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역 인근 구도심의 옛 여관 건물을 개조한 교차공간818은 도시의 변화 속에서 사라지는 장소와 사람의 기억을 예술의 언어로 기록해온 공간이다.

교차공간818
2023년 개관 이후 재개발을 앞둔 평택역 일대와 성매매 집결지 ‘삼리’의 장소성, 주변부의 역사와 일상을 전시와 포럼으로 다뤄왔다. 이 공간을 이끄는 이정은 대표는 평택에서 나고 자란 큐레이터로, 지역과 공공미술의 관계를 꾸준히 탐구해왔다. 교차공간818의 기획 역시 도시를 예술로 ‘바꾸는 것’보다 변화 속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에 가까워 보인다.
지난 7월 22일부터 8월 5일까지 열린 《그래도 빨래는 한다: 하구에서 사부작》은 이러한 관심을 도시의 장소에서 예술가의 지속하는 시간으로 옮긴 전시다. 강예원, 김규림, 샐리 양, 정다미가 참여했으며, 전시는 “시작하다, 좌절하다, 중단하다, 다시 이어가다, 그리고 지속하다”라는 동사들로 예술가의 삶을 설명한다.
제목은 잭 콘필드의 『After the Ecstasy, the Laundry』에서 출발한다. 특별한 성취나 깨달음 이후에도 빨래하고 밥을 먹는 일상이 이어지듯, 예술가 역시 공모의 선정과 탈락, 전시의 성공과 실패 이후에도 다시 작업실로 돌아간다. 부제 ‘하구에서 사부작’은 서로 다른 물길이 만나는 하구처럼 네 작가가 잠시 한 공간에서 만나고, ‘사부작’거리며 다시 각자의 작업을 이어가는 모습을 담는다.

샐리 양 섹션
샐리 양은 실패와 재생을 생명의 순환으로 보여준다. 시든 노란 장미에서 방울토마토가 자라고, 공모지원서가 쌓인 흙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이 돋아난다.

샐리 양 작품 세부
전시장에서 만난 이정은 대표는 실패한 지원서가 좌절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토양이 된다는 점을 설명했다. 아직 어떤 꽃과 열매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점까지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작가의 삶과 닮았다.

김규림 섹션
김규림은 한국화 재료와 기법으로 물의 움직임을 다룬다. 물결 회화와 함께 작업 과정에서 남은 종이 조각을 모아 만든 ‘물 화석’, 자신의 염원을 담은 종이 염주를 선보였다. 버려질 수 있는 흔적과 부산물을 다시 작품으로 전환하며 결과보다 과정과 시간을 드러낸다.

정다미 섹션
정다미는 작업 공백 이후 다시 그림을 시작하며 어린 시절의 감각으로 돌아갔다. 이정은 대표에 따르면 과거의 방식으로 다시 그리려 했지만 작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던 유년기의 기억에서 다시 출발했다. 유년기 드로잉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새로운 작업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

강예원 섹션
강예원은 미술대학 졸업을 3개월 앞두고 학교를 떠나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생업의 시간을 거쳐 결국 작업으로 돌아왔다. 전시장에는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풍경과 인물, ‘레몬신’, 바람인형, 네온 설치 ‘전시합니다’가 등장한다. 특히 ‘전시합니다’라는 문장은 미술을 그만두려 했던 작가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전시장으로 돌아온 현재를 압축한다.
이번 전시에서 이정은 대표가 주목한 것은 성공한 작가의 서사가 아니다. 완성된 결과보다 중단 이후 다시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시간이다. 이는 교차공간818이 그동안 사라지는 도시와 주변부의 기억을 기록해온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이전에는 사라질 장소를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사라질 뻔했던 작가의 시간을 붙잡았다.
결국 《그래도 빨래는 한다》의 핵심은 제목 속 ‘그래도’에 있다. 좌절했지만 그래도, 멈췄지만 그래도, 선정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시 만든다. 빨래가 삶을 유지하는 반복이라면 작업 역시 예술가를 살아가게 하는 일상의 리듬이다. 교차공간818은 그 작고 조용한 움직임을 하나의 지속으로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