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프랑스대사관은 2026년 8월 31일 오전 11시 대사관저에서 한국 현대 작가 이배(Lee Bae)와 프랑스 작가인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2인전 개막을 앞두고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관계자와 두 작가가 참석했다. 대사관 측의 인사말에 이어 오토니엘, 이배 작가 순으로 소감을 전한 뒤 질의응답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참석자들은 대사관 정원과 김중업관 등 전시 공간을 함께 둘러보는 투어로 마무리했다.

전시 《이배‒장미셸 오토니엘: 교차된 시선(Lee BAE – Jean-Michel OTHONIEL: Regards croisés)》은 프랑스와 한국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26년 프리즈 서울(Frieze Seoul)과 연계해 8월 31일에 개막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문화과, 장-미셸 오토니엘 스튜디오, 페로탱 갤러리(Galerie Perrotin)가 공동 기획했으며, 전시는 대사관 정원과 관저 내부(레지던스)에서 이배의 조각 5점·회화 6점, 오토니엘의 조각 4점 등 총 15점으로 구성됐다. 이번 전시는 사전 예약을 통해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되며, 공개 기간은 2026년 말까지다. 오는 9월 5일부터는 광주비엔날레 프랑스관에서 동아시아 프랑스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선정 작가 6인의 전시가 함께 열려, 이번 전시와 같은 맥락에서 소개된다.
피에르 모르코스 문화 교육 과학 참사관은 인사말에서 이번 전시가 세 가지 차원의 만남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첫째는 프랑스와 한국을 잇는 살아 있는 가교와도 같은 두 거장의 만남이다. 그는 이배가 1990년대 파리에 정착해 숯을 중심으로 한 작업을 발전시키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고, 오토니엘은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에서 대규모 전시를 여는 등 한국과 깊은 인연을 쌓아왔다고 소개했다. 둘째는 작품과 장소의 만남이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관저와 김중업관은 건축가 김중업이 르코르뷔지에 밑에서 수학한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한 건물로, 2020년대 초 프랑스 건축사무소 사티(SATHY)와 한국의 매스스터디스(Mass Studies)가 확장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건축물 자체가 건축인 동시에 조각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곳을 한국과 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공간으로 계속 활용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셋째는 수교 140주년을 맞은 프랑스와 한국의 만남이다. 그는 지난 4월 마크롱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출범한 한불 예술가 레지던시 네트워크 '빌라 한홀(Villa Hanhol)'을 소개하며, 프랑스 작가 6명이 광주·부천·부산·청주에서 그래픽아트·공예·시각예술·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레지던시 혜택을 받게 된다고 전했다. 이 네트워크는 9월 광주비엔날레 프랑스관 전시의 핵심이 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인 요한 르 탈렉 프랑스문화원 문화담당관을 비롯해 전시 준비에 힘써온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인사말을 마쳤다.
이어 프랑스문화원 예술창작국장은 파리 프랑스문화원이 프랑스 외교부·문화부 산하의 국가 공공기관으로서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를 진흥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통과 만남의 장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장-미셸 오토니엘과 이배 작가
오토니엘은 한국이 자신을 동아시아 미술계로 이끌어준 나라이자, 퐁피두센터에서 열었던 대규모 전시를 처음 해외에 선보일 수 있게 해준 나라라고 밝혔다. 현재 부산에서도 신작을 포함해 140여 점 규모의 대규모 전시를 진행 중이며, 키아프에도 전시가 예정돼 있다고 소개했다. 이번 출품작에 대해서는 꽃을 모티프로 한 추상 조각이며, 한국에서 영감을 받은 뒤로 즐겨 쓰게 된 금박 소재를 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배, 〈Brushstroke-8sb〉, 2026, charcoal ink on paper, 220 ×152
뒤이어 이배 작가는 지난 30년의 파리 생활이 한국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찾아가는 데 가장 큰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또한 김중업이 르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서 일한 뒤 한국에 돌아와 지은 이 건물이 한국인에게는 한불 관계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라며, 이곳에서 전시를 열게 된 것이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장-미셸 오토니엘,〈Passiflora〉, 2024, aluminium cast, gold leaf, alessandrita Murano glass, stainless steel, 140 ×140×25
이어 정원에 놓인 이배의 신작들을 소개하는 순서로 넘어갔다. 담당관은 이 작품들이 올봄 제작된 것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오토니엘의 작업으로 이동해서는, 프랑스에서 전통적으로 건물 외관에 쓰여온 아연판을 소재로 한 연작을 소개했다. 연꽃 봉오리에서 영감을 받은 한 작품은 2년 전 덕수궁에서 전시된 뒤 현재 삼성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토니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구슬 모티프에 대해서는, 목걸이처럼 친숙하고 아기자기한 형태가 조각으로 확대됐을 때 주는 다른 느낌에 주목해 달라고 말하며, 구슬을 하나하나 옮기며 기도하는 염주와도 연결지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관저 건물의 유리벽에 작품이 비쳐 두 개로 보이는 듯한 효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느껴지는 정원의 녹지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함께 짚었다.

