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
2025. 9. 3 – 2026. 2. 1
아트선재센터


간담회가 열린 한옥정원


흙으로 봉쇄된 아트선재센터 출입구

아트선재센터는 1995년 미술관 옛 터에서 처음 열린 전시 《싹》의 30주년을 맞아, 9월 3일부터 2026년 2월 1일까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아르헨티나-페루 작가인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첫 한국 개인전으로, 미술관 건물을 하나의 조각적 생태계로 전환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로비와 다목적실을 비롯한 모든 부대시설까지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한 이번 전시로 인해, 지난 2일에 열린 기자간담회는 기존 실내 공간이 아닌 한옥정원이라는 야외공간에서 진행되었다. 간담회에는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작가와 전시를 기획한 김선정 예술감독 및 조희현 전시팀장 등 전시 관계자들이 참석하였으며, 남서원 큐레토리얼 어시스턴트의 전시투어 후 작가와의 큐엔에이로 이어졌다. 세계 각지 비엔날레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쌓은 작가의 대형 설치 작업이자 건물 전체를 활용한 대규모 프로젝트인만큼 기자들의 뜨거운 관심이 쏠린 현장이었다.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작가

비야르 로하스는 인류가 직면한 현재와 미래의 위기 속에서 다양한 생명체와 그들이 맺는 복잡한 관계를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미술관을 보존의 공간이 아닌, 비인간과 포스트휴먼, 합성 존재들에 의해 분해와 변이, 계승이 일어나는 야생적이고 불안정하며, 관객의 시선을 전제하지 않는 지형으로 바라본다. 


전시 전경



전시장과 복도, 계단, 화장실, 극장 등 아트선재센터의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전관에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지난 30년간 아트선재센터에 축적된 제도적 장치와 구조를 해체하였다. 미술관 전체는 긁혀진 월텍스트, 비닐로 덮인 극장 등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낯선 미래유적지를 연상시킨다. 기존 출입구는 흙더미로 봉쇄하고 흰 벽면과 가벽은 철거하여 건물의 콘크리트 골조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등 과감한 해체를 시도했으며, 비상구, 조명 등과 같은 작은 디테일까지 작가는 개입하여 미술관의 제도적 장치를 전복하려 했다. 또한 전시장의 온도와 습도 장치를 의도적으로 멈춰 외부 환경의 변화를 수용하고, 흙, 불, 식물 등 가공되지 않은 자연 요소를 내부로 끌어들여 제도적 공간과 지구 생태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상상의 종말 Ⅵ>, 2024, 가변크기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엘 핀 데 라 이마히나시온 Ⅲ (상상의 종말Ⅲ)>, 2024, 95x160x160cm

이번 전시는 비야르 로하스가 2022년부터 이어온 연작 <상상의 종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괴하고 혼종적인 조각들은 인류가 멸종한 먼 미래에서 온 듯한 낯설고 서늘한 기운을 풍긴다. 이 두 점의 조각들은 작가가 직접 개발한 ‘타임 엔진(Time Engine)’을 통해 제작되었다. 타임 엔진은 비디오 게임 엔진과 인공지능, 그리고 가상 세계를 결합한 일종의 디지털 시뮬레이션 도구로, 정치적, 사회적 조건들을 작가가 입력한 후 상처입은 형상들로 변해가는 과정 중의 한 순간을 물질화하는 작업이다. 


<상상의 종말> 연작 설치 전경 


김선정 예술감독

인류의 지속 가능성이 위태로운 현 시점에, 비야르 로하스의 작업은 멸종과 계승 사이의 경계적 공간에 존재하며, 인간과 인공지능이 협력하여 행성적 규모에서 함께 의미를 만들어가는 ‘협업적 상상’에 대한 실천으로서 전개된다. 

작가는 전시 제목에 관해 “적군의 언어에서 적군은 우리를 둘러싼 타자성의 언어적 발현이며, 언어는 인간이 2만 년 전부터 협업과 협동을 통해 의미를 생성해온 방식을 보여준다”며, “우리는 타자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독립적 존재로는 의미를 만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협력과 관계 속에서 계속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라고 전했다. 

전시는 붕괴와 진화, 재생의 순환 속에 놓인 세계로 관객을 초대하며, 이곳에서 촉발된 미지의 감각과 사유를 통해 우리가 현실로 받아들이는 세계의 구조를 낯선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며, 기존 미술관 경험과는 다른 몰입적 체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