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그 그림자

 

이선영(미술평론)

  

  

최근 참여한 아트페어를 포함하여 이번 전시에 발표하는 김성호의 작품은 정물이 중심이다. 같은 그림체가 적용되어서 풍경조차 정물같다. 풍경의 경우에도 탁 트여있다기 보다 안정된 또는 폐쇄적인 소우주 같다. 작품 [코스모스-바라보기 n-62](2026)처럼 원근법이 과장되어 앞의 식물이 화면을 다 뒤덮는 듯한 구도는 좋은 날씨의 산책로 일상을 틀에 가두어진 식물과 비슷하게 다룬다. 그는 놓인 또는 배치된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에 따라 정교하게 세팅한다. 언뜻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시점이나 그림자 처리 등, 이상한 구석들이 많다. ‘보편 정물’이라는 작품 제목은 그의 작품에서 관념의 몫을 상정한다. 정물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오랜 상징을 가지며, 전통적 상징이 사라져가던 근대미술에서도 조형 언어의 시험대로 자주 등장했다. 세잔의 사과 정물은 자연과 예술의 중간에서 예술 언어의 자율성을 타진함으로서, 이후 현대미술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된다. 


Common Objects N-49, 53 x 45.5cm, Acrylic on Canvas, 2026


김성호의 작품 [Common Objects n-59](2026)에서 테이블 아래로 쏟아질 듯한 사과의 구도는 세잔을 떠올린다. 선악과부터 뉴턴의 사과까지 사과는 대표 과일이며, 세잔 또한 자연과 평행한 조형적 질서를 시험하는 장기판의 말로 활용했다. 세잔의 경우 태피스트리같은 촉각적인 화면이 산풍경과 사과정물에 공히 적용됐다. 촉각적 화면은 이후 브라크를 비롯한 입체파의 공간개념에 영향을 준다. 김성호의 작품 또한 촉각적이다. 그는 젯소를 이용해 보조제를 쌓고 송곳이나 볼펜 등으로 긁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여 화면에 텍스쳐를 남긴다. 그는 이에 대해 ‘화면에 남아 있는 붓터치 위에 새로운 터치를 얹을 때, 불규칙한 마티에르, 강하게 남겨진 움푹 패인 선의 자국들은 그 무엇의 발자취와도 같이, 그것들의 각인이면서 시간이 지나간 흔적과도 같이 느껴진다. 결국에는 남겨지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사라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의 질감은 눈에 보이는 현재 뿐 아니라 현재의 전후 모두와 관련된다. 


붓 이외의 도구로 섬세하게 작업하여 재현주의의 근간인 시각성에 대안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정물에 대한 실험뿐 아니라, 작품에 미술사적 의미를 지니는 화가들의 화집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은 역사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하지만 김성호의 작품에서 미술사의 줄기는 조금 비틀린다. ‘새로움에 대한 전통’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나올 만큼 새로움은 강박관념이 되다시피 했지만, 그 충격들은 기존 사회는 무관심이나 물신화를 통해 사회에 재통합되곤 했다. 그는 떠들썩한 반대보다는 약간 어긋남이라는 전략을 통해 현대미술가로서 자리를 찾는다. 정물에 대한 전통과 근대의 관례인 죽음과 조형적 실험은 그의 작품에도 깔려있다. 현재 주로 서양화 재료를 사용하긴 하지만, 그가 한국화를 전공했다는 점은 ‘보편적’ 조형 언어로 간주 된(마치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었듯이) 서양미술사의 관례에 대한 거리두기와 자유로운 대화를 가능하게 했다. 


