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것들을 위한 풍경  

  

이선영(미술평론가)

 


문준호는 실리콘 실란트를 마치 유화나 아크릴 물감처럼 사용한다. 물론 분리된 것을 연결하는 접착 기능의 활용은 기본이다. 캔버스 위에 그리는 작품뿐 아니라, 나무, 철사, 철망 등 여러 재료를 실리콘으로 접합하여 조각과 설치 작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접합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나무못이나 각목같이 일정한 구조의 재료와 결합하여 좌대나 또 다른 화면으로 변신한다. 실리콘을 쏴서 그린 작품은 언뜻 보통 그림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림틀 바깥으로 비죽비죽 나와 굳은 고무 질감의 덩어리들은 이물감 있는 재료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실리콘을 2016년부터 사용해 왔고, 그동안 회화부터 조각에 이르는 실험을 거쳤다. 한 재료로 펼칠 수 있는 최대치의 실험은 매체의 특수성을 드러나게 했다. 그는 ‘자연의 풍경을 그리는 과정에서 실리콘을 회화의 재료이자 하나의 조형적 언어로 사용해 왔다’고 말한다. 분리된 것을 연결하는 방식은 작품 내용과도 이어진다. 


남겨진 바위, 2026, Silicone on canvas, 60.6x60cm



문준호의 풍경은 사실에 기초한 것이든 환상적이든 스산하다. 우선은 주요 재료의 칙칙한 색감이 풍기는 분위기 탓이 크다. 아크릴 실리콘 실란트는 색도 가능하지만, 2019년 이래의 작업은 주로 검은 실리콘으로 만들어졌다. 무채색의 어두운 분위기에 산업 재료 자체가 가지는 딱딱한 속성이 더해진다. 요즘 작품이 나온 배경에는 예술보다는 그가 당면했던 현실의 압력이 컸다. 문준호는 20대에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실리콘을 발견하여 회화로 발전시켰다. 초기 작업은 공장과 비무장 지대에서 보낸 시간들을 반영하는 풍경들이 담겨있다. 군인과 노동자의 몸은 대표적으로 ‘생산적’이며 이면에는 억압과 감시가 있다. 미셸 푸코는 [감옥의 역사; 감시와 처벌]에서 고전주의 시대에 신체는 권력의 대상이자 표적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이 발견되었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그 당시 신체란 만들어지고 교정되고 복종하고 순응하고 능력이 부여되거나 혹은 힘이 다양해질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됐다. 


‘어떤 사회에서나 신체는 매우 치밀한 권력의 그물 안에 포착되는 것이고, 그 권력에 신체의 구속이나 금기 혹은 의무를 부과해 왔다’(미셀 푸코) 실리콘 건이나 총을 든 남성 주체는 기업과 국가 같은 체계화된 권력의 감시하에 있고, 그 또한 약간의 권력을 부여받아 무엇인가를 감시할 수 있다. 문준호의 한 작품에는 감시하고/감시당하는 시선의 교차가 한 덩어리의 판 앞뒤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그의 작품 속 공장이나 접경지의 몸은 ‘어떻게 개개인의 시간을 자본화하여 그것을 활용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각 개인의 신체나 힘이나 능력 속에 축적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익을 가져다주는 시간의 흐름은 어떻게 조립하는가. 공간을 분석하고 모든 활동을 분해하여 재편성하는 규율은 또한 시간을 가산하여 자본화하기 위한 장치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미셀 푸코) 20세기의 양차 세계 대전이 말해주듯이, 전쟁이 나면 공장이 빡세게 돌아가며, 과잉 생산물이 제대로 팔리지 않을 때 전쟁이 발발한다.



