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50주년을 맞아 64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특별전 한국미술 0년을 개최
100여 년의 한국미술을 42개의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미술사적 계보를 벗어난 새로운 해석 시도
전쟁과 참사 등 시대의 상처를 애도하며 한국미술이 새롭게 시작될 가능성 모색.
《한국미술 0년: 42개의 이야기》 전시가 2026년 10월 16일 부터 2027년 2월 28일까지 토탈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올해로 개관 50주년을 맞은 토탈미술관은 단순한 역사의 기념과 회고를 넘어, 한국미술이 어디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특별전을 마련했다. 이영철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백남준, 박서보, 이강소, 이승택, 김구림, 이용백 등 한국 현대미술사를 관통하는 작가 64명(팀)이 대거 참여했다. 전시는 정원과 옥상, 본관 전시실, 지하와 별관에 이르기까지 미술관 전체 공간을 가로지르며 펼쳐진다.

남궁환
전시장은 8개 영역, 42개의 이야기인 이른바 '스토어프런트'로 구성됐다. 연대기적 나열이나 양식적 계보를 따르는 기존 전시 문법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시대의 작품과 사회적 사건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방식이다. 관람객은 정해진 동선에 구애받지 않고 42개의 이야기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저마다의 해석을 완성하게 된다. 전시 제목에 쓰인 숫자 '0'은 무(無)가 아니라, 기존의 척도와 질서를 잠시 내려놓고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가능성의 자리를 뜻한다.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 화두는 '난세 속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전쟁과 분단, 급격한 산업화와 참사 등 격변의 근현대사를 지나온 예술가들의 실천을 근원적인 '애도'의 시선으로 묶어냈다. 개인의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의 상처를 직시하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길어 올리는 예술적 태도를 조명한다. 공간 곳곳에는 문명과 자본,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대표작들이 유기적으로 배치됐다. 옥상에서는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인간의 고통을 마주 세운 이용백의 〈피에타〉가 관람객을 맞고, 정원에는 예술의 상업화를 해학적으로 꼬집는 김구림의 오브제와 문명사적 위기를 경고하는 최병수의 철판 조각이 자리했다. 미술관 외곽을 감싸는 송성진의 〈장례희망〉은 버려진 조화를 모아 사회적 비극으로 스러진 죽음들을 기억하는 치유의 공간을 구축했다.
심정수
이와 함께 하와이 사진신부의 기록과 남미에서 활동한 김윤신의 석조각, 소의 피로 쓴 장지아의 소네트가 충돌하며 이주와 희생의 의미를 묻는다. 또한 《대한민보》 시사만평 등으로 대중과 호흡했던 근대 화가 이도영을 재조명해, 민중성과 모더니즘으로 양분되어 온 기존 미술사 서술의 한계를 짚는다. 전시는 황금빛 기념비 대신 비명과 물감이 뒤섞인 김범의 영상 회화 〈노란 비명〉을 끝으로 다시 0의 자리로 돌아간다.
김구림
이영철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완결된 한국미술사를 제시하기보다, 공식 계보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을 충돌시키며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1976년 서울 동숭동 토탈갤러리로 출발한 토탈미술관은 장흥 야외조각공원을 거쳐 1992년 평창동에 자리 잡은 뒤 반세기 동안 다양한 현대미술 실험을 지원해 왔다. 이번 특별전의 관람료는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16일 5시부터 개막식은 그동안 들어가보지 못했던 공간끼지 작품이 빼곡히 전시되고 많은 미술인과 관련자 들이 참여한 잔칫날이었다.

왼쪽 공성훈
김달진, 정정엽, 최병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