Common Objects N-50, 50 x 72.7cm, Acrylic on Canvas, 2026


Common Objects N-55, 27.3 x 45.5cm, Acrylic on Canvas, 2026


그의 작품에서 한국화의 관례와 관련된 유희는 곳곳에 남아있다. 아크릴로 그린 작품은 재현적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근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한국화의 이동 시점이 자유롭게 구사된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한국화에는 없는 그림자가 과도하게 강조돼 있는데 그것은 현실을 더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환영의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을 강조한다. 그림자는 인위적으로 덧붙여진 무엇으로 다가오는데, 그것은 미시적 관점에서 볼 때 사물 내부에 있을 허(虛)의 공간이 빠져 나온 유령같은 것이다. 검은 선으로 사물을 둘러친 것은 선에 기반한 한국화의 특징이다. 한국화의 관례 또한 서양화의 그것처럼 애매하게 적용된다. 김성호의 ‘보편 정물’을 이해하기 위해 예술과 철학에서 보편의 의미를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근대미술사의 시조로 알려진 세잔은 회화의 보편적 언어를 구축했다고 평가된다. 그것은 지시대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 회화의 문법을 말한다. 


마이클 리비는 [조토에서 세잔까지]에서 세잔의 작품이 ‘풍경이나 정물이 보여주는 사물의 핵심, 말하자면 사과의 사과적 성질은 영원히 고정되어 있다...닮음을 잡아내기보다는 각 형태와 패턴 간의 관계를 영속화시키기 위해 모델을 끊임없이 정밀 조사했다. 세잔은 결국 눈에 보인 사물을 전통적으로 바라보고 기록하는 방식을 벗어나게 된다’고 기록한다. 앨런 보네스도 [모던 유럽아트]에서 세잔은 그림의 구축에 관한 문제에 집중했다고 평가한다. ‘이것은 3차원 세계를 평면의 사각형이라는 그림의 용어로 번역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앨런 보네스)였다. 세잔을 기준에 둔다면, 그림에서의 보편성이란 ‘캔버스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가장 중요한 공통 기준’을 말한다. 그래서 고갱은 ‘세잔은 모든 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림을 위한 정확한 공식을 발견했을까. 만일 그가 모든 감각의 강렬한 표현들을 압축해 하나의 유일한 과정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면...’이라고 물었다.(앨런 보네스) 


Common Objects N-59, 33.4 x 24.2cm, Acrylic on Canvas, 2026


Common Objects N-66, 60.6 x 72.7cm, Acrylic on Canvas, 2026


철학에서는 보편성이 어떻게 정의되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철학의 역사를 다룬 버트란트 러셀의 [서양철학사]에 의하면,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철학의 근본이 되는 실체 개념은 주어와 술어라는 논리적 범주에서 도출된다....이러한 낱말들이 실체들(substances)을 지시한다고 생각된다. 라이프니츠는 일생 동안 자신이 보편언어라 부른 일종의 보편수학을 발견하리라는 희망을 간직했는데, 보편 수학이 확립되면서 사고를 일종의 계산으로 대체해도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당한 추론’에 대한 논의나 논쟁이 그저 ‘계산’으로 환원되는 것이 옳은지는 의문이다. 김성호의 작품 제목에 ‘Common, Universal’ 같은 개념이 들어가 있는 것은 그림에 깔리는 상징, 알레고리, 광학적 시각성 등과도 거리를 두는 미학적 전략이 포함된다. 보이는 것보다는 기억과 감정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이 관념적이다. 이전에는 한 작품마다 관련 에세이를 길게 작성하기도 했다. 


물론 말과 사물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현실과 그의 그림과 글들 사이에, 심지어 글과 말 사이에도 있는 균열은 각각이 필요한 이유와 상호 보충하는 관계를 말해준다. 정물이 아니어도 모든 이미지에 깔린 죽음과의 대화는 핵심적이다. 삶에 대해 묵직한 고민을 했던 청년기에 맞은 친구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지만, 위험사회에서 죽음이 상시화되고 편재한다는 사실이 작품의 기조를 유지하게 했다. 허상같은 삶의 허무함에 대한 생각은 인간의 외형이나 껍질과 구름을 결합시킨 이전의 작품부터 나타난다. 한편 조형적 측면에서도 죽음의 그림자는 떨칠 수 없다. 이미지란 지금 없는 것에 대한 기억으로 작용해 왔다. 사진은 ‘부재에 대한 환기’(수잔 손탁, 롤랑 바르트)라는 역설적 특징이 지적된다. 사진은 근대의 발명품이기 이전에 그림도 공유하는 오랜 시각 전통의 관례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 그려져 예쁘기까지한 김성호의 그림에서 불안한 부재의 기호는 색에서 찾아진다. 


