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TRACE》
전시 기간 : 2022.02.17.-2022.04.16.
전시 장소 : 갤러리 JJ
관람 시간 : 11:00-18:30(화-토)/월요일, 일요일 휴관
강남구의 갤러리 JJ는 2022년 새해 첫 전시로 김현식 작가의 신미경 작가의 2인전, 《흔적 TRACE》를 2월 17일부터 4월 16일까지 진행한다. ‘흔적’이라는 키워드로 묶인 이들은 물질적 질료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이어오면서, 일상과 예술 동서양, 시공간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선보인다. 두 작가는 모두 질료와 형상, 물질과 정신 사이를 관통하는 시간성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성질을 지닌 물성을 강조함으로써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쳐나간다.

전시 입구

전시 전경

전시 전경
먼저, 김현식 작가는 보이지 않는 본질에 집중하여, 절대 공간을 추구하는 명상적이고 시적인 작품을 강조한다. 그는 30년간 회화 평면과 에폭시 레진(Epoxy-resin)의 물성을 연구해온 작가이다. 에폭시 레진의 투명한 물성은 작가의 손을 거쳐 평면 속에 고요하면서도 빛과 기운이 충만한 깊은 공간을 창조한다. 이때 작품은 평면 속에 공간을 담아내면서 회화의 경계를 확장시키게 된다.
작업 방식은 다음과 같다. 평면에 레진을 굳히고 송곳을 사용하여 일직선의 선들을 촘촘하게 그어 나간다. 그리고 그 위에 안료를 바른 후 닦아내면 그어진 홈에 색이 채워지며 색선이 된다. 이를 굳히고 다시 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 겹겹의 레이어 그 위에 자연스럽게 쌓이게 된다. 결국 선과 색의 단순한 구성으로 된 단색의 화면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공간으로 이어지고 작가가 의식적으로 그은 선들은 통제할 수 없이 깊게 빨려 들어간다. 이제 레진이라는 물질은 반사와 통과를 거듭하는 빛의 상호작용을 유도하고, 심해와 같이 아름답고 깊은 명상적 공간을 형성하게 된다.
김현식 작가의 작품은 매끈하면서 투명하고 보는 위치에 따라 빛과 색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표면 안에는 또 다른 공간이 존재한다. <현을 보다>는 이러한 작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회화 속 투명한 미지의 공간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현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이때 평면 속 깊은 공간은 끊임없이 현전과 부재 사이로 미끄러지면서 도래할 수 없는 기원의 흔적을 향하고, 이것을 작가는 시각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김현식, <Who likes yellow color?>, 2022(왼), 김현식, <玄을보다>, 2022(오)

김현식, <거울 Mirror>, 2021(왼), 김현식, <Who likes red color?>, 2022(오)

김현식, <玄을보다>, 2020(왼), 김현식, <玄을보다>, 2022(오)
반면, 신미경은 1988년부터 비너스 조각상을 비롯한 서양 고전 조각상, 불상, 도자기 등을 비누로 빚어내는 ‘비누 작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25년간 조각의 재료를 비누로 하여, 풍화되는 유물의 형태를 재현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견고하고 불변할 것 같은 절대적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고 해체시켰다.
이번 전시에서 신미경 작가는 고대 조각상이나 도자기 같은 구체적인 형상에부터 평면적인 형태와 추상적인 조각적 질료로 나아가는 작품의 흐름을 보여준다. 기존의 <번역>시리즈로 대표되는 비누 조각은 현실의 원작을 재현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비누를 직접 사용하게 함으로써 ‘비누’라는 조각의 질료가 드러나게 하는 작업이었다. 이어 고대 유적지를 연상시키는 비누 설치작업 <폐허 풍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비누 재료의 물성이 건축적 환경 속에서 드러나며, 이것이 조각의 질료로써 풍화되고 소멸되는 흔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번 전시의 비누 평면 시리즈는 비누의 자연스럽게 갈라진 선과 질료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신미경 작가의 새로운 시도도 눈에 띈다. 최신작, <엡스트랙 매터>시리즈는 비누 작업에서 선회하여 작가가 2021년에 발표한 ‘제스모나이트(Jesmonite)’매체 작업이다. 제스모나이트는 레진의 대안으로 개발된 무독성 수성아크릴 레진을 의미하는데, 작가에 의하면 이 시리즈는 “회화의 형태를 띤 납작한 조각”이다. 이들은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흔적과 풍화자국에 기인하여, 고대 벽화나 오래된 건축물의 일부를 떠올리게 하는 비정형의 평면 조각들이다.
<앱스트랙 매터>는 필연 대신 우연, 형상 대신 질료를 내세운다. 우선 <앱스트랙 매터>를 제작하기 위해, 작가는 쓸모를 다한 고무판이나 스티로폼, 유리판 등을 주형으로 제스모나이트로 캐스팅을 하였다. 이때 제스모나이트에 각종 재료를 섞어 다양한 질감을 표현할 수 있는데, 이들이 섞이면서 예기치 못한 효과들을 발생시키게 된다. 작가는 이를 다시 그라인더로 평평하게 갈아낸 후 오래되어 부식된 것처럼 보이는 흔적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우연성이 작동하는 가운데 물질은 추상적인 형태를 이루어나가고, 시간의 감각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신미경, <Abstract Matter 003>, 2020(왼), 신미경, <Abstract Matter, 0024>, 2020(중앙), 신미경, <Abstract Matter 0049>, 2021(오)

신미경, <Abstract Matter>, 2020-21

신미경, <Petrified Time>연작, 2021
물론, 기존의 비누 작품을 발전시킨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신작 <화석화된 시간> 시리즈와 도자기와 조각상에서 작가는 비누 위에 금박과 은박을 정성껏 올리거나 세밀화를 그린다. 이처럼 지속할 수 없는 것 위에 공을 들이는 행위는 사라지는 물질 위에 가치를 부여하는 유물을 상징하게 된다.
레진을 굳히고 다시 긁거나 비누를 조각해 나가는 행위는 ‘흔적’을 남긴다. 이번 전시에서 신작을 중심으로 두 작가가 그려나가는 흔적을 추적해보고, 물질적 질료의 다양한 변주를 경험해 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윤란 rani75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