남겨진것, 2026, Silicone on canvas, 24.8x34.8cm



전쟁의 본질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은 대형 회화지만, 그는 평소에도 실리콘으로 드로잉을 많이 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큰 작품들과 함께 전시된다. 실리콘에 면봉이나 드라이버 같은 단단한 도구로 긁어 그린 공장 같은 산업사회의 풍경이나 군대에서의 경험이 드러난 작품은 재료와 내용을 연결시킨다. 이런 드로잉은 차가운 금속 프레임과 잘 어울린다. 그에게 드로잉은 작업의 첫 단추로, 캔버스를 20x20cm로 잘라서 바로 액자로 옮길 수 있게 만들고, 그 중에는 큰 캔버스에 회화로 옮겨지기도 한다. 작업 중의 공장 노동자나 최전방의 군인과 관련된 이미지는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지만, 집단과 강제, 잠재적인 전쟁과 경쟁이라는, 자유로운 예술가라면 피하고 싶은 삶이 스며있다. 요즘 작품은 초현실주의적인 신비로움이 감돌지만, 폐허같은 느낌은 여전하다. 근대의 키치가 순수 예술의 이면이듯이 낭만주의는 가혹한 현실의 이면이다. 


문준호에게 실리콘은 음울한 현실과 그로부터 파생된 낭만적 환상을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석탄을 동력으로 공장들이 쉴새 없이 돌아가며, 온 천지가 시커멓게 변화했던 산업혁명기의 영국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환상적인 문화예술을 생각해 보라. 존 하비는 [블랙 패션의 문화사]에서 디킨스를 비롯한 영국의 작가들에게 등장하는 ‘어두운’, ‘검은’이라는 단어는 부두, 철도, 공장, 사무실, 교회, 감옥을 묘사할 때도 계속 등장하며, ‘어둡고 쓸쓸한 거리’, ‘검은 흙과 썩은 물이 가득한’. 런던의 연기 가득한 매연은 검은색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반대로 블랙과 낭만적인 것이 연결되기도 한다. ‘거기에는 낭만적 영웅의 한가한 멜랑콜리가 결합되며...무덤같은 태도, 불가사의한 과거, 황폐함, 죽음의 과시...’ (존 하비)등이 그것이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린 풍경은 숲, 빛, 폭포, 강 등이 포함된 낭만적 자연이며 실제 풍경을 보고 그린 것은 아니다. 



남겨진것들을 위한 풍경 시리즈( 조각 작업)



게임을 포함해서 여러 기원을 가진 그럴듯한 이미지들을 편집하고 합성하여 만든 풍경이다. 그림 안에 실리콘 폐기물을 이용해 만든 조각 작품들 뿐 아니라, 세월에 무너진 인공물 이미지가 포함된 것에 대해 작가는 ‘버려진 것을 위한 풍경’이라고 말한다. 햇빛을 가득 받고 있는 폐허의 풍경 유적지의 풍경은 시간이 무너뜨린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잔해들이 감상에 빠지게 한다. 작품 [남겨진 바위](2026)에서 기념비 앞 관객과 같은 자세로 있는 사람은 사라진지 오래된 것을 바라보는 살아있는 존재다. 이름 모를 유적지는 삶이라는 무대의 유한성을 일깨운다. 공간과 시간의 좌표가 불분명한 문준호의 풍경은 낭만주의적이다. 아득한 시간대와 광활한 공간이 배경인 낭만주의에서 폐허는 자주 등장하여, ‘낭만적 폐허’라는 관용어도 생길 정도다. 문준호가 자연풍경을 기본 배경으로 한다는 점, 여기에 잃어버린 과거 문명의 도상들이 등장한다는 점은 낭만적이다. 


