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과 영국 테이트리서치센터는 4월 4일과 5일에 국제심포지엄을 가졌다.
웰컴 다과
주최측은 이번 행사가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세계사적 사건을 하나의 선상에 놓고, 동시기의 동북, 동남 아시아 미술에서 나타났던 역동적인 움직임과 교류, 상호간에 끼친 유기적인 영향 등에 대한 것이라고 밝혔으며, 각 국가들의 90년대 사회, 역사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이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아시아 미술계의 변화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소개했다.
심포지엄에는 200여 명의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의 진행으로 심포지엄 순서들이 진행되었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의 환영사로 이어졌다.
-이번 심포지엄은 한영교류헹사의 일환
-연말 또는 내년초 테이트리서치센터와 다음 심포지엄 진행 예정
-2019년도에 심포지엄 관련 전시 준비
주디스 네스빗 테이트 국제 및 국내 프로그램 디렉터의 축사가 있었다.

-테이트리서치센터에 대한 소개, 외부 펀딩을 기반으로 2012년 설립
-작년 6월, 모더니즘에 대한 재조명을 연구하고 있는 이숙경이 합류

이숙경 테이트 수석 리서치 큐레이터의 심포지엄 일정 소개로 이어졌다.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1991년 소비에트 연맹 해체, 이데올로기 분열의 해체
아시아에서는
-한국 1987년 6월 항쟁, 1988년 올림픽
-중국 1989년 천안문사태
-일본 거품경제 / 아시아 전역의 민주화 운동,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경제적 성장
지난 30년 간의 아시아 전역의 정치사회변화와 그에 따른 아시아 미술의 변화를 점검하고자 한다.
이불 작가는 1989-1996년 시기의 게릴라퍼포먼스 작업과 그 이후 시기의 설치, 조각작품들을 영상으로 기조연설을 대신했다.
-퍼포먼스 당시에는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인식하지 못 했기에 친구들이 찍은 VHS비디오 정도 뿐이다.
-최근 영상 공개 요청을 받았었는데 영상이 많이 손상되어있어서 이를 복원하는 작업을 했다.
이불 작가
- 이숙경과의 Q&A 중 일부
Q. 대학졸업 후 판단했던 한국의 미술계 상황은?
A. 당시 주류였던 소위 한국적 모더니즘과 민중미술로는 내가 느낀 것들을 표현할 수 가 없었다. 어떻게 나의 언어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하나씩 거절해보자.'라고 결심하고, 재료와 전시장소 등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작업활동을 했다.
Q. 초기 작업을 통해 작가로서의 정체성 수립이 보인다. 당시 동료들이 있었는가?
A, '내가'라는 주어를 사용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라는 개념이 일정부분 녹아들어가 있다. 신기한 것은 말이 없이 서로 지켜보다가 만나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서로 지향하는 바는 달랐지만 기존언어로는 자신의 작품과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질문으로 시작된 것이 뮤지엄이라는 그룹이다.
Q. 본인에게 주어진 한국적 아이덴티티는?
A. 나는 왜 새로운 언어를 찾아야하는가. 내가 표현할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60년대생으로 한국의 압축적인 근대화과정, 피편화된 요소들을 겪으며 나도 그로 인해 파편화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로인해 파편화된 것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사회는 정신분열적이다. 나와 세계를 보는 나의 시각은 이러했다.
- 패널 Q&A 일부
Q. 나는 싱가폴에서 왔고, 우리는 더 파편화되었다.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중에 이런 질문자체가 필요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신은 현재 어떠한 위치에서 작업을 하는가. 처음에는 분명한 '적'이 있어 보였는데, 오늘은 어떤 것에 저항하는가?
A. '나의 원동력은 분노다.'라는 말을 수시로 했었다. 현재는 파편화된 세계, 과잉된 정보로 인해 전체를 바라볼 수 없긴하다. 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가야하나 고민하고 있지만, 출구를 찾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Q. 미술대학의 교육현장에서 느낀 실망을 이야기하였는데 미술대학이 개선할 것은?
A. 졸업 후 미술교육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적은 없다. 다만, 미술을 위해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미술교육’이라는 것으로 불러지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조금 과격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양일간 진행되는 '전시의 역사와 그 이면', '새로운 세대의 출현', '탈식민주의적 조건' 총 3개의 섹션 중 첫날에는 '전시의 역사와 그 이면'을 주제로 발표가 진행됐다.
‘Asian Art Show and Fukuoka Triennale’
이가라시 리나(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큐레이터)
-1979년 후쿠오카미술관의 개관전으로 시작된 아시아미술전의 정착과 그 확장
‘1989년 대지의 마술사’
마크 프란시스(큐레이터)
- 전시의 시각적 토대가 되었던 에세이 영상 상영
- 당시 출품되었던 작가와 작품 소개
-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 돌아보는 '대지의 마술사'

‘아시아 퍼시픽 트리에날레 1993’
러셀 스토어러(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 수석 큐레이터)
- 아시아 퍼시픽 트리에날레의 출발 당시 사회적 상황, 행사의 발전과정
토론의 좌장은 우테 메타 바우어 싱가포르 현대미술센터 디렉터가 맡았다.
패널토론 후 청중석의 질문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