Common Objects N-61, 45.5 x 37.9cm, Acrylic on Canvas, 2026


Universal Object N-21, 33.4 X 24.2cm, Acrylic On Canvas, 2025


겉으로 드러난 색이 아니라 윤곽선으로 남아 있는 색이다. 그의 작품에서 개별 대상의 존재를 확실히 드러내는 검은 윤곽선은 바탕색이다. 그는 백지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검게 칠한 다음 시작한다. 어둠에서 시작하지만 밝음을 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의 흔적은 중요한 지점에 남아 있는 것이다. 작업이 진행되면서 블랙은 밝거나 화사한 색으로 덮이고 윤곽만 남아서 개별 존재의 지지대가 되어준다. 어둠에서 나와 어둠으로 되돌아가는 모든 유기체에게 블랙은 작품 밑바닥처럼 깔려있다. 작품 옆구리를 보면 블랙을 깔고 다른 색이 올라가는 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작업을 ‘아크릴 수묵화’로 명명하는데 그것은 ‘먹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검은색의 먹을 긋는 것이 아닌, 화면에 바른 검은색을 지워가면서 검은색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시간의 일차원적인 방향이 아닌, 다차원적인 방향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죽음은 부정적이고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고 필연적이다. 정물화에는 귀하고 멋진 사물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찮고 일상적인 사물도 명확한 선으로 그 정체성을 확실히 해준다. 양극화로 치닫는 거대한 쏠림의 추세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는 일의 어려움은 보편적이다. 대상들 또한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버려진다. 유리나 도기로 만들어진 정물의 용기들은 쉽게 깨진다. 김성호는 수년간 작업을 잠시 접은 시기도 있었고, 40대 후반인 지금도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요즘 작품의 스타일이 본격화 된 것은 2013-2014년경 부터다. 그의 작업실 한켠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0호에서 2호 사이의 작은 작품들은 강의 등, 다른 일정을 소화하고 밤늦게서야 마치 일기 쓰듯이 그날그날 그려보는 실천의 산물이다. 큰 작업과 달리 한번에 갈 수 있는 소품은 작가의 감각과 기법을 유지하고 단련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Common Objects N-64, 45.5 x 53cm, Acrylic on Canvas, 2026


Common Objects N-65, 60.6 x 72.7cm, Acrylic on Canvas, 2026


Common Objects N-68, 60.6 x 72.7cm, Acrylic on Canvas, 2026


자기 정체성의 상실, 요컨대 환경으로 자기 경계가 녹아 들어가는 상황이 바로 죽음이다. 현대인은 실제로 죽기 전에 사회적으로 죽는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죽음을 애써 외면한다. 사건사고가 터져야 불현듯 죽음이 다가오며, 일상에서는 다른 모든 것들처럼 상품화의 회로 속에서만 소소하게 의미화될 따름이다. 대상을 둘러싼 검은 윤곽선은 삶을 유지하고 가능하게 하면서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동시에 말한다. [흙길 위] 시리즈는 다양성과 통일성의 소우주를 보여준다. [흙길 위(달빛 왈츠) n-40](2026)에서 식물과 새는 화면 가득히 펼쳐져 있고 배경은 달과 별이 빛나는 우주다. 평면으로서의 화면과 재현, 상징적 우주가 모두 겹쳐진 듯하다. [흙길] 시리즈에서 여러 종의 식물들이 서로 대화하듯이 평화롭다. 자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종 다양성은 건강하고 평화롭다. 3차원적 부피감과 2차원같은 패턴도 공존한다, 하지만 그 다양성이 대지와 실제로 연관되는지는 미지수다. 