대자연의 야생성을 배경으로 한 문명, 그 앞에서의 숭고함과 무력감의 연출은 우울부터 신비에 이르는 감상의 기조를 유지한다. 문준호의 작품 속 기념비는 잡초에 덮여있지만 그중에는 같은 전시장에서도 볼 수 있는 돌 모양의 기념비다. 좌대에 정성스럽게 배치된 기이한 형태는 수집된 자연석, 즉 수석같은 느낌도 주지만, 운석 조각같은 난데없는 괴물체를 떠올리기도 한다. 수석이나 소원을 담은 돌탑을 닮았지만, 봉인 해제되면 무슨 재난이 터질지도 모르는 수수께끼같은 물질로도 보인다. 실제로는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의 부피와 무게지만, 회화라는 축소모델 속에서 규모의 조작이 이루어진다. 다른 위대한(?) 기념비와 마찬가지로 좌대 위에 올려 있는 돌 모양의 구조의 실체를 관객은 비교적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은 회화작품들 안쪽에 배치된 조각인 실리콘 폐기물을 이용한 돌의 연출이다. ‘남겨진 바위’라는 문학적인 제목이 실은 쓰고 남은 찌꺼기의 재활용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목마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2026, Silicone on canvas, 162.1x227.3cm



조각작품을 포함하여 그의 작품 전체가 남겨진 것들을 위한 풍경에 해당된다. 그는 이러한 선택에 대해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가는 동안 캔버스 위에 선택되어 이미지가 된 실리콘과 함께, 선택되지 못한 채 남겨지고 버려지는 실리콘 또한 계속해서 쌓여갔다. 나는 회화의 일부가 되지 못했던 실리콘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기능을 잃고 굳어진 실리콘을 수집하고 쌓아 돌과 암석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재구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입체는 다시 캔버스 위에 실리콘으로 기록되며, 기존의 풍경을 확장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이 과정에서 실리콘은 회화를 만드는 재료인 동시에, 선택되고 배제되는 과정의 흔적이 된다.’고 밝힌다. 공업 재료인 실리콘 찌꺼기는 양옆의 돌조각과 비슷한 모양새로 서 있음으로 인해 서로 다른 시공간대의 균열과 동시에 이어짐을 보여준다. 이어짐이란 결국 먼저 분리 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이어짐 또한 영원하지 않음을 말한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게 없으며 뭐든 순환되는 거니까, 이어짐은 필연이다. 그의 작품에는 실리콘으로 그림을 그리고 남은 찌꺼기가 돌조각으로 연출되고 그것이 다시 회화로 들어오는 순환구조가 있다. 정체불명의 유적을 칭칭 감고 있는 식물들 또한 격세유전적인 존재 아닌가. 특히 화면 가장자리를 뚫고 확장하려는 부분이 식물 이미지라는 사실은 자연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실리콘은 고도로 인공적인 재료지만 자연에 내재한 잠재적 속성을 현실화시킨다. 하지만 실제로부터 형을 떠내는 재료이기도 한 실리콘은 그 태생부터 가짜스럽다. 실리콘은 떨어져 있거나 들떠있는 빈틈을 접합시켜주는 산업 재료지만, 신체 보형물부터 에로틱한 ‘고무 인형’까지, 더 나아가 가상현실의 산실인 실리콘 밸리까지, 그 융통성 있는 성질이 두루 활용되어 왔다. 문준호에게 실리콘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연결해 주고 경계를 넘나드는 매체로 활용된다. 


호수 위에 쌓은 돌, 2026, Silicone on canvas, 60.6x60.6cm



서로 다른 시공간의 날카로운 경계면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실리콘은 현실과 환상 뿐 아니라, 낭만주의와 초현실주의의 미술사적 관계도 짚어준다. 물감으로도 그 비슷한 이미지를 그릴 수는 있지만, 유화와 달리 실리콘은 파손의 위험 없이 사각 틀 바깥으로 연장될 수 있다.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조각작품과 같이 전시됨으로서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은 이어진다. [흐른 뒤에 쌓은 돌](2026)이라는 제목은 그의 작업 과정을 포함한다. 실리콘 건으로 반액체 상태를 물감처럼 흘려보낸 후, 남은 찌꺼기로 돌조각을 만든다. 그는 ‘선택되어 그림이 된 실리콘은 선택되지 못한 실리콘을 다시 바라보고 기록한다. 나는 이를 통해 하나의 풍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지, 그리고 이미지가 되지 못한 것은 어떠한 형태로 다시 존재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고 말한다. 실리콘과 실리콘 점토로 만들어진 돌은 보기 보다 매우 가볍다. 


