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민원화전
MOOMIN Original Artworks Exhibition
2017.09.02-2017.12.03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예술의전당은 뒷편의 우면산과 나무들이 있어 가을풍광이 아름답다. 우리가 도착한 해질녘의 늦가을 예술의전당은 짧은 시간이지만 특히 아름다웠다. 핀란드는 내게 그런 곳의 이미지이다.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곳, 자작나무숲이 우거진 고요한 나라. 가본적은 없기에 실제로도 그러한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 나라를 떠올리면 의례 무민마마가 같이 떠오른다.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제는 국제적으로도 사랑받는 그런 캐릭터. 그 원화 전시가 한국에 열렸다.

무민은 작가 토베 얀손이 창작한 캐릭터다. 하마인 줄 알았지만 트롤이란다. 트롤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나 난쟁이 등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페인트회사의 협찬을 받아서인지 파티션들의 색상이 남다르게 선택되었고, 흑백의 원화가 다수를 이룸에도 굉장히 다양한 색상으로 전시를 기억하게 했다.

전시에는 작은 원화들 사이로 간간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인쇄된 만화들이 붙어있어 우리가 보지 못한 무민 만화를 접할 수 있게 했다. 작품 내용에서 어린이 만화들에서 보이는 '이렇게 해야 해' 라거나 '이게 옳아' 같은 종류의 내용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떤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더라도 무민 가족들은 어떻게든 잘 풀어간다. 민폐가 될 만큼 우르르 친구들이 집을 방문하고 나가지 않아도, 갑작스레 해변에서 살고 싶다고 아빠가 모두를 해변으로 데려가 고생을 시켜도 말이다.
이번 12월 서울아트가이드 신간에는 토베 얀손에 관한 책을 한 권 소개했었다. 책 중 이런 내용이 나온다.
'토베의 삶은 진정 흥미롭다. 낡은 편견, 특히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문제에 대해 편견이 강한 나라에서 그녀는 인습에 갇힌 사고방식과 도덕 규율에 반기를 들었다. 토베는 혁명가였지만, 전도사나 선동가는 아니었다. 그 시대의 가치관과 태도에 영향을 미쳤지만, 기수 노릇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한 성정에 맞게, 자신의 선택들을 끝까지 고수했을 뿐이다. 남성과 대등한 여성의 지위와 독립성, 창의성, 평가가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녀는 일에서도 삶에서도 평범한 여성의 역할에 굴복하지 않았다. 어린 토베는 “자유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다”라고 썼었다. 그녀가 눈감는 날까지 그 무엇보다 가치 있게 여긴 진리였다.'
(『토베얀손, 일과 사랑』,툴라 카르얄라이넨 지음, 허형은 옮김, 2017.9, 문학동네 _ 10쪽 중에서
https://daljin.com/book/36890)

그가 태어나던 시기부터 젊은 날까지 내내 전쟁통이었다. 토베 얀손이 그림을 그리고 있던 어느 항구에서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수 있으니 젊은 부인은 빨리 애가 있는 집에 가라"라고 노골적으로 말할 수 있는 시기였다고 한다. 그런 세상에서 그는 "차라리 사람 얼굴 대신 벽만 보고 싶어. 전쟁이 계속되는 한 조금도 살아 있고 싶지 않아"라고 편지에 털어놓기도 했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 피난처였을 작품들에는 그래서 한없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원화들은 1:1 등대 인쇄의 시기였기에 아주 작다.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로 조금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눈을 떼고 지나칠 수 없는 것은 하나하나에서 풍기는 작가의 애씀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많은 양의 저작물을 남긴 토베였기에 전시품에는 만화와 동화 소설 등에 삽입된 원화 외에도 연극에 사용되었던 탈이나 의상을 함께 보여줘서 '원화전'이라는 작은 틀 안에 갇힐 전시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요즘 SNS에 무민을 찾으면 무민전시에서 사진을 찍고 온 사람들의 인증샷이 즐비하다. 이 전시를 온 사람들에게 작고작은 무민원화들이 만족감을 줄 수 없었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포토존이 그 만족도를 급격하게 올려줬다.

특히 무민 계곡에 실제 온 것 같이 느껴지게 만든 이 설정은 인기가 지나치게 많아서 교통체증(?)을 유발했다.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만 촬영할 수 있음에도 저 따뜻해 보이는 텐트 앞에서 찍기 위한 인파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잠시 잠깐 전시 지킴이의 눈을 피해 근처에서 촬영하고 마는 의지들을 보면서, 지켜줬을 때 우리가 모두 동화 같은 판타지 안에 있을 수 있음을 얘기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확실히 무민은 촉각적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캐릭터였다. 공간안에 조명을 통해 서로다른 무민 가족들을 빛으로 쏘아주는 이 전시공간은 저 배에 올라타고 저 무민조명들을 감상하면 한 시간 쯤은 질리지 않고 있을 수 있을거란 상상을 하게 해줬다.

전시 후반에는 무민과 관련된 상품과 이벤트가 진열되어있었는데, 작은 미니어쳐들이 잔뜩 들어있는 전시장에는 파란 무민하우스와 옹기종기 무민 가족들이 많이 있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나온 무민 책들도 진열되어 있었는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은 없었기에 표지로 만족해야 했다.

한편 무민 색칠공부 라던가 아이패드로 하는 무민 옷입히기 게임같은것들이 이루어지는 넓은 공간에는 잠깐이라도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패스하고, 그 앞에 무민인형이 벽 하나가득 진열된 포토존에서 촬영으로 전시관람을 마무리했다.

"내 인생에 들어온 여러분 모두 고마워요.
여러분 덕분에 내 인생은 진정 아름다워졌어요"<무민파파의 회고록>
요새 전시에서 엔딩에 작가의 말로 마무리하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는데 어쩐지 작가가 직접 건네는 말 같다. 여든 살 토베는 고단했지만 흥미롭고 파란만장한 삶이었다고 자신의 삶을 말했다고 한다. 그는 작품에 자신의 삶을 녹여낼 줄 아는 작가였고, 그래서 작품들은 절대 얕지 않다. 많은 이론가 뿐 아니라 정신분석가들이 연구를 할 만큼 그의 작품들에는 아직 다 읽히지 않은 이야기들이 넘실되는 듯 하다. 전시 자체가 엄청 훌륭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작품 저력으로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다는 느낌이랄까. 전시를 보고 나온 우리는 피곤함에도 너무나 기분 좋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진.글.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