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응성, <병사>, 1952, 종이에 연필, 유채, 21×17cm정교한 사실 화풍을 세필로 구현한 손응성(孫應星, 1916-79)의 작업을 미술내적 범주에서는 그저 극사실주의라는 서구의 용어로 명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치밀하지만 주관성을 배제하고 외물을 건조하게 모사한 일련의 다른 극사계열 작품과는 달리, 전통에 입각하면서도 개인의 정감과 내면의 표현을 통해 감성을 환기시키는 독특하고 이례적인 지점에 놓여 있다. 대표적인 소재로는 기물에 놓인 과일, 고가구, 고서, 불상 등의 정물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생활 주변의 평범한 소재이면서도 민족적 체취를 풍기는 특유의 아우라를 품고 있다. 극사계열의 작업임에도, 원근이 뚜렷하지 않으면서 평면성이 강조된 화풍에서는 서구적 모던함이 얼핏 감지되기도 한다. 이는 그의 작업을 하이퍼리얼리즘이나 고전적 사실주의와 차별화시키는 중요한 표지이기도 하다. 이구열은 화가를 한국의 독자적 극밀 사실주의의 선두주자로 평가하면서, 그의 작업을 우리의 시각에서 자주적으로 재평가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1970년대 후반에 발흥한 우리 청년작가들의 하이퍼리얼리즘 형식은 구미의 정감 거부나 인간 부재의 즉물적 형식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한국적으로 수용된 형태로서의 정감 어린 세밀한 작업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극사실수법의 새로운 등장을 구미 미술사조의 체계로 조망하거나 인식하기 이전에 이미 이 같은 형태의 극밀한 사실주의를 시도했던 비조(鼻祖)로서의 손응성의 존재를 거론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자주적 미술문화 인식의 측면에서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손응성, <총을 멘 병사>, 1952, 종이에 연필, 유채, 30.5×16.5cm
그는 소위 ‘비원파’의 대표 화가로 꼽혔는데, 존덕정(尊德亭)의 기왓장과 서까래를 하나하나 일일이 세어서 그린다고 회자될 정도의
정밀한 화법으로 우리의 미감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놋주발에 담긴 석류를 그린 유화 작품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그릇과 석류의
표면에서 연속적으로 변해가는 질감이나 광선의 감촉이, 눌리면서 텁텁하게 흐르는 붓질의 예민한 터치에 의해 은근히 드러나고 있다.
고서에서는 부분적으로 빛이 바래거나 얼룩진 종이의 표면감이, 불상에서는 미려하면서도 고태가 나는 물질감이 화면에 고르게 산포되어
있다.

손응성, <정물>, 1978, 캔버스에 유채, 24.4×40.8cm
그는 종군화가로 수채화 <다부동 전투>나 <전선 스케치> 등의 몇몇 기록화를 남겼는데, 종군 당시 그가 그린
<총을 멘 병사>와 <병사>, 정준용(鄭駿溶, 손응성과 함께 종군했던 대구 출생, 서울대 미대 출신의
화가이자 삽화가)의 수채화 1점, 작가 미상의 데생 1점, 이상 4점이 하나로 묶여 2010년에 흘러나왔다. 이들 모두는 6·25
당시 그와 함께 종군했던 화가이자 삽화가인 전성보(全聖輔)의 구장품이다.
<총을 멘 병사>의 경우, 군복이나 안면부의 데생은 물론, 철모나 총의 질감 표현이 매우 탁월하다. 철모의 음영 효과는 일면 유화 작업에서의 석류나 놋그릇의 표면처리 방식과도 흡사해, 화가의 촉지적 감각과 회화적 기법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병사>의 경우, 전선에 끌려 나온 병사의 절제된 슬픔과 불안의 감정이 얼굴 부위의 마티에르를 통해 절묘하게 드러난다. 노출보다는 은폐가, 과장보다는 억제가 얼마나 더 크고 강력한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노정(露呈)하는 이 작품은 기술적 숙련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전신(傳神)을 표출하는데 얼마나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전범적 예증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