조각은 3차원적으로 뭉쳐지지만, 평면 작품은 얇게 펴 바른 것이다. 조각과 달리 평면 작품은 붓으로 그린 듯 섬세한 필치를 보여준다. 실리콘은 펼쳐지고 뭉쳐지고, 뭉쳐진 것이 다시 (그림 안에 들어와) 펼쳐진다. 문준호는 접합이라는 형식에서 비롯된 내용을 전개하는데, 그것은 분단 현실까지 이어진다. 비무장지대 풍경 시리즈는 긴 각목을 뗏목처럼 이어서 비무장지대의 풍경을 담는다. 풍경은 수평으로도 수직으로도 구성한다. 문준호는 군대에서 접경지 초소 근무를 했는데, 비무장지대는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살벌한 곳(얼마 전 수색대에서 지뢰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이면서도, 야생동물 등 자연이 잘 보존된 장소로, 역사와 자연의 괴리가 선명하다. 2025년부터 시작한 각목을 연결시킨 판에 그려진 풍경은 다른 풍경과 달리 실존하는 장소가 많다. 각목 설치 작품은 하루 8시간 이상 봐왔던 DMZ의 동선들을 길게 이은 것이다. 분단의 철책처럼 가로로 죽 이어져 있으며, 그곳에 일어나는 여러 활동이 반영된다. 



흐른 뒤에 쌓은 돌, 2026, Silicone on canvas, 162.1x227.3cm



풍경 속 실리콘은 파이기도 하고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그것은 잠재적 전쟁터의 모습이다. 작품 속 굴곡들은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묻혀진 비밀을 파헤치고 잇고 해석하는 과정을 공유한다. 실리콘은 긴 각목을 레고처럼 연결시킬 수 있게 했다. 세로로 세운 작품은 앞과 뒤 모두 이미지가 있다. 감시의 눈길이 사방에서 교차하는 그곳에서 작가가 본 장면을 일부일 따름이다. 작품 [목마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2026)에 나타나듯, 목마가 등장하는 신화부터 그의 조각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아슬아슬한 수직 구성까지 풍경은 다양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품는다. 폐허란 사라진 맥락을 말한다. 우리는 폐허 속에서 남은 조각들을 이어붙어 추론한다. 문준호의 실리콘 접합술은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여러 겹,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거듭해서 해석되며, 작품과 작품 사이에도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작품 [흐른 뒤에](2026)에서 특정 학교 학생이라면 알아볼 수 있는 신전같은 건물은 폐허가 되어있다. 


아름다움의 모델인 고전 조각상 또한 깨진 상태다. 하지만 물웅덩이 근처의 그로테스크한 돌조각상은 정상/이상이 구별되지 않는다. 깨져도 어디가 깨졌는지 모르는 돌조각상과 달리, 완벽한 미의 화신은 그저 파괴될 따름이다. 두상은 인체 중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 그 균열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돌 조각상은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폐허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위치에 있다. 이 풍경 또한 숲을 가장자리에 배치하여 경계의 넘나듦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밀집된 풀숲을 표현하기 위한 형식은 매우 촉각적이다. 그의 작품은 물감이 아니어서 관객이 만질 수 도 있다. 시각적 촉각성 뿐 아니라, 실제로 촉각적 체험이 가능하다. 햇빛을 가득 받는 촘촘한 잎들은 자연의 질감을 보여준다. 부분만 보면 추상인데, 그것은 자연의 재현이 아닌 자연적 과정의 재연이다. 세포가 분열하는 듯한 맹렬한 생명력은 인류의 위대한 기념비를 상대화한다. 



