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30일 오후 2시, 아트선재센터 아트홀에서 함양아 개인전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함양아 작가와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이 참석했다. 작가의 작업 소개에 이어 전시 투어,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강당에서 열린 간담회


이번 전시는 2010년 《형용사적 삶 > 넌센스 팩토리》 이후 16년 만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함양아의 개인전이다. 작가가 2018년부터 전개해 온 장기 예술 연구 프로젝트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의 신작을 중심으로 8년간의 작업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신작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2026)과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2026)를 비롯해 주요 작업들을 함께 선보인다. 전시 기간은 7월 31일부터 10월 4일까지이다.


함양아는 서울과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미국·중국·네덜란드·터키 등 여러 지역에서 거주했던 경험을 토대로 사회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개인과 집단, 사회화된 자연에 대한 작업을 이어왔다. 작가는 간담회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에 관해 설명했다. 함양아는 2014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비극적 사건을 계기로 '작가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렸다고 한다. 고통의 시작점과 개인들의 고통이 본인의 삶에 국한돼 원인을 찾으려 하지만 사실 그것은 개인의 차원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수없이 많은 원인이 만나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는 관계망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작가는 거시적, 미시적 관점에서 관계망을 탐구하게 됐다.


이어서 남서원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의 전시 투어로 이어졌다.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 2026, 8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22분.


2층에 전시된 신작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2026)은 22분짜리 8채널 비디오 설치 작업이다. 거대한 원형 스크린 구조 속으로 관람객이 들어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마주한다. 작가는 인간과 사회, 자연의 관계를 순환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다. 이전 시리즈가 신자유주의 체제 등 거시 서사를 다뤘다면 이번 신작은 미시 서사로 확장한다. 파묘, 장례와 출산 퍼포먼스, 공동체의 일상과 노동, 냉전과 신자유주의의 전개, 팬데믹 시기를 거쳐 AI와 테크 기업들이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게 됐다고 여기는 현재까지 담는다. 마지막에는 물의 이미지가 디지털화되는 장면으로 끝나며, 순환하되 같은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변화하는 구조를 드러낸다.


작가는 원형 구조를 택한 이유에 대해, 파노라마는 원래 19세기 유럽에서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세계를 지배한다는 시각을 드러낸 양식이지만 자신은 그 반대를 지향했다고 밝혔다. 많은 사건들과 인물들이 관계를 맺으며 어떤 세계를 구축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 2019,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2026 리마스터링), 7분.


3층 스페이스2에는 2019년에 제작한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이 전시된다. 복제양 돌리로 시작해 재무부·노동부 등의 팻말이 차례로 등장하며 자유로워 보이는 인간의 활동이 거대한 사회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연필 드로잉과 실제 인물의 영상을 중첩한 무빙 이미지 콜라주 형식으로 1970년대 후반 금융 자유화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의 가속화 과정을 추적한다. 


함양아, 〈잠〉, 2015-2016, 2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8분 40초.


함양아,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 2026, 다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각 5-15분.


같은 공간에 설치된 〈잠〉(2015–2016)은 체육관을 배경으로 피해자, 관찰자, 보호와 통제를 수행하는 사회 시스템을 상징하는 세 그룹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어서 신작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2026)를 볼 수 있다. '디지털 가드닝(Digital Gardening)' 개념에 기반한 다채널 비디오 설치 작업이다. 세계 각지의 참여자들이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사회 이슈를 선택해 자신의 일상과 연결 지은 5~15분 내외의 무편집 영상을 공유하고, 이것이 전시에서 일상생활, 제도, 사회심리, 자연, 과학과 기술 다섯 개 범주의 시각적 서사로 재구성된다. 


함양아, 〈사람은 무엇을 배우나 II〉, 2022, 2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무음, 9분 24초.


그 옆에는 〈사람은 무엇을 배우나II〉(2022)와 〈주림 2.0〉(2023)이 전시된다. 〈사람은 무엇을 배우나II〉는 부모가 쌍둥이 자녀를 무릎에 앉히고 몸을 부드럽게 쓸어주는 스트로킹 기법으로 비언어적 신뢰를 형성하는 장면을 담은 2채널 영상이다. 팬데믹 시절 비접촉이 강제되던 시기에 역설적으로 촉각적 경험을 강조했다. 〈주림 2.0〉은 음식을 매개로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다룬다. 빈 가방을 든 사람들이 줄 서 낮은 입구를 통과해 바닥의 음식을 줍는 장면과 풍족한 식탁이 대조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1층에서는 2018년부터 축적해 온 프로젝트의 개념 지도이자 사유의 지형도가 함께 전시되며, QR 코드를 통해 웹 프로젝트로 연결된다.


(좌) 함양아 작가, (우) 김선정 예술감독


전시 안내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으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선정 예술감독은 아트선재센터와 함양아 작가의 26년에 걸친 인연을 언급하며 '작가의 작업에서 영상뿐 아니라 항상 뒷면,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것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관심이 초기부터 일관되게 이어져왔다'고 평했다. 전시와 연계해 8월 1일 아티스트 토크, 8월 29일 마정연(일본 간사이대학 교수) 강연 〈파노라마적 상상력의 작동 방식〉이 예정되어 있다.

전시 안내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으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선정 예술감독은 아트선재센터와 함양아 작가의 26년에 걸친 인연을 언급하며 '작가의 작업에서 영상뿐 아니라 항상 뒷면,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것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관심이 초기부터 일관되게 이어져왔다'고 평했다. 전시와 연계해 8월 1일 아티스트 토크, 8월 29일 마정연(일본 간사이대학 교수) 강연 〈파노라마적 상상력의 작동 방식〉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거시사와 미시사의 혼합이 어떻게 다층적인 의미에서의 역사를 구축하는지 보여준다. 영상 작업만이 가진 노동집약적인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함양아 작가의 신작을 통해 역사의 적층 방식이 또 다른 의미로 드러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고통은 어디서 시작되고 무엇이 원인인지 명확히 규명할 수 없는 현재, 이번 전시를 계기로 '나'에서 벗어나 좀 더 긴밀하게 세상과 소통하며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질의응답
Q. (국민일보) 2.0과 4.0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그리고 원형 구조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함양아) 2.0은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한 작업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시각이 다소 편협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4.0에서는 모든 사람과 사건과 현상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려 했고, 거시 서사에서 개인의 몸과 일상이라는 미시 서사로 확장됐습니다. 원형을 택한 이유는, 관람객이 그 안에 들어갔을 때 자신이 그 세계 안에 포함돼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광장처럼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Q. (한겨레) 3층의 디지털 가드닝 작업은 기존 작업과 다른 형식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 두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합니다.
A. (함양아) 파노라마가 내가 주체로서 세계를 바라본다는 시각의 양식일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반문했습니다. 그 반문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웹 프로젝트가 만들어졌고,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도 거기서 파생됐습니다. 지식의 아카이브인 위키피디아는 있지만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한 감정의 아카이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업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방향은 앞으로도 함께 이어질 것 같습니다.


Q. (내외방송) 10여 년의 작업 끝에 이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에 나름의 결론이 나왔는지, 앞으로의 작업에서 희망이나 치유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 (함양아) 고통의 시작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5천 년 전 부처님 시대부터 있어온 것이고 아직도 인간이 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표현을 계속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법과 같은 강제적 형식과 함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문화, 예술, 종교 같은 비강제적 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고, 앞으로의 작업에서 그런 형태가 나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