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4일 오전 11시, 스페이스 이수에서 리킷(Lee Kit, 1978-) 개인전 《리킷: 곧 흘러가 버릴 날들을 천천히 곱씹으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리킷 작가와 스페이스 이수 측 관계자가 참석했으며, 작가의 작업 및 전시 소개와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전시 기간은 8월 5일부터 10월 30일까지이다.
설명 중인 리킷 작가
이번 전시는 2019년 《슬픈 미소의 울림》(아트선재센터, 서울) 이후 한국에서 열리는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영상, 빛, 사운드, 텍스트, 회화 등 다양한 매체가 결합된 설치 작업과 산업용 스프레이 페인트를 활용한 신작 회화를 함께 선보인다.
리킷은 홍콩 출신으로 현재 대만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해 프로덕션과 설치를 직접 진행했다. 작가는 작품을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굳이 전시를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감정은 일종의 정치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을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작가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홍콩 민주화 운동 이후 현재 홍콩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것이 창작의 직접적인 동기는 아니라고 한다. 그는 오히려 미술보다 정치와 음악에 더 관심이 많을지도 모른다며 오래전부터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현상들을 걸러내어 자신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 작업이었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공산주의, 민주주의 어느 한쪽에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안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것들을 폭넓게 바라본다. 또한 스스로를 항상 '사이에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화가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같은 작업을 하고, 이 공간 전체를 하나의 회화 작품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칭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전시 제목 《곧 흘러가 버릴 날들을 천천히 곱씹으며 Chewing a day for hours before it slips off》는 닐 영(Neil Young)의 노래 가사와 작가 자신의 노트에서 비롯됐다. 핫도그 하나를 몇 시간 동안 먹는다는 가사에서 영감을 얻었고, 노트에 적어두었던 '화가 났을 때 그날 하루를 곱씹는다'는 문장에서 '화가 났을 때'를 걷어내어 이 제목이 만들어졌다.
전시장 안에는 총 4개의 사운드가 흐른다. 그 가운데 닐 영의 〈Only Love Can Break Your Heart〉가 전시에 무게감을 더하는 역할로 배치됐다. 작가가 직접 연주한 기타 사운드는 뒤로 물러나 있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닐 영의 노래는 서울에서 개최되는 이 전시에서만 사용하기로 했다. 타이베이와 도쿄, 베트남 등 이전 전시에서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맞지 않았다가 이번 서울 전시에서 처음으로 자리가 맞았다고 한다. 2019년 개인전 이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느낀 특정한 인상, 아트선재센터 너머의 높지만 평평한 산과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팀에서 느꼈던 어떤 구슬픔과 참을성, 조용한 감성이 이 노래와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리킷, 〈창문〉, 2026, 창문에 아크릴, 가변 크기.
전시장 정면 유리창에는 여러 색의 아크릴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색면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광과 만나 전시장 내부에 빛과 그림자의 층위를 만들어낸다. 함께 선보이는 회화들은 금속판 위에 산업용 스프레이 페인트를 여러 차례 겹쳐 올려 완성한 것으로, 물감처럼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대신 매끈하면서도 안개가 낀 듯한 인상을 준다.
리킷, 〈기억 속의 피클들/흘겨보는/아포스트로피〉, 2026, 알루미늄에 스프레이 페인트와 파스텔, 프로젝션 반복재생, 150x115x3cm, 영상: 5분 47초.
리킷, 〈1〉, 2026, 스테인리스 스틸에 스프레이 페인트와 파스텔, 150x115x3cm.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는 작품을 어디에 놓을지 미리 계획하기보다는 공간을 느끼며 그때그때 자리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설치했다고 밝혔다. 작가가 스스로를 레디메이드라 여기듯이 회화 작품 또한 순수미술 작품보다는 레디메이드 오브제로 바라봤다. 사회적 구성물인 인간이 자신이 태어난 제도와 사회가 만든 존재의 틀 속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듯, 이 회화 작품들 또한 전시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리킷, 〈댄스〉, 2025, 프로젝션 반복 재생, 사운드, 투명 포장용 테이프, 가변 크기, 영상: 3분 40초.
이번 리킷의 작품과 전시는 전시와 작품의 경계선에서 대상을 어떻게 인지하고 대할 것인가를 논한다. 작가는 스스로 정치와 사회 문제에 거리를 두며 작업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개인이 사회에서 받는 영향,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 발현되는 과정과 결과를 표상한다. 현재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 '외국인'으로 규정되는 리킷(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일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의의가 있다. 모든 것을 언어화할 수 없는 현재,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이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지 경험할 수 있는 장이다.
질의응답
다음은 서울아트가이드와 리킷이 가진 질의응답이다.
Q. 닐 영의 노래를 특별히 이 전시에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리킷) 전시마다 항상 사운드트랙을 준비합니다. 이 노래는 오래전부터 이번 전시의 사운드트랙 안에 있었습니다. 가사 자체는 매우 직접적이지만, 리듬과 분위기, 감정적인 방식이 이 프로젝트에 완벽하게 맞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노래는 아니지만 꽤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Q. 이 노래를 서울에서만 사용하겠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리킷) 사실 타이베이, 일본, 베트남에서도 이 노래를 써보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공간에서는 맞지 않았어요. 서울에서 며칠 전에 시도해봤더니 딱 맞았습니다. 이 노래 없이 전시가 완성됐다고 느꼈지만 뭔가 무게감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이 노래와 영상 속 자막의 성격이 비슷합니다. 자막을 읽지 않으면 그냥 흘려보낼 수 있지만, 읽으면 전혀 행복한 내용이 아닙니다. 슬프고 부서져 있습니다. 닐 영의 노래와 제 작업의 성격이 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이번 전시가 홍콩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는 작업이기도 한가요?
A. (리킷)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저는 어떤 전시에도 홍콩과 관련된 것을 의도적으로 넣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홍콩 출신이기 때문에 일부 요소들이 홍콩과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정치적 이슈를 지역별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저에게 미치는 영향이 홍콩보다 더 클 때도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직접적으로 홍콩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가 홍콩 출신이라는 사실이 일부 요소에 무의식적으로 담겨 있을 수는 있습니다.
Q. 작업과 삶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하나요?
A. (리킷) 저는 작업실이 없고 집에서 작업합니다.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리고, 마스크를 벗고 커피를 마시고, 빨래를 하고, 다시 글을 씁니다. 어떤 의미에서 저는 항상 살면서 동시에 작업하고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제가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임에 가면 저는 관찰자가 됩니다. 나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을 관찰하는 것, 그것이 제가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