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갤러리인사아트
장금자의 회고전 《SPACE BETWEEN Mom & Son》이 8월 26일부터 9월 1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인사아트에서 열린다. 1970년대 후반 실험미술에서 출발해 현재의 회화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가까운 작업의 흐름을 살펴보는 전시다. 초기 드로잉과 퍼포먼스, 〈SPACE〉 연작, 최근 회화가 함께 소개되며, 아들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인 김웅현이 객원으로 참여해 신작 영상 〈Between Space〉를 선보인다.

장금자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오랫동안 ‘공간(SPACE)’이었다. 여기서 공간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만나고, 시간이 흔적을 남기며, 기억이 축적되는 자리다. 그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1981년 대전문화원 앞 공터에서 선보인 〈행위〉다. 작가는 수백 장의 원색지를 자연 속에 펼친 뒤 다시 땅에 묻었다. 색채를 화면 안에 고정하기보다 자연 속에 놓고 사라지게 하며, 행위와 시간 자체를 작품으로 끌어들였다.

이 같은 태도는 이후 회화에서도 이어진다. 장금자는 여러 층의 색을 올린 뒤 나이프로 표면을 긁어내 아래에 묻힌 색을 다시 드러낸다. 작가가 원한 색과 우연히 모습을 드러낸 색이 한 화면에서 만난다. 최근에는 작업의 기반이 되는 밑색을 언니와 동생들이 함께 칠하기도 했다. 그 위에 다시 색을 덮고 긁어내는 과정에서 가족의 손길과 작가의 시간이 하나의 화면 안에 겹쳐진다.

이 점에서 장금자의 회화는 ‘그리기’보다는 ‘되찾기’에 가깝다. 1981년 땅에 색종이를 묻었던 행위가 수십 년 뒤 캔버스 위에서 색을 덮고 다시 긁어내는 방식으로 변형된 셈이다. 표현 방식은 달라졌지만, 묻고 드러내며 흔적을 확인하는 태도는 지속됐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화면은 한층 밝고 서정적으로 변한다. 나무와 새, 꽃, 산과 집이 등장하고 원색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풍경화로만 읽기는 어렵다. 화면 속 자연은 현실을 재현하기 위한 대상이라기보다 감각과 기억을 담는 기호에 가깝다. 나이프로 가른 선과 긁힌 흔적은 형태를 설명하기보다 화면의 리듬을 만들고, 시간의 층위를 드러낸다.

장금자의 성취는 하나의 양식을 고정적으로 반복한 데 있지 않다. 초기 실험미술의 문제의식을 삶의 변화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변형하며 지속해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교직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작업의 끈을 놓지 않았고, 생활의 조건을 오히려 작품의 형식 안으로 끌어들였다. 실험미술에서 회화로 이동했지만, ‘공간’과 ‘흔적’에 대한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웅현의 신작 〈Between Space〉는 장금자의 초기 퍼포먼스를 오마주한다. 영상 속 색종이 위에는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를 보여주는 소소한 소재가 놓인다. “나는 귤을 좋아하고, 작가님은 포도를 좋아한다”는 식이다. 어머니의 과거 작업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서로 다른 세대와 취향의 간격을 현재의 언어로 풀어낸다. 이 작업은 장금자의 서사를 압도하기보다 과거의 작업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연결점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전시 제목의 ‘Between’은 엄마와 아들 사이만을 뜻하지 않는다. 실험미술과 회화, 자연과 화면, 과거와 현재, 의도와 우연 사이에도 수많은 간격이 있다. 장금자의 작품은 그 사이를 메우기보다 오히려 그 틈에서 형성돼 왔다.

전시장에서는 작품을 멀리서만 보기보다 가까이 다가가 화면의 표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려한 꽃과 새 아래에는 다른 색이 있고, 그 아래에는 다시 오래된 흔적이 남아 있다. 한때 땅에 묻혔던 색종이처럼,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장금자의 그림은 그 시간을 조용히 긁어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작은 틈 사이에서 한 작가가 오래 쌓아온 삶과 기억, 관계의 공간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