흐른 뒤에, 2026, Silicone on canvas, 162.1x227.3cm



작품 [남겨진 것](2026)에서 누군가의 간절한 기원이 담긴 돌탑은 울퉁불퉁한 형태들이 수직 방향으로 가까스로 균형을 잡는다. 돌을 쌓은 자는 사라지고 ‘남겨진 것’은 누군가의 희망을 보여준다. 이미지 자체가 ‘남겨진 것’이라는 부재(不在)의 운명을 가진다. 중력의 압력에 이 불안한 균형을 가능하게 한 것 또한 문준호의 만능 미디어가 된 실리콘이다. 그는 이 ‘탑’에 빛을 가득 쏟아서 아우라를 부여했다. ‘기계복제 시대에 사라진 것은 아우라’(발터 벤야민)인데 대량복제 시대인 산업사회에 태어난 근대인은 사라진 아우라를 복구하려고 한다. 특히 문준호의 작품은 무채색 모노톤이어서 빛의 효과는 더욱 강렬하다. 대중적 낭만주의의 도상이 활용되는 그의 작품은 종교적 전통을 소환한다. 존 하비는 기독교 초상에서는 가끔 예수, 특히 변용을 이룬 후의 눈부신 예수를 밝은 빛 한가운데보다 아주 강렬한 어둠 가운데 표현하는 신비의 전통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무언가를 잇는 실리콘은 삶과 죽음, 성(聖)과 속(俗) 또한 잇는다. 인공도 더 기나긴 자연사에 편입될 수 있다. 작품 [호수 위에 쌓은 돌](2026)는 언뜻 흔해 빠진 도시의 장식 조형물같이도 보이지만, 깊은 숲이라는 배경은 물과 조각의 조합을 신화적 맥락에 놓는다. 모든 형태는 물로부터 나오며, 물로 사라진다. 형태와 물은 코스모스와 카오스의 관계를 가진다. 그것은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가 액체로 가득한 둥근 자궁에서, 더 나아가 원시적 바다에서 태어난 이래 인류의 상상계를 지배한 구조와 연관된다. 남겨진 것들을 위한 풍경 시리즈는 실리콘 찌꺼기로 제작한 것으로, 실리콘의 원래 기능이 매끈하게 이어주는 것이라는 점을 잊게 할 정도로 거칠고 야성적이다. 그것은 산업 재료 및 상품으로 가공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듯하다. 중력을 극복하고 세워지려는 기념비적인 형태는 각각의 기원이 다른 만큼이나 다른 모습이다. 



흐른 뒤에, 2026, Silicone on canvas, 162.1x227.3cm(부분 확대)


흐른 뒤에, 2026, Silicone on canvas, 162.1x227.3cm(부분 확대)



돌멩이를 층층이 쌓아 올린 모습이지만, 보는 이의 상상에 따라 이것저것으로 변신할 수 있는 잠재적 형상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동질이상의 양상에 의해 각조각들은 움직이는 듯하다. 그가 여러 장의 드로잉으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작품이 있기에, 그림이나 조각같은 정지된 매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 방법이다. 조각 하나하나도 너무 복잡한 표면과 실루엣을 가졌기에 명확한 의미로 귀결될 형태는 아니다. 그의 작품은 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에 시각적으로는 묵직하다. 빼곡히 쌓여 있는 ‘조각’들이 이어짐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수행한 후 더 이상 이어질 수는 없는 최종 산물이 된다. 분류가능해야 의미화되며, (재)활용될 수 있으니까 진정한 쓰레기란 분류할 수 없는 최종의 단계를 말한다. 그런데 이 궁극적 지점에서 예술이 나타난다. 예술 또한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것이 되고자 한다. 작가는 자연과 예술, 상품과 사물 사이에서 만들어진 괴상한 것들을 여기저기 던져 놓고 풍경으로 관조한다.


출전; 갤러리 소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