정물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김성호의 작품에는 무언가를 담아내는 크고 작은 용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림 또한 무엇인가 담아서 가상적 이해와 소유를 권하는 패러다임을 가진다. 탁자 위에 상자 그 안에 오브제들이 있는 작품 [Common Objects n-64](2026)의 배경에는 액자 그림의 일부가 보인다. 테이블, 상자, 액자, 그 안의 여러 그릇들, 그리고 그것이 담긴 그림 모두가 무언가를 담는 용기(用器)다. 정갈하고 질서 있게 놓여있는 그것들은 일관되지 않은 시점의 복합체다. 담아서 보여주고 가상적으로 소유하는 그림의 패러다임은 조금씩 엇나가는 어법으로 문제시된다. 이물감부터 기이함까지 다양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림자다. 재현의 기원 중의 하나에 그림자가 있다. 빅토르 스토이치타는 [그림자의 짧은 역사]에서 고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를 인용하면서, 회화가 선으로 윤곽을 그린 인간의 그림자에서 최초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Universal Object N-23, 31.8 X 40.9cm, Acrylic On Canvas, 2026


Universal Object N-44, 37.9 X 37.9cm, Acrylic On Canvas, 2025


‘회화가 처음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신체의 부재와 그 투영된 형상의 존재가 포함되어 있었다. 재현이 그림자에 근거를 두었던 근본적인 목적은 부재 중인 것을 현존하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보조물’이다. [그림자의 짧은 역사]에 의하면 벽면에 동굴 밖 실체의 그림자들이 투영되는 플라톤의 유명한 비유는 투영이라는 모티브에 관련된 대표적인 재현의 탄생 설화이다. ‘들뢰즈는 플라톤주의가 현상 배후의 본체, 이데아를 중시하며, 이를 근거짓는 재현에 묶여있다고 지적한다. 동일성은 아득한 태고의 원형이 지닌 특성이 되고. 플라톤의 사유는 곧 원본과 이미지의 구별, 원형과 모상의 구별이다. 여기서 원형은 어떤 근원적이고 월등한 동일성을 누리고 있다고 간주된다.’(빅토르 스토이치타) 재현에 관련된 담론은 작품에서 관념을 중시하다 보면 동질화하는 사유가 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김성호의 그림에서 ‘보편적 관념’은 원형과 본질을 정의하는 자기 동일성의 형식은 아니다. 


부조리한 그림자가 끼어드는 그의 작품은 재현적 질서에 부합되지 않는 결여와 부재를 두드러지게 하기 때문이다. 투명한 거울 반영과 비교해서 불투명한 그림자는 타자를 강조한다. 존재가 아니라 부재를 말한다. 그림자는 조리가 맞지는 않거나 때로 대상에 종속되지 않은 존재감이 있다. 그는 정지된 회화 언어를 보충하기 위한 잠재적 동감의 표현에 같은 형태의 다양한 상태를 도입한다. 작품 [Common Objects n-66](2026)에서 바구니에 가득 들어있는 사과들은 명확한 검은 외곽선이 다소 간의 부피감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평면적이다. 꼭지의 여러 방향은 그 안에서의 잠재적 동감을 만든다. [흙길 위 n-48](2026)에도 붉은색 배경 위로 여러 단계의 개화가 표현되어 있다. 검은 외곽선은 존재를 확실하게 표현하지만 그 맥락은 불확실하다. 작품 [Common Objects n-60](2026)에서 모서리 안쪽의 컵은 3차원을 이루는 세 좌표 안에 확실하게 자리하는 듯이 보이지만 탁자 아래는 불확실하다. 


