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5일 오전, 일민미술관에서 《바이브 에라》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담당 큐레이터 백지수의 전시 투어에 이어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전시 기간은 8월 26일부터 10월 25일까지이며, 일민미술관 2·3전시실 및 프로젝트 룸에서 열린다.


《바이브 에라》 전시실 입구



《바이브 에라》는 이미지를 둘러싼 조건과 환경이 변화하는 지금의 상황을 향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바이브'는 코딩에서 차용한 개념으로, 인간이 느낌과 감각의 영역을 담당하고 AI 같은 기술이 구체적인 현실화 작업을 위임받는 오늘의 방식을 가리킨다. 복제 기술에서 생성 기술로 이미지가 넘어가면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이미지가 범람하고, 대상의 구체적인 면보다 효과적인 인상을 만드는 압축적인 힘으로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이 지금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 추상을 통해 이미지가 변화하는 조건을 면밀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전시 참여 작가로는 박예림, 박정혜, 박현정, 한지형 네 명의 작가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몸, 재료, 기억, 도구를 활용해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어떤 계획이나 경계를 미리 지어놔도 결국 이질적인 것들을 만나 흐려지거나 변화하거나 오염되는 변형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이 전시가 작가들의 작업에서 들여다보고자 했던 지점이다.


한지형, 〈찬란한 삶을 구축하라〉, 2022, 캔버스에 아크릴, 100×80cm


2전시실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업은 한지형 작가의 〈찬란한 삶을 구축하라〉다. 한지형은 이미지가 생성되고 유통되는 방식, 특히 인터넷에서 이미지가 인간의 욕망을 대리하는 측면에 주목해왔다. 소설이나 글을 먼저 쓰고 그 과정에서 후보 제목과 관련 이미지를 수집해 디지털 스케치를 완성한 뒤, 에어브러시로 캔버스에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뿌옇고 경계가 흐려진 이미지는 작가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실제 인간의 눈이 분열되고 중첩된 상으로 대상을 포착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박현정, 〈이미지(237)〉, 2026, 린넨에 아크릴, 먹, 유화, 193.9×1008.9cm


박현정은 2012년부터 작품 제목을 '이미지'에 일련번호를 붙이는 방식으로 작업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이미지(237)〉 신작을 선보인다. 작품이 제작되자마자 사진으로 찍혀 웹에 올려지고 소비되다가 소멸할 수 있는 오늘의 이미지 조건을 고려해, 작품에 거룩한 고유 명사 대신 '이미지'라는 일반 명사를 붙인다. 80번대를 기점으로는 아이패드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소프트웨어에서만 가능한 '실행과 되돌리기(ctrl+z)'라는 조건을 탐구하며, 소프트웨어가 제안하는 형태를 다시 캔버스에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이번 신작은 먹을 캔버스에 흘려 남겨진 궤적의 형태를 아이패드에 불러온 뒤 '평균값' 기능을 통해 새로운 형태를 찾아내고, 이를 다시 캔버스에 유화로 옮기는 과정을 반복해 완성했다.


박정혜, 〈휘묻이〉, 2022, 린넨에 아크릴, 64×97cm


박정혜는 코로나 시기를 기점으로 작업에 식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9년작 〈리스너〉는 그 이전의 작업으로, 작업실 스탠드·전등·가위 같은 도구들을 그린 작업이다. 이후 친구에게 선물 받은 수국을 작업실에서 직접 키우면서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관찰한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식물에서 발견한 색과 면의 변화를 초기부터 다뤄온 종이접기 모티프와 결합해, 머릿속에서 새롭게 분류된 결과물로서의 회화를 만들어낸다. 


박예림 작가의〈잠든 후에 떠났다, 그리고 두고 간〉(2026)과 판화 작품이 함께 전시된 전경


박예림은 버려지거나 잊혀진 장소(테라노라이)에서 발견한 흔적의 형태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의 신작은 답사 장소에서 가져온 고목과 죽은 나무들로 구성된 조각으로, 식물의 구조와 사람의 뼈대 같은 느낌이 결합된 형태가 미술관 바닥과 벽을 타고 올라가며 장소와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한지형, 〈조상의 대를 이어(마지막 자장 노래)〉, 2026, 캔버스에 아크릴, 220×750cm


프로젝트 룸을 마무리하는 것은 다시 한지형의 대형 신작 〈조상의 대를 이어(마지막 자장 노래)〉다. 큐레이터는 작가와 파노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작품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파노라마는 인간의 눈을 초과하는 광대한 자연을 담는 화면이었지만, 지금은 핸드폰의 파노라마 기능으로 압축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면은 필연적으로 깨지고 왜곡된다. 풍경을 담아내려는 욕망이 현실을 순수하게 담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바가 창출된 화면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작업은 여러 장면을 부자연스럽게 이어 붙인 형식으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 없는 묵시록적 풍경을 담고 있다.


1층 《오프 더 화이트: 무늬와 정보》전시 전경


또한, 일민미술관 1전시실에서는 《오프 더 화이트: 무늬와 정보》(8월 14일–10월 18일)가 함께 열리고 있다. 올해로 건축 100주년을 맞이한 일민미술관 건물을 주제로 한 릴레이 전시로, 이번 전시에는 곽이브와 노송희 두 작가가 참여했다. 곽이브는 미술관의 벽 전체를, 노송희는 바닥 전체를 사용해 미술관이 간직한 다양한 정보들을 무늬처럼 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미술관 외벽의 '비트린(Vitrine)' 공간에서는 곽이브의 1층 전시와 호응하는 작품을 윈도우 갤러리 형식으로 만날 수 있다.

《바이브 에라》는 AI와 생성 기술이 이미지의 조건 자체를 바꾸는 지금, 미술이 그 변화를 어떻게 감각하고 대응하는지를 묻는 전시다. 네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 즉 계획과 우연, 의도와 오염이 뒤섞이는 그 과정 자체를 작업의 본질로 삼는다. 이미지가 단번에 생성되는 현재, 오히려 몸과 재료와 시간이 축적되는 과정을 고집하는 이 작업들은 지금 이미지를 둘러싼 조건이 무엇인지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방식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