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갤러리는 2026년 10월 15일 오후 2시부터 일본 작가 그룹전 《Imagination–Young Japanese Artists Group Exhibition》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참여 작가 5인 중 타쿠야 오츠키(Takuya Otsuki), 토모히로 타카하시(Tomohiro Takahashi), 나오키 토미타(Naoki Tomita), 유코 소메야(Yuko Someya) 4인이 참석했다. 리카 미나미타니(Rika Minamitani)는 불참해 담당자가 대신 자리했다. 간담회는 전시 소개와 작가 약력 소개로 시작해 작가별 자기소개, 공통 질문에 대한 작가 답변, 기자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Imagination》 전시 전경.
전시는 10월 15일부터 11월 28일까지 피비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이번 그룹전에는 2010년 이후 활동해 온 도쿄·교토 기반의 작가 다섯 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자연과 인물, 일상의 사물과 풍경, 장난감 등 주변에서 쉽게 마주하는 대상을 시각 언어로 재해석한다. 전시 제목의 '상상력(Imagination)'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상을 변주하고 재구성해 또 다른 이미지로 확장하는 힘을 가리킨다. 전통 회화의 재료와 여백, 애니메이션과 사진, 낙서 같은 동시대 시각문화가 한 전시장에서 구상과 추상, 재현과 변형의 경계를 오간다.
토모히로 타카하시 작가와 〈A Joy to Be Hidden〉, 2026, 나무 판넬 위에 면천, 유화, 아크릴, 목탄, 118.8×92.8×6
타카하시는 주로 회화를 하며 이번 전시에 봉제 인형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출품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봉제 인형을 가족처럼 여기며 지내 온 자신의 실제 경험이 작품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종이와 테이프로 이뤄진 주요 대상은 극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곳곳에는 아이가 낙서한 듯한 드로잉의 흔적을 남긴다.
나오키 토미타 작가와 〈Omotesando〉, 2025, 캔버스에 유화, 91×116.7
토미타는 '시작의 제로'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인물과 도시 풍경을 유화로 그린다고 소개했다. 그에게 제로는 끝이나 공백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가 태어나는 출발점이다. 철거와 재건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도쿄의 거리, 자연과 인공물이 교차하는 풍경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유화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고 수정하며 생긴 물감의 두께를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과 겹쳐 보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직접 촬영한 사진을 캔버스로 옮겨 교외의 풍경, 임차인이 없는 상점의 외관, 평범한 사람들의 초상을 그린다. 두꺼운 유화 물감을 겹겹이 쌓으면서도 색채를 세심하게 배치하며 빛의 변화가 자주 등장한다.

타쿠야 오츠키
오츠키는 일본화에서 흔히 쓰는 암채(岩彩) 안료로 작업하며, 일상에서 마주친 사물을 스케치북에 본떠 그린 뒤 이를 다시 일본화로 옮겨 배치하는 방식을 쓴다. 종이 위에 암채를 여러 겹 쌓아 올려 깊이 있는 색감과 입자의 광택을 구현하며, 반복적으로 모사하는 과정에서 대상은 기호처럼 단순한 형태가 된다.
유코 소메야 작가
소메야는 대학에서 유화에서 시작했지만, 곧 흥미를 잃고 판화 연구실에서 표현 기법을 익히면서 다양한 종이를 접하며 종이의 특성을 살린 표현을 탐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가는 꽃과 새, 식물, 동물 같은 자연의 대상을 섬세하게 그리고 채색하며 화면에 넓은 여백을 끌어들인다. 먹과 여러 겹의 화지를 중첩해 색채와 질감의 투명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어 갤러리는 작가들에게 상상력이 작동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물었다.
(좌) 타카하시 작가, (우) 토미타 작가. 각자 이야기를 하고 있다.
타카하시는 생명이 없다고 여기기 쉬운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고자 그림을 그리고, 물건을 만들고, 말을 걸기도 한다고 답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대상을 마주하다 의도치 않게 새로운 것을 만나는 순간에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타카하시, 〈Mana〉, 2026, 나무 판넬과 린넨 위에 유화, 아크릴, 오일 파스텔, 색연필, 126.8×106.2×6.8
토미타는 상상력을 사진에 담긴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 풍경 속에 전제된 과거의 흔적과 아직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비어 있는 상가나 재건축으로 모습이 바뀌는 건물에서 한때 존재했던 것의 흔적과 앞으로 시작될 가능성을 동시에 보며, 끝과 시작의 경계를 늘 상상한다고 했다.
