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사에게》
2026.03.26-07.26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모음동 전시실1, 2, 아카이브라운지1, 2

참여작가 : 강동주, 구동희, 남화연, 노송희, 박지호, 백정기, 성능경, 전소정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모음동 전경

인공지능(AI)이 수백만 권의 도서를 순식간에 학습하고, 단 한 번의 질문으로 모든 지식을 요약해 주는 시대. 인간의 능동적인 정보 탐색 과정이 효율성이라는 명목하에 자동화되고 있는 지금,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정보와 현실의 관계를 되묻는 기획전 《알렉사에게》를 개최했다. 오는 7월 26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강동주, 구동희, 남화연, 노송희, 박지호, 백정기, 성능경, 전소정이 참여해 19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50여 년간의 정보 인터페이스 변화를 추적한다.

전시는 류혜민 학예사의 전시 소개 후 성능경 작가의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성능경 개막 퍼포먼스 전경

성능경은 자신의 작품 〈현장 6〉을 배경으로 기존의 〈시축문 불 부채질〉과 〈신문 퍼포먼스〉에 더해, 솜베개를 이용해 관람객과 직접 접촉하며 ‘해피’, ‘헬스’ 등을 외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성능경 작가가 자신의 퍼포먼스에서 사용한 부채를 불태우고 있다.

전시 제목인 ‘알렉사’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려 했던 고대 알렉산드리아도서관과 현대의 대화형 AI플랫폼의 명칭을 동시에 가리킨다. 전시는 최근 AI 기업들이 중고 서적을 대량 구매해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는 현실을 언급하며, 정보 탐색이 ‘질문-답변’의 간소한 행위로 압축되는 현상에 경종을 울린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류혜민 학예사는 “정보 인터페이스가 야기하는 제약을 창작의 조건으로 받아들인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관객들이 정보와 현실 사이의 미로 속에서 능동적으로 길을 찾는 방법을 고민해 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소정, 〈유령들〉, 2017,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0분 30초

동료 작가 시리엘과 편지와 이메일을 동시에 주고받았던 경험에 기반한 작업.
상대방의 고향에 엇갈리듯 머무르며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서로에게 전달하는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유년기의 추억처럼 장소에 깊이 묶인 기억을 먼발치에서 되돌아 본다.

(앞) 남화연, 〈코레앙 109〉, 2014,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15초
(뒤) 남화연, 〈동방박사의 경배〉, 2015,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1분 32초

〈코레앙 109〉는 직지심체요절을 관리하기 위해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붙인 고유번호.
작가는 수집가에서 국가 아카이브로 이어지는 사물 이주 경로를 현재 그것이 위치한 물리적 장소의 역사와 교차시킨다.
〈동방박사의 경배〉는 평균 76년을 주기로 지구에 접근하는 핼리 혜성을 지표 삼아 서로 다른 시각 체제의 기억과 기록을 교차시키는 작업

강동주, 〈빛 드로잉〉연작, 2013,  종이에 먹지, 30×122cm(26), 플랫폼엘 소장

강동주의 수행적 드로잉은 도시의 표면을 흝으며 수집한 지표들의 배치를 통해서 비가시적인 운행의 궤적과 허공의 질감을 강조한다.

전시는 이메일 인터페이스의 친숙한 형식을 빌려 ‘보낸 편지함’(전시실 1)과 ‘받은 편지함’(전시실 2)으로 나누어 구성됐다. 전시실1의 ‘보낸 편지함’은 과거에 발신한 정보를 다시 열어보는 성찰의 공간이다. 성능경, 전소정 등 작가들은 신문의 편집 구조나 디지털 지도가 실제 현실을 어떻게 조건화하고 왜곡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디지털 아카이브가 물리적 거리를 지워내는 과정에서 감춰진 ‘인식의 지연’과 ‘데이터의 소실’을 비평적인 시각으로 환기시킨다.

백정기 '능동적인 조각' 연작


백정기는 정보를 매개하는 장치로서 유사 공공조각의 행위성을 부각시키되, 형태나 스케일의 왜곡을 통해 원본 조각과의 거리를 표지


전시실2의 ‘받은 편지함’은 끊임없이 유입되는 정보의 편린들을 수집하고 재구성하는 대안적 아카이브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백정기는 역사적 기념비를 정보 송수신기로 재해석하고, 강동주는 도시의 시공간성을 고유한 수행적 규칙으로 채집한다. 이는 이미 구조화된 정보의 체계를 해체하고, 기존 아카이브가 포착하지 못한 시대의 지형도를 다시 그리는 실천적 작업들이다.

전시는 미술아카이브 존재 의의를 일깨운다. 단순한 유물 보존을 넘어, 정보가 어떻게 기록되고 유통되며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는지를 연구하는 ‘살아있는 아카이브’로서의 역할을 드러내고 있다. 전시는 관객들에게 수동적인 정보 소비자가 아닌 주체적인 기록자가 되어 볼 것을 권유하며 깊은 울림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