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유족인 딸과 애인인 미국인 소개. 딸 제인리는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좋았을텐데.... (영어로 통역 있었음)"
그리고 이병용의 처남인 김명호 씨 소개
전시담당 이권호 학예사 " 초창기부터 작품이 아니고 1978년 이민을 떠난 후에 작품이다. 1976년 앙데팡당전 작품철거 사건으로 떠난게 아니고 70년대 혼란한 시기에 미국으로 갔다. 전시 제목인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은 작가 본인이 한 말에서 따왔다고..."
질의 응답
질의 1. 이번 전시에서 내세운 "저 평가의 기준이 무엇이냐 ? 지난 번 어느 작가의 전시는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질의 2. 어떻게 찾아냈느냐 ? 기증의사가 있느냐 ?
질의 3. 저평가라는 말에 유의가 필요하다. 덕수궁미술관에서 가졌던 원로작가초대전이나 이런 전시가 계속되어야 겠다.
최효준 덕수궁미술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후 가격이 올라가면 좋은게 아니냐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정정 보완의 이야기를 피력했다.
전시는 크게 3부로 1부 뉴욕 1978-86 뉴욕 이주 초기 '의자' '옷걸이' '배' 연작 / 2부 뉴욕 1987-1994 본격적인 뉴욕생활 '고추' '알' 연작 / 3부 하와이 1995-2001 새로 하와이에서 '삶' '흙과 더불어' '모퉁이 돌' 말기 작품 중심으로 구성했다.
그는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동양과 서양, 정신과 물질, 구상과 추상을 접목을 탐구한 회화, 드로잉 50여점을 전시했다.
점심식사 시간에 53세(1948-2001) 뇌일혈로 쓰러진 작가의 미국생활 이야기가 이어졌다.
상업화랑에서는 외면 당할 이런 전시, 국립현대미술관은 작가 발굴 평가시리즈가 필요하다.

1972년, 대학생이었던 이병용은 '에스프리(Esprit)’의 창립멤버로 미술계에 등단한다. 당시 한국화단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를 생산했던 아방가르드 흐름에 동참한 것이다. 졸업 후 이병용은 ‘에스프리전’, ‘20대 현대작가전’, ‘앙데팡당전’ 등을 통해 현대미술 운동에 적극 가담하며 ‘인간과 물질’이란 테마로 실험적 작품을 발표했다. 그리고 30세가 되던 1978년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뉴욕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그의 작업 방향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또한 어려운 경제 상황도 그에게는 큰 난관이었다. 이병용은 생활을 위해 낮에는 공사판 잡역부, 야채 가게 점원, 택시 드라이버, 식당 종업원 등의 일을 했고, 밤 시간을 쪼개어 창작활동을 이어가야 했으나 더디게 가더라도 기본에 충실하고자 했다...
사진 1. 전시장에 이병용 사진
사진 2. 전시 안내하는 이권호 학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