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6일 SeMA-하나 평론상 시상식에 이어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집담회가 진행되었다. 집담회는 김진주 서울시립미술관 수집연구과 학예연구사의 소개로 사업의 역할과 성과의 역사를 되짚으며 시작되었다.

1부는 2019년 수상자인 장지한 비평가가 사업을 통해 발간하게 된 책 『그것이 그곳에서 그때 : 김범과 정서영의 글과 드로잉』의 내용을 발제하고 서동진 평론가가 그에 대한 답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다음은 장지한 비평가의 발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 

이 책이 갖는 차별점은 김범과 정서영의 공개된적 없는 이미지, 텍스트 그리고 작가조차 잊고 지냈던 자료들이 포함되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30여년의 시간이 섞여 있으며 이번 발제에서는 책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김범과 정서영에 대한 비평적인 관습의 언어가 있다. ’사물‘, ’개념‘, ’동시대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것‘, ’그곳‘, ’그때‘라는 대명사를 사용한다. 이 두 축 사이의 간극이 시대의 지배적인 담론이 작품의 내재적 공간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오늘날 담론은 ’동시대‘를 습관처럼 말하는데, 그 담론에 주체와 객체 사이의 경계로서의 작품이라 볼 수 있는 이들의 작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이들에게 세계는 합의된 곳이 아니며, 대리하고 재현할 필요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정서영에게 세계는 세계라고 쓰는 동시에 지워져버릴 것 같은 것이다. 

이 두 작가를 다룰때 ’사물‘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정서영에게 사물은 통역 불가능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사물은 주체의 인식을 둘러싼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 도전한다. 사물이 문제삼는 공간은 근대적인 조각의 공간이 아니라 세계속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공간이다. 따라서 이 불안한 위상은 ’사물‘ 보다는 ’그것‘이라는 대명사로 나타낼 수밖에 없다. 

비평의 역할은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을 읽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들이 마주하는 세계가 주체과 객체가 만나는 경계고 ’그것‘이 주체와 객체의 불확실한 관계를 증언한다면 ’개념미술‘이라는 이름은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둘에게 작품이란 공간은 주체의 생각과 객체로서의 물질 사이의 위상의 높낮이를 분별해내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사건이자 장소이다.

혹자는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있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류세‘, 새로운 유물론에 기반한 ’물질‘, ’객체‘와 같은 어휘들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가 여전히 오리무중의 장소라는 것이 이 두 작가에 대한 사유에 살펴볼 가치를 줄 것이다. 아직은 세계가 아니라 그때를, 객체가 아니라 그것을, 감성이 아니라 그곳을 더 들여댜보아야 할 때다. 또한 비평에 여전히 장소가 있다면 작품의 내재적인 공간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어서 서동진 평론가의 발표가 이어졌다. 발표 제목은 <해석에 찬성한다 : 장지한 비평가의 노트에 대한 응답> 으로 “해석에 반대한다”라고 했던 수전 손택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다음은 서동진 평론가의 발표 내용 요약이다 : 

김범과 정서영은 1990년대 활발히 작품활동을 한 작가들이다. 1990년대는 이전의 미술로부터 동시대 미술로의 이행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행시기에 모두가 같은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반응들을 했기 때문에 이 두 작가를 90년대 작가로 묶는 것에는 어색함이 있다. 

장지한 비평가는 시대의 요구가 아닌 작가의 사유를 들여다보고자 하였는데, 나는 이 대담한 어깃장을 지지한다. 그러나 비평가의 주관적 의지에 의해 작품이란 장소가 마련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은 생긴다. 또한 이 둘의 작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사건을 일으키는 장소이자 경계‘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건으로서의 작품은 이율배반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지한 비평가의 주장은 메타코멘터리에 가까운 비평을 재개하기 위한 대담한 주장이라 생각들고 따라서 나는 해석에 찬성한다.

주관적 의식과 상상의 표현으로서의 작품, 혹은 물질적 객체로서의 작품, 그리고 그 어느것도 아닌 그러한 신비한 위상을 획득하게 된 작품, 즉 주체나 객체로서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작품은 그 둘을 초과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 그러므로 비평가는 앞의 둘에 맞서 한국의 개념미술의 중요한 전환을 증언하는 두 작가의 작업을 빌어 바로 장소, 경계라는 개념을 동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동시대 미술은 고백, 증언, 회상, 트라우마 등의 형태를 쓴 서사들이 범람하고 있고 이는 아카이브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간단히 신자유주의적인 개인화의 효과, 혹은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이는 자본주의 지배의 가공할만한 추상성과 보편성이 제기하는 인식론적이면서도 미학적인 곤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장지한 비평가의 시도는 두 작가를 흔한 비평의 어휘에 가두지 않고 1990년대라고 하는 이행적 시기에 경험의 세계들이 분열되어 있는 방식과, 그 경험들의 변형을 우리가 어떻게 미적인 형태로 드러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천착했던 작가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여겨진다.






2부는 2019년 수상자 이진실 비평가의 출판물을 놓고 이진실 비평가와 김화용 작가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진실 비평가는 3회의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사랑과 야망』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이진실 비평가는 2016년 이후 한국 페미니즘에 붐이 일었으나 실질적으로 그 사이에서 문자화되지 않은 여러 이야기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해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고 기록함으로써 페미니즘에 대한 지형을 기록해보고자 하였다.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은 김홍희, 양효실, 김현주와 같은 이른바 선배 세대들로 구성되었다. 두 번째 라운드테이블은 2000년대를 관통하면서 페미니즘 작업을 지속해왔던 정은영, 흑표범, 장파 작가와 함께 고민되는 부분들과 소회를 나누었다. 세 번째 라운드테이블은 비평가인 김정현, 남욱, 유지연과 함께 했다. 특히 세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재현‘에 대한 문제들과 비평의 역할과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화용 작가/기획자는 이 책의 첫 번째 독자로서 자리에 함께 하였다. 그는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에서 선배 세대가 나눈 이야기들로부터 그 당시 같은 사건을 바라보던 (지금보다)어린 나의 시각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로 인해 선배 세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느끼고 나와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두 사람은 2016년 이전과 이후의 페미니즘(미술)에 대한 기억을 나누며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페미니즘(미술)의 역사를 짚어나갔다. 이런 면에서, 이 둘의 대화까지도 책의 구성요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황수현 vmflxlzhzh1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