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랑 선생을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의 기획위원 시절에 만났다. 그때 회의를 비롯한 여러 자리에 동석하면서 매사에 열정적인 그의 태도와 폭넓은 관심, 관대하면서도 품위있는 어투와 성정을 느꼈다. 일랑은 학연은 없지만, 화단의 한참 손아래인 내게 꼬박 경어를 써 존중했다. 내가 그를 가리켜 ‘미술계의 거목’으로 부른 까닭은 그의 고결한 인품과 폭넓은 작품세계를 아우른 데 있다.

일랑 이종상은 학구적인 태도와 예술적 재능을 겸비한 작가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한국미술의 원형성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탐구했다. 나는 그의 이러한 선구적 관점에 대해 일찍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그의 관점은 늘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이 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비롯하여 우리의 산하가 지닌 기세와 지맥, 그리고 우리의 의식을 점유하고 있는 색채에 이르기까지 철학적인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학자연하지 않는다. 단지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이와 관련된 많은 글을 쓰고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그의 연구와 관심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자생성’ 혹은 ‘원형상’이란 표제어에 집약돼 있다. 자생성은 한 정의에 의하면, “한국적 미의식과 정체성에 작용하여 방향을 잡아주는 적응력, 즉 우리 미술의 특성을 유지하려는 근원적인 힘이다”
(『한국미술의 자생성』, 한국미술의 자생성 간행위원회, 한길아트, 1999) - 『월간미술』 2007년 5월호 윤진섭 글 《‘자생성’에 대한 예술적 실천》
60여 년에 이르는 일랑의 예술은 실로 원형상을 향한 대장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작업에 붙인 <원형상>이란 제목은 ‘자생성’이란 키워드와 함께 전체 화업을 감싼 하나의 화두라 할 수 있다. 일랑 예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원형상>은 조선의 고지도처럼 산하를 단순하게 처리한 기호적, 상징적 성격이 강한 시리즈 작품이다. 이러한 골격에 적, 청, 황, 흑, 백 등 오방색의 색채를 비롯한 다양한 기법과 재료적 실험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삼각형 혹은 지그재그 형태의 선묘로 상징화된, 산과 길을 암시하는 점선, 가늘고 긴 필선으로 표현된 내(川) 등등이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을 이룬다. 재료는 양지에 수묵, 장지에 수묵, 순지에 수묵, 장지에 수묵 천연채, 순지에 수묵 천연채, 화선지에 수묵, 장판에 수묵 천연채, 장판에 유탄, 닥종이에 수묵 천연채, 동판에 유약 등등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약 20여 년이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진행된 이 다양한 실험들은 비단 평면뿐만이 아니라, 병풍을 이용한 설치와 벽화에 이르기까지 방법론을 달리하며 다채롭게 전개되었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리하면 일랑이 추구한 ‘자생성’과 <원형상>은 잃어버린 우리의 정신과 얼을 회복하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 이념이 미학적 개념으로 내면화한 것이 ‘자생성’이며, 그것에 준거한 일랑 개인의 예술적 실천이 바로 <원형상> 시리즈이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법고창신, 즉 오늘의 현실에 맞게 옛것을 되살리고 새롭게 창조하는 일이다. 일랑은 후세에 많은 교훈을 남기고 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