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는 2026년 4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페르난도 보테로: 형태의 미학》을 개최했다. 콜롬비아 출신의 회화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1932–2023)의 예술 세계를 조망하는 대규모 기획전으로, 2015년 이후 11년 만에 국내에서 다시 선보이는 전시였다. 

페르난도 보테로,〈자화상〉, 1998, 캔버스에 유화, 92.7×81.2

전시는 '변주', '라틴 아메리카', '종교', '투우', '정물', '서커스' 여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미술사의 거장들을 재해석한 '변주' 섹션이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 등 익숙한 도상이 작가 특유의 풍만함으로 재해석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페르난도 보테로, 〈벨라스케스를 따라 그린 메니나〉,  캔버스에 유화, 198×160

이어지는 '라틴 아메리카' 섹션에서는 작가가 콜롬비아에서 보고 경험한 인물과 풍경, 사회적 분위기가 화면 위에 펼쳐진다. 거리의 인물, 일상의 장면, 지역의 색채가 보테로의 시선을 통해 기념비적인 이미지로 재구성된다. 개인적 기억이 보편적 서사로 확장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읽히는 섹션으로, 보테로라는 작가가 어디서 왔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페르난도 보테로, 〈새〉, 2016, 청동, 64×51×59

조각 작품들은 평면에서 구현하던 볼륨이 입체로 옮겨졌을 때 어떤 존재감을 갖는지를 보여준다. 회화와 동일한 조형 원리를 유지하면서도 공간 안에서 물리적으로 팽창하는 청동 조각들은 보테로의 언어가 매체를 넘어서도 일관되게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작가는 평면 작업에서는 표현하기 힘들었던 입체감을 그의 의도대로 보여주기 위하여 조각 작업에도 열중했다고 한다.

페르난도 보테로, 〈배〉, 1976, 캔버스에 유화, 241×196

정물 섹션에서는 보테로 특유의 위트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수박, 배, 꽃 등 일상적인 사물들이 과장된 부피를 얻으면서 화면을 장악한다. 사소한 대상조차 무게감 있는 존재로 바꾸는 이 방식은 진지함과 유머 사이 어딘가에 자리하며, 보는 내내 불편하지 않은 웃음을 유발한다.

페르난도 보테로, 〈노란 꽃〉, 〈파란 꽃〉, 〈빨간 꽃〉 전시 전경


마지막 섹션인 '서커스'는 전시의 마지막 장으로 축제의 활기와 함께 삶의 유희적 본질을 담아낸다. 화려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서커스의 이중성이 보테로의 조형 언어와 맞닿으며 여운을 남긴다.



페르난도 보테로, 〈음악가들〉, 2008, 캔버스에 유화, 178×100


그의 예술에는 라틴 아메리카의 색채와 정서, 르네상스 회화에서 길어 올린 조형 원리, 그리고 일관된 유머 감각이 함께 작동한다.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화풍을 유지하며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작가의 작품을 총망라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주제별로 달라지는 색감에서 작품 세계의 폭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