Universal Object N-43, 27.4 X 45.6cm, Acrylic On Canvas, 2025


모란디의 컬러 N-58, 30 x 30 cm, Acrylic on Canvas, 2026


하나하나는 정확하지만 전체적으로 수수께끼 같은 그의 그림은 가상이 현실적 맥락과 충돌하는 지점을 가리킨다. 작품 [Universal Object N-33](2025)에서 책, 꽃, 카메라, 필름, 자동차, 그릇 등은 작업하는데 필요한 일상적 물건들이나 서로의 비율은 각기 다르다. 벽 위에는 그림들이 걸려있어, 그림 안의 그림이라는 구도를 보여준다. 수많은 화집 중 특정 작가가 등장하는 것은 그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또한 그것은 메타적 차원을 가진다. 요컨대 작품 속의 작가는 예술에 대한 예술을 가리킨다. 그 과정은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작품 속 그림 안의 그림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작품 [Common Objects N-50](2026)에서는 반 고흐의 화집이 시선 방향에 수직으로 놓인다. 그러나 그 옆 컵의 시점은 다르다. 꽃, 빗, 거울 등의 시점도 제각각이며 그림자도 마찬가지다. 강한 외곽선에 둘러싸인 개별적인 것들의 존재감은 강하지만 그 모두가 모였을 때 재현적 합리성은 사라진다. 


화집 속의 꽃은 지지 않겠지만, 테이블 위의 꽃은 질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그림이기에 시들지 않을 것이다. 반 고흐는 예술에 자신을 불사른 작가로 정물도 많이 그렸다. [모란디의 컬러](2026)는 병이나 그릇을 많이 그렸던 정물의 거장과 대화한다. 망가진 꽃과 갈매기가 있는 [Common Objects n-52](2026)에서 화면은 몬드리안적인 수직 수평의 구도로 질서있고 편안하다. 르네 마그리트의 화집과 정물이 있는 [universal object n-44](2025)에서는 조금씩 비틀어서 부조리한 풍경을 만든 초현실주의 화가를 오마주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정물 뒤 배경의 사각형이 벽에 걸린 그림인지 창문인지는 불확실한 작품 [universal object n-23](2026)에도 대화적 관계로 등장한다. 모네의 화집이 등장하는 [universal object n-43](2025)에서 보이는 광경, 즉 눈에 광적으로 충실하다가 움직이는 듯한 추상적 표면으로 귀결된 근대미술의 선구자 모네의 역설을 참조한다. 


코스모스-바라보기 N-62, 40.9 x 24.2cm, Acrylic on Canvas, 2026


흙길 위(달빛 왈츠) N-40, 60.6 X 60.6cm, Acrylic On Canvas, 2025


흙길 위(on the Dirt Road) N-48, 53 x 45.5cm, Acrylic on canvas, 2026


마이클 리비는 [조토에서 세잔까지]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정확히 그리겠다는 모네의 의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말하자면 어떤 사물도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는 그림을 낳은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현대미술사는 다양한 가정으로 뒤덮인 재현의 공간을 해체하면서 구축되었다. 그 위에서 21세기의 화가 김성호가 구축하려는 것은 그만의 시간 감각이다. 현대적 삶이 배제한 죽음을 여러 조형 어법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시간의 차원을 늘리는 방식이다. 그의 작업은 공간적 지각 보다는 시간적 기억을 엮는다. ‘사소한 것과 무거운 것 사이를 오가며, 내가 감각한 모든 이야기는 작업의 재료가 된다...기억 속의 이미지들을 조립하는 과정은 마치 숨겨진 방들의 문을 여는 기분이다.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발견하기도 하는가 하면 예상했던 익숙한 풍경을 그대로 느끼기도 한다. 작업 중에 발견된 각각의 소재들은 그 당시의 생각을 되새김질하게 된다’고 말한다.

 

출전; 갤러리 소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