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자료는 손인실(母)과 문성자(女)의 전시 포스터로, 전시는 1962년 7월 12일부터 18일까지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개최되었다. 손인실(1917-1999)은 독립운동가 손정도(1882-1931) 목사의 막내딸로 해방 이후 서울 YWCA 이사, YWCA 연합회 회장,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의장 등을 역임하며 여성운동과 사회봉사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였다. 그의 부친 손정도는 동대문교회와 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냈다.
손인실의 전기에 따르면 1950년대 후반이 되자 가정과 사회활동에 치열하게 전념해 온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성찰하게 되었다. 이 시기 빈센트 반 고흐의 전기 『삶에 대한 욕망(Lust for Life)』을 읽고, 고단했던 작가의 삶과 정신을 온전히 투영하는 미술이 지닌 진실성에 깊이 공감하였다. 그의 제안으로 서울 YWCA에는 여성을 위한 회화반이 묵화반을 시작으로 서예반과 유화반으로 차례로 개설되었다. 손인실 역시 묵화를 시작으로 서예와 유화를 익히며 미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모녀전 – 손인실·문성자』, 중앙공보관화랑, 1962.7.12.-18, 22×10cm, 접지 3쪽, 문성자 기증.
손인실 22점, 문성자 18점이 출품되었다.
당시 이화여중에 재학 중이던 딸 문성자는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서양화가 문미애(1937-2004)를 찾아가 어머니의 그림 지도를 부탁하였다. 이를 계기로 문미애는 YWCA 서양화반을 맡게 되었고, 그의 소개로 동양화가 박래현이 동양화반을 지도하게 되었다. 후에 손인실의 아들 문재현과 박래현의 차녀 김선이 결혼하면서 두 집안은 사돈 관계를 맺게 되었다.
문미애는 이후 YWCA 강의를 내려놓고 손인실·문성자 모녀의 개인 지도를 이어갔다. 문성자의 기증 편지에 따르면 “같은 소재를 놓고, 삶의 연륜과 지혜가 다른 이들이 이를 소화하고 표현할 때 생기는 기록이 재미있으셔서 문미애 선생님께서 모녀전을 하자 하셨습니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한 포스터의 디자인과 색상을 문미애가 직접 작업하였으며, 전시명 글씨는 머지않아 문미애의 시어머니가 되는 조각가 한용진(1934-2019)의 모친이 쓴 것이라고 밝혔다.
문성자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 보낸 포스터 기증 편지, 2010.1.15., 접지 2쪽
문성자는 이 전시가 한국에서 처음 있었던 ‘모녀전’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한국 화단이 제도권 미술 중심이었고 여성이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일들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임을 고려하면, 이 전시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자료는 1960년대 사회·문화예술의 지형과 예술가들의 인적 교류를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