두 작가의 재료에 얽힌 뒷이야기도 이어졌다. 담당관은 이배와 오토니엘 모두 자연에서 얻은 재료가 불로 인해 변성되는 상태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배는 숯을, 오토니엘은 유리를 각각의 대표 소재로 삼아왔다고 설명했다. 이배가 1990년 프랑스에 처음 갔을 때 형편이 어려워 보자르에서 쓰는 목탄조차 사기 어려워 길에서 주운 석탄 조각으로 작업하기도 했다는 일화를 전하며, 그 석탄이 지금도 이배 작품 세계의 핵심 소재로 남아 있다는 점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이배, 〈Brushstroke CY〉, 2026, bronze, 160 ×95 × 95
관저 옥상에는 이배의 가장 최근작이 전시돼 있으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각도로 오토니엘의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고 담당관은 소개했다. 이배의 브론즈 작업에 대해서는, 붓 터치를 3차원으로 구현하기 위해 먼저 봄에 모형을 뜬 뒤 이를 바탕으로 몰드를 직접 제작해 완성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정원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이배 작가가 작품 배치에 앞서 동양적인 여백과 균형의 감각을 중시해, 며칠에 걸쳐 홀로 서서 공간을 관찰하고 건축가의 설계 의도와 공간이 지닌 에너지를 직접 호흡하며 자리를 정했다는 후일담도 전했다.
야외에 설치된 작품들은 날씨와 온도 변화에 크게 영향받지 않도록 제작됐으며, 전시가 연말까지 이어지는 만큼 가을이나 겨울에 방문하면 눈을 맞은 조각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담당관은 안내했다. 관람객은 조각을 직접 만지며 감상할 수 있으나, 오토니엘의 금빛 구슬 작품만은 만지지 말아 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
질의응답
Q. (서울아트가이드) 상호 교류가 더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전시를 진행하셨다고 했는데, 기존 이배 작가님과 오토니엘 작가님의 개별 전시들과 비교해 어떤 차별점을 두고자 했는지, 그리고 작품과 건축물 사이의 대화를 살리기 위해 작품 배치 등에서 어떤 조언을 주셨는지 궁금하다.
A. (요한 르 탈렉) 우선 두 작가가 이 공간을 충분히 이해하고 흡수할 수 있도록 함께 공간을 둘러보며 이해도를 높였다. 이후 작품을 실제로 공간에 옮겨놓은 다음, 두 작가가 하루 종일 상의하며 서로의 작품이 어떻게 어우러지고 어떤 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조율했다.
아래는 타 매체와 관계자 측의 질의다.
Q. 오토니엘 작가님께 영감을 준 한국의 장소나 지역, 이배 작가님께 영감을 준 프랑스의 장소나 지역이 있다면?
A. (오토니엘)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은 아니라면서도, 인상 깊었던 도시로 서울·부산·제주도 세 곳을 꼽을 수 있다. 서울에서는 풍부한 문화와 여러 현대미술관·재단에서 다양한 영감을 받았으며, 특히 리움미술관에서 처음 마주했던 종(鐘)에서 느낀 미학적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고 이는 자신의 작품에도 많이 녹아들어 있다. 제주도에서는 아름다운 자연과 평온함이 인상 깊었다.
(이배) 특정 장소를 하나로 꼽기 어려울 만큼 파리 전체가 그렇다면서도, 세계에서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 가장 좋은 현대 도시가 파리가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이 오가면서도 사람 중심적이고, 사람이 만들어낸 문화가 느껴지는 도시다. 지난해 오토니엘이 전시했던 아비뇽, 현재 자신이 전시 중인 남프랑스의 볼리유 수도원도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영감을 받는 곳은 파리 퐁피두센터로 거기 가면 똑같은 것도 새롭게 보인다.
Q. (블룸버그) 두 분 모두 불의 시간을 견디는 소재로 작업해오셨다. 함께 작업하며 이 지점에 대해 나눈 대화나 서로 맞닿아 있다고 느낀 부분이 있는지. 이배 작가님께는 별도로, 숯이라는 소재의 의미가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지금 이 순간 작가님께 숯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A. (이배) 오토니엘과 이 주제로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지식이나 정보, 경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정신, 어떤 명상적인 태도가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예술은 세상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본성과의 만남을 예술을 통해 이루려는 열망이며, 작품을 하는 일이 마치 기도하는 일과 같다. 내면으로 스스로 가장 순수하지 않으면 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일이다. 숯은 먹을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며, 한국이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문화를 가진 만큼, 한국 문화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지금 자신의 작업을 통해 한국의 전통과 정신이 현대 사회에 더 확산되고 새롭게 조명되기를 바란다.
Q. (중앙데일리) 이배 작가님께서 프랑스의 톨레랑스 정신을 말씀해 주셨는데, 이번 140주년 기념 전시를 비롯해 두 나라가 공유하고 앞으로 더 퍼뜨릴 수 있는 정신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작가님과 전시를 기획하신 분들께도 공통으로 여쭙는다.
A. (피에르 모르코스) 한국과 프랑스가 함께 주창해야 할 정신으로 상호성과 공동 창작의 정신을 꼽았다. 그동안 양국 간 문화 교류가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혹은 한국에서 프랑스로 향하는 일방향적 방식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며, 양국 모두 문화강국인 만큼 진정한 의미의 상호 교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런 취지에서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기획했으며, 이런 노력은 9월 7일 프랑스에서 한국과 프랑스가 공동 주최하는 뤼미에르 정상회의와도 맥을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Q. (까사리빙) 이번 전시는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지만, 그와 별개로 양국 모두 예술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애정이 바탕이 됐다고 생각한다. 두 분이 '살아있는 가교' 역할을 하고 계신데,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술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서로 연결됐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는지 궁금하다.
A. (오토니엘) 이번 전시가 140주년뿐 아니라 프리즈, 부산 지역 기획 등 한국에서 열리는 여러 대규모 예술 이벤트의 맥락 속에서도 함께 기획됐다. 자신도, 이배 작가도 각자 여행과 전시로 바쁜 일정을 보내다 보니 파리에서 잠깐씩 몇 차례 마주친 정도였는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만났을 때 가장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것 같다. 특히 두 사람의 작품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 대사관 정원이라며, 이곳이 이번 전시의 핵심 공간이다. 그 정원에서 두 작품이 서로 만나고 대화하며 '메아리를 치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