻하지 않았던 문제가 일어났다. 엄연히 미술 작품인데도 세관 당국이 예술품이라고 보지 않아 판매가의 40%에 해당하는 관세를 작품들에…
김형진
칼럼 외부칼럼
2011. 07.
‘예술’ 판정 받으면 수십억짜리 미술품도 수입 세금 ‘0’어느 날 외국 미술가의 작품들이 전시를 위해 항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통관 중 뜻하지 않았던 문제가 일어났다. 엄연히 미술 작품인데도 세관 당국이 예술품이라고 보지 않아 판매가의 40%에 해당하는 관세를 작품들에…
김형진
화폭에 펼쳐진 소수민족 유민사 파노라마필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던 1993년께 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이 외교 행낭으로 보내온 전신을 통해 타슈켄트에 사는 고려인 3세인 신순남(Nikolai Sergeevich Shin)이란 화가가 한민족의 유민사(…
최태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많이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화가가 되면 춥고 배고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자녀가 앞으로 미술가가 되겠다고 하면 부모들이 말리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 부모들이 미술가의 인생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 것은 무리가 아니다. 우리가 …
김형진
모처럼의 일요일 나들이, 길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려 주는 화가에게 돈을 주고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면 그 초상화의 저작권은 누가 가질까? 혹은 맘먹고 가족들과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으면 그 사진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초상화를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때 …
김형진
아흔을 넘긴 한 원로화가가 뉴욕에 거주하며 여전히 왕성한 작업활동을 하고 있다. 김보현. 그가 우리에게 낯선 것은 1957년 미국으로 떠난 후 거의 30년 동안 한국과 교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오월,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한 그를 만났을 때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최태만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이중섭전쟁은 인간의 정신은 물론 삶 자체를 파괴하는 가공할 폭력성을 지녔다. 그런 폭력 중 가장 끔찍한 것은 역시 죽음이다. 한국전쟁은 많은 미술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에 앞장섰고 묵죽을 잘 쳤던 김진우는 북한군이 쳐들어왔을 …
최태만
기업이 문화예술에 대해 지원하는 활동이나 지원자를 메세나라고 한다. 이 말은 원래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고문으로 문화 활동을 지원했던 가이우스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대기업 경영자들이 미술품을 사주거나 미술계에 투자해 주는 것은 그동안…
김형진
2011. 06.
1954년 발행된 잡지 '문학예술'의 창간호에 김병기는 1952년 어느 날 부산 남포동의 한 다방에서 낭독했다는 '굿바이 피카소'란 글을 발표했다. 그가 피카소와 결별을 선언한 것은 '타임'에 소개된 '한국에서의 학살' 때문이었다. 당시 다방에 모였던 미술가들에게 미군…
최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