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 눈물, 순교 그리고 삶의 기술》
2026.4.2-4.23
ARK CORE
한국 현대 미술의 허리층을 받치고 있는 이영수(b.1974) 작가가 6년만에 서울 아크코어(ARK CORE)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전통 동양화의 절제미와 팝아트의 대중적 감수성을 절묘하게 병합해온 작가의 미드 커리어(Mid-career) 정점을 보여주는 자리다.

동양화의 골조 위에 세워진 팝아트의 집
이영수는 홍익대학교에서 한국 수묵화 운동의 거장 송수남 교수와 한진만 교수를 사사하며 동양화의 전통 화론과 기법을 탄탄하게 익혔다. 그의 초기작이 묵법의 발묵 효과와 절제된 화면 구성에 집중했다면, 현재의 작업은 그 엄격한 토대 위에 '만화적 드로잉'과 '팝 감수성'이라는 현대적 외피를 입힌 형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면을 가득 채운 무수한 '망점(Dot)'들이다. 기계적인 인쇄물의 망점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붓으로 하나하나 찍어낸 이 점들은 모양도, 질감도, 방향도 제각각이다. 이는 수행적 태도로 작업에 임했던 동양 회화 전통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그 결과물은 지극히 현대적인 캐릭터나 일상의 풍경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이영수만의 특수성이 발생한다.

〈경제를 위한 순교〉, 2022, 캔버스에 아크릴, 60.5×72.5cm
‘삶의 기술’로서의 예술: 슬픔을 통과하는 방식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눈물, 순교 그리고 삶의 기술》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압축한다. 그에게 예술은 거대 담론을 설파하는 도구보다는, 가족과의 사소한 대화,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를 포착하는 '관찰의 기록'이다.
정연심 미술사학자는 그의 작업을 '일상 언어처럼 구사하는 생략의 미학'이라 평했다. 동양화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만화적 생명력으로 치환한 이영수의 화면은, 억지로 미학적 깊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지의 즉각성을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건다. 아이를 키우고 사회를 보듬으며 단단해진 작가의 시선은 과거의 날카로운 비판성을 넘어, 이제는 슬픔과 기쁨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여유'로 진화했다.

[Special Interview] 작가 이영수와의 대화
Q. 〈경제를 위한 순교〉(2022)는 다른 작품에 비해 다소 무거워 보입니다. 어떤 배경이 있을까요?
A. 50대를 지나니 주변에 삶의 굴곡을 맞은 이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가까운 지인 중에 실직으로 인해 술과 담배를 계속 가까이 하는 모습을 보며, 그 인상을 반영한 작품입니다.
Q. 화면을 가득 채운 무수한 망점(Dot)들이 작가님의 특징처럼 여겨집니다. 이 작업 방식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A.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습니다. 동양화의 적묵법(積墨法)과 유사합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만화를 그리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노스텔지아, 즉 향수와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명료한 이미지보다는 픽셀이 깨진 듯한 느낌을 주는 점을 이용했는데, 그 도트(Dot)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도 '내가 강박을 느끼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Q. 전시의 포스터로도 사용된 눈물 시리즈는 어떤 배경인지 궁금합니다.
A. 이번 전시를 열기 전에 가까운 친척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제 스스로 충격이 꽤 컸는데, 그 시기에 눈물 시리즈를 많이 그리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자기치유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낙엽이나 호박 같은 사물에 나이 들어감에 대한 제 인상을 투영시켜 그린 그림들도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A. 고민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당장 방랑 생활을 하거나 외국으로 떠날 계획은 없기 때문에, 당분간은 이런 작업을 지속할 듯싶습니다. 이번 전시는 제 안의 껍질을 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전시가 종료되면 그때 더 깊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웃음)
소통의 미학: 관객에게 건네는 따뜻한 안부
전시장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마치 스마트폰의 이모티콘처럼 직관적이고 가독성이 높다. 대화와 소통이 단절되어 가는 시대에, 이영수의 이미지는 관객에게 '잘 지내고 있나요?'라고 조용히 안부를 묻는다. 비판보다는 공감을, 설명보다는 체험을 중시하는 그의 팝아트는 소비되는 이미지를 넘어 치유의 기능을 수행한다.
전시작 중 '순교', '배려', '인내' 등의 제목을 가진 연작들은 작가가 발견한 일상의 온기를 그대로 전달한다. 복잡하게 재현하기보다 가장 평범한 선 몇 개로 형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그의 능력은 오랜 시간 이어온 화업의 결과물이다.

이영수 작가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기록
이영수의 개인전 《눈물, 순교 그리고 삶의 기술》은 작가 이영수가 지난 30여 년간 지켜온 예술적 절개와 변화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의 붓길은 이제 만화와 팝아트, 수행적 망점 작업을 거쳐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종착지에 닿아 있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예술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이 지루하고도 찬란한 일상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적 기술'임을 나직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 전시는 4월 23일까지 아크코어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