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 이범헌 위원장의 문화예술 행정 경력과 시각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국 문화예술계의 당면 과제를 짚어본다. 그동안 미술인 출신 행정가로서 이 위원장은 오광수, 김정헌 위원장의 뒤를 잇고 있다.
Q.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독립성 확보방안과 기본자본금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모색은?
A. 위원회의 독립성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예술 현장의 전문적 판단이 심의와 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때 확보된다고 본다. 이를 위해 심의·의결 기능을 강화하고, 2026년에는 장르별 전문성과 현장 경험이 반영되도록 심의위원 자격 기준을 보완했다. 지난 8월부터 2027년 지원사업 심의에 참여할 심의위원 후보단을 새로이 모집하며,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전문가와 창작자는 물론, 기획·국제 등 다양한 경력으로 실질적인 전문성을 쌓아온 인사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자격 판단 기준을 유연하게 개선했다.
재원 문제는 더 근본적이다. 문예진흥기금 적립금은 2005년 4,929억 원에서 2025년 약 411억 원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 사업비는 1,196억 원에서 4,339억 원으로 늘었다. 시작은 2003년 헌법재판소 결정이었다. 당시 헌재는 관람객에게 기금을 걷던 방식이 위헌이라 판단했으나, 그 취지는 정반대였다. 예술 감상의 정신적 풍요는 국가가 장려할 일이지 관객에게 부담을 지울 수는 없다는 것, 국가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한 결정이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취지에 맞는 새로운 대안을 설계하고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침 국회가 30여 년 만에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논의 중이고, 재원 안정화를 위한 법안 세 건도 이미 발의돼 있다. 이들 법안이 결실을 맺도록 적극 뒷받침하는 한편, 민간 후원 활성화와 자체 모금 강화를 병행해 지속 가능한 재원 구조를 만들어가겠다.
Q. 아르코미술관 관장이 25년 6월 이후 공석인데, 겸직으로 유지될지, 임용계획은?
A. 아르코미술관은 전시와 연구, 창작 지원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담론을 형성해 온 전문기관이다. 그런 기관인 만큼 독립적인 리더십과 중장기 비전을 갖춘 관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미술관이 나아갈 방향을 먼저 정리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그동안 기획과 창작, 비평, 관객개발, 국제교류, 건축 등 여러 분야의 현장 전문가들과 미술관의 정체성과 운영 방향을 논의해 왔다. 이를 토대로 향후 운영 방향도 상당 부분 구체화했다. 곧 이 방향을 실행할 전문성과 현장 경험, 공공미술관 운영 역량을 갖춘 신임 관장을 공모를 통해 선임할 계획이다. 신임 관장을 중심으로 창작자와 기획자, 관객을 연결하는 공공미술관만이 할 수 있는 플랫폼의 기능을 한층 강화하겠다.
Q. 시각예술창작산실 지원사업 자체평가와 앞으로의 개선점을 꼽는다면?
A. 시각예술창작산실은 시장 논리만으로는 지속되기 어려운 작가와 기획자, 비평가의 창작과 전시, 매개활동을 지원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과 수월성을 높여온 아르코의 핵심 사업이다. 그동안 지원사업은 현장의 다양한 활동을 폭넓게 포용하기 위해 개별 프로젝트의 제작과 발표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다만 프로젝트 단위 지원에 집중하다 보니, 한 번의 지원이 예술가의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성장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전시와 기획, 비평처럼 프로젝트 성격이 강한 매개활동은 기존 지원체계를 유지하되, 작가의 창제작 활동은 준비부터 발표, 성과 확산과 후속 활동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지원체계로 개선할 예정이다.
아울러 예술가의 경력 단계와 성장 과정에 맞춰 보다 정교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청년에서 유망, 중견작가로 이어지는 단계별 지원체계를 촘촘하게 마련하려 한다. 개별 프로젝트 지원을 넘어, 예술가가 안정적으로 창작을 지속하고 성장할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Q.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담론과 역사보존의 기초가 되는 미술 아카이브에 대한 지원 정책이 있다면?
A.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위상은 작가나 작품을 단순히 해외에 소개하는 것만으로 높아지지 않는다.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비평, 전시의 역사가 함께 축적되고 연구되어야, 국제 미술계에서도 한국 미술을 독자적인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개는 한 번의 사건이지만 맥락은 오랜 축적의 결과다.
이를 위해 시각예술 창작·매개활동과 비평·연구·아카이빙을 연계하고, 공공미술포털에 축적된 작품정보와 아르코예술기록원의 소장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디지털화하고 있다. 작가와 전시 관계자의 구술채록, 주요 전시와 공공미술 자료의 수집·연구를 확대하고, 이 자료들을 국내외 연구자와 기획자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과 국제적 확산 기반도 함께 강화하겠다.
Q. 임기 내에 반드시 이루고 싶은 핵심 성과를 한 가지만꼽는다면?
A.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예술인이 신뢰하고 국민이 필요로 하는 지원기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재원 구조를 안정화하고 다원화해 지속 가능한 창작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심사위원 풀 재정비와 심의 매뉴얼 고도화, 탈락자 피드백 도입 등을 통해 지원제도의 공정성과 신뢰를 회복하고, 행정 부담을 줄여 예술인이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더불어 기초예술 전반의 자료와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하는 아카이브 체계를 마련해 AI시대의 국가 문화자산으로 활용하고, 수도권과 지역의 문화 향유 격차를 실질적으로 줄이는 균형 있는 예술 생태계를 만들겠다. 화려한 사업 목록보다는 안정적인 재원과 공정한 제도, 축적된 문화자산과 지역에 뿌리내린 기반을 갖춘 지원기관의 구조를 남기고 싶다. 그 구조 위에서 다음 세대가 더 나은 환경에서 창작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 이범헌(1962- ) 홍익대 미술대학원 동양화과 석사. (사)한국예술문화단체 총 연합회 28대 회장, (사)한국미술협회 24대 이사장, 서울특별시교육청 문화예술특보, 문화체육관광부 미술주간 조직·자문위원 역임. 개인전 40여 회. 『예술인 복지에서 삶의 향유로』(2020, 밈) 등 저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