토미타, 〈Snow〉, 2026, 캔버스에 유화, 72.7×60.6
(좌) 오츠키 작가, (우) 소메야 작가. 간담회에서 작업에 대해 이야기 중이다.
오츠키는 사물을 따라 그리는 사생을 반복하는 작업이어서, 상상력이 가장 많이 발휘되는 시간은 작품을 구상할 때라고 말했다. 일상에서 발견한 것과 떠오른 생각을 그때그때 기록해 두었다가 실제 구상 단계에서 재료로 조합하며, 이렇게 모은 재료가 하나로 연결돼 작품이 완성될 때 상상력이 발휘됐다고 느낀다고 했다.
(좌) 오츠키, 〈Unraveling Form(Backlit)〉, 2026, 대마 종이, 광물 안료, 분채, 석회, 27.3×27.3
소메야는 붓을 움직이며 그리는 순간에 상상력이 작동한다고 답했다. 과거의 사소하고 사랑스러운 사건이나 가시가 박힌 듯한 막연한 불안감, 기분 나빴던 일의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이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전시된 〈주문을 거는 여자〉를 예로 들었다. 초등학생 시절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떠올리며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주문이 유행했는데, 자신은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대상을 찾아 주문을 걸었던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이 모순을 나중에 깨달았고, 무언가에 열심히 몰두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 조용하지만 강한 진지함을 느껴 그림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당시 걸었던 주문은 달빛을 듬뿍 받은 물로 머리를 감으면 빛나는 매력이 발산된다는 내용이었다고 덧붙였다.
소메야, 〈Garden Bouquet〉, 2021, 캔버스 위에 와시, 수채화, 연필, 먹, 91×60.6
그림을 시작한 계기를 묻는 두 번째 질문에서는 작가들의 개인사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타카하시는 어린 시절부터 이어 온 인형과의 관계 속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습관이 시작이었다고 했다. 작업은 지금도 생활 습관과 맞물려 변하고 있으며, 작년 오랫동안 살던 지역을 떠나 도쿄로 이주한 일과 최근 몇 년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한 경험도 영감이 됐다고 전했다.
토미타는 21세에 미술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그림을 시작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지만 화가를 꿈꾼 적은 없었고, 10대에는 고등학교에 잘 가지 않은 채 아르바이트를 하며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렸다고 전했다. 스무 살이 넘어 삶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역 예술대학 입학을 결심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그는 일본이 호황을 누리던 1983년에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입학 무렵 거품경제가 붕괴했고, 이른바 '잃어버린 30년' 속에서 프리터가 늘어나는 시기에 성장했다고 말했다. 1995년과 2011년의 대지진을 겪으며 사람들이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이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오츠키는 롤러스케이트나 과자 만들기는 금방 질려 그만뒀지만 그림 그리기만은 유일하게 지금까지 이어 온 습관이라고 했다. 대학 1학년 때 그린 작품이 이후 작업의 단초가 됐고, 사생으로 얻은 이미지를 다른 재료의 회화로 변환하는 방식, 고전 회화의 요소를 도입하는 방식, 작업 과정에 일부러 제약을 두는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메야는 등산이 취미였던 아버지가 산에서 만난 고산 식물을 그려 둔 스케치북이 책장에 꽂혀 있었고, 그것을 보며 자신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전했다. 종이와 먹을 쓰며 표현의 폭이 넓어졌으며, 도쿄 주변 간토 지역에서 40년 가까이 살다 작년에 오카야마의 산속으로 이사한 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접하고 밭일도 하면서 보고 만지는 것이 달라졌고 이 변화가 작품에도 반영됐다고 했다.
간담회는 시간 관계상 질의응답을 마무리하고 1층 전시장으로 이동해 마쳤다.
본지와 질의응답
Q. (서울아트가이드) 타카하시 작가님의 〈MANA〉는 캔버스가 특이한 형태이다. 기존 캔버스에 무언가를 덧붙여 만든 것인지, 처음부터 그런 캔버스를 직접 제작한 것인지 궁금하다.
A. (타카하시) 최근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AI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처음 AI로 출력해 보니 그중 하나가 굉장히 좋아서 일부만 쓰려다 그대로 작품화한 것이 그 작품이다.
