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3일 오후 4시, 리움미술관에서 배영환 작가(1969–2026)의 추모식이 열렸다. 아나운서 손정은이 사회를 맡았으며, 길상사 주지 덕조 스님과 성견 스님의 청혼 의식을 시작으로 동료 작가와 기획자들의 추모사,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의 연주가 있었다. 이번 추모식은 리움미술관과 널 위한 문화예술, 월간미술 등이 함께 마련했다. 


작가의 생전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재생됐다.



배영환 작가는 1990년대 후반 등장해 포스트 민중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았다. 한국의 급격한 근대화가 남긴 흔적과 사회적 문제의식을 작품 속에 담아내며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언어를 구축했다. 조각, 회화, 영상, 공공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플라토, 아트선재센터, 뉴뮤지엄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서 활동했고 국제무대에서도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혔다. 건설 현장에 버려진 나무와 깨진 술병, 유행가 가사처럼 평범한 사물과 삶의 흔적에서 개인의 기억과 공동체의 정서를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냈으며, 소외되고 잊혀진 사람들의 목소리에 끝까지 귀 기울이면서도 그 안에 담긴 온기와 희망을 놓지 않았다.


박찬경 작가.



작가이자 오랜 벗인 박찬경은 '30년 전 일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항상 만날 때마다 웃느라 정신없이 보낸 것 같다'며 고인을 회고했다. 그는 2005년 기획한 배영환 개인전 《남자의 길》을 위해 함께 썼던 글을 낭독했다. 그 글에서 배영환의 작업은 '군인, 정치가, 주먹, 가부장의 남자의 길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서 마주치는, 스쳐 지나가는 남자의 길'이자 '공인되지 않은 문화의 떳떳한 긍정과 사회적 시선의 당당한 무시'로 정의된다. 박찬경은 작가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희비극에 관심을 두었지만, 동시에 성스러움과 종교, 우주와 신비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했다. 성스러운 것 속에서 속됨을 발견하고, 속됨 속에서 거룩함을 찾는 그의 노력이 특별했다고 말했다. 이어 연희동 작업실에서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리며 그와의 추억을 회고했다.

백지숙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음성 메시지로 추모의 뜻을 전했다. 그는 배영환 작가가 2001년 노숙자 지원 시설과 무료 급식소, 고물상 위치 등을 꼼꼼하게 기록한 '노숙자 수첩'을 만들어 무료 배포했던 일, 2006년 충주 어린이들과 함께 풍선 달린 모자를 쓰고 갓길을 행진한 '갓길 프로젝트', 2014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서 수메르 문자 등 사라진 문자들을 황금 오벨리스크에 새겨놓은 작업을 차례로 떠올렸다. 그는 당시 작가가 보낸 이메일을 낭독했다. 


이불 작가


대학 선배이자 오랜 친구인 이불 작가는 고인과의 첫 만남을 회고하며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를 나눴다. 이불 작가는 배영환이 사람을 웃게 만드는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다며, 그와의 대화가 가장 그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안소연 아뜰리에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의 추모사


안규철 작가



안규철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10년 넘게 함께 후학을 양성하며 쌓은 인연을 전했다. 그는 '배 선생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전임교수 이상으로 진심이었고, 특유의 다정함과 솔직함으로 학생들을 격의 없이 대했다'고 회고했다. 안규철은 또한 배영환이 통속적인 유행가와 깨진 소주병의 정서로 미술계의 질서에 응답하면서도, 그 바탕에는 언제나 버려지고 잊혀진 것들, 소외된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시선이 있었다고 전했다. 부조리한 현실에 비판적이었지만 냉소와 분노보다 농담과 유머로 넘어서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도쿄 모리미술관의 마미 카타오카 관장도 음성 메시지로 추모의 말을 전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아시아 작가들이 국제무대에 활발히 등장하던 시기에 배영환과 처음 만났으며, 2012년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의 《Phantoms of Asia》와 2013년 모리미술관 전시에 작가를 초대했다고 밝혔다. 카타오카는 그와 함께한 시간과 작업을 떠올렸다. 


이제임스 대표 


마지막으로 배영환 작가와 마지막 개인전 《So Near So Far》를 함께 준비한 갤러리 BB&M의 이제임스 대표는 2010년 뉴올리언스에서 함께 점쟁이를 찾아갔던 일화를 전했다. 당시 점쟁이는 배영환의 수호천사가 기쁨과 은총을 가져다주는 천사 '하니엘'이라고 했고, 그 말을 전해 듣자 작가는 망설임 없이 'Oh, thank you'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제임스 대표는 배영환 작가를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지만, 동료 예술가부터 컬렉터까지 미술계의 다양한 층위를 넘나드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본질적으로 물질적 성공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고, 마지못해 누리게 되더라도 스스로를 조롱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또한 작가가 젊은 시절 실제로 노숙 생활을 해봤기에 노숙자 수첩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약자에 대한 공감은 가짜가 아니었고 그의 삶 자체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드니 성호 기타리스트



추모식에는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의 연주가 함께했다. 자작곡 'If'와 '레터(Letter)', 스탠리 마이어스의 '카바티나', 김창완의 '청춘',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가 연주됐다. 배영환 작가에게 음악은 작품의 근원이 되는 영감이었다. 《남자의 길》과 《유행가》 시리즈, 마지막 개인전의 마인드스케이프 연작에 이르기까지 음악은 정치와 사회, 인간의 내면을 시각화하는 언어였다.

추모식은 고인이 청춘 시절을 보낸 성북동 길상사의 청혼 의식으로 시작해, 깨진 소주병으로 샹들리에를 만들고 노숙자 수첩을 손수 엮었던 작가의 삶과 예술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배영환 작가를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이 리움미술관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