타매체와 질의응답
Q. (서울문화인) 작품 속에 입체적인 인형과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드로잉이 함께 배치돼 있다. 어릴 때부터 곁에 있던 봉제 인형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하셨는데, 드로잉 속 인형은 실제 인형과 닮은 듯하면서도 같지 않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 어느 쪽에 더 초점을 두는지 궁금하다.
A. (타카하시) 기본적으로는 봉제 인형을 그대로 그리려 하지만, 그리다 보면 그때그때의 희망 사항이나 생각, 마음이 반영돼 달라지는 것 같다.
Q. (서울문화인) 변화하는 도시를 기록하듯 그린다고 하셨는데, 작품을 처음 봤을 때 한국이나 서울의 어딘가 같았다. 간판이나 차량의 통행 방향을 자세히 봐야 일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어느 도시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인지, 그리고 건물보다 시간이나 조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맞는지 궁금하다.
A. (토미타) 빛이나 인공물에 흥미가 있어서 그리다 보니, 일본이든 서울이든 미국이든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다. 전 세계가 조금씩 균질화된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어 비슷해지는 것 같다. 빛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로는 10대 비행 청소년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본 앞차의 불빛과 큰 건물, 밤거리의 빛이 인상 깊게 남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간접적으로 작품에 반영된 것 같다.
Q. (서울문화인) 두 분은 일본 전통 종이로 작업하신다. 우리는 전통 종이를 쓰면 흔히 동양화라는 개념을 떠올리는데, 일본에서는 전통 종이를 쓰는 작업을 일본화라는 개념으로 묶는지, 아니면 다양하게 쓰는지 궁금하다.
A. (오츠키) 자신은 일본화를 하고 있어 그 관점에서만 말할 수 있다. 일본화는 메이지 시대에 서양화가 들어오면서 일본의 전통을 지키자는 취지에서 새로 생긴 개념이고, 그 이전의 회화는 일본 회화 또는 고전 회화로 부른다. 다만 일본화는 정확히 정의돼 있지 않고 화가마다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종이를 쓴다고 해서 곧 일본화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천이나 캔버스를 쓰는 일본화가도 있다.
A. (소메야) 일본화나 동양화라는 장르를 의식한 적은 없다. 처음 종이를 접하고 좋은 소재라고 생각해 이것으로 다양한 것을 해 보고 싶었고, 표현 방식을 찾다가 먹을 만났다.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니 전통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장인들이 있는지 알게 됐으며, 출발점은 단순히 호기심이었다.
Q. (아트인컬처) 두 작가님께 묻는다. 일본화에는 하나의 정의가 없다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본인의 작업을 일본화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일본화로 규정되는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소메야 작가님께는 회화에서 판화, 먹으로 기법과 물성이 옮겨 간 계기가 무엇인지, 먹의 물성과 기법에서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묻고 싶다.
A. (오츠키) 일본화의 정의가 없다기보다 매우 애매하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하나의 정의로 규정할 수 없다. 일본 고전 회화를 답습한 요소가 있거나 암채와 아교 같은 당시의 소재를 쓰면 일본화적 요소가 있다고 본다. 사생, 즉 대상을 관찰해 그 안에 숨은 진실을 파악하고 반영하려는 행위가 작품에 도입됐는지도 기준이 된다. 화면에 일정한 시간의 흐름을 담거나 고전 회화의 이야기와 요소를 이어받은 경우도 일본화로 본다. 암채는 아교와 섞이지 않는 입자라 빛을 반사하기 쉬워 작품을 자세히 보면 빛이 난다. 이런 요소를 이어받아 활용하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일본화이다.
A. (소메야) 에도시대 화가 이토 자쿠추가 그린 새 깃털 같은 표현이 아름답고 멋지다고 생각한 것이 먹을 시작한 계기이다. 당시에는 이름이 없었는데 후대 연구자들이 그 기법에 '스지메가키'라는 명칭을 붙였고, 그 표현을 써 보고 싶어 어떤 먹과 종이가 좋은지 연구하다가 자연스럽게 먹에 빠졌다. 유화는 덧칠하면 마지막에 칠한 색이 가장 위에 올라오지만, 이 스지메가키에서는 처음 칠한 색이 가장 윗부분에 드러난다. 종이와 먹이 가진 유분이 결합해 흰색 테두리가 생기는데 그것을 시도해 보고 싶어 먹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