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차연 : 집으로

2021.7.22-8.22

대안공간 루프



전시장 입구


화려한 것보다 버려진 것, 후진 것, 손이 가야할 것에 체질적으로 끌린다고 언급한 바 있는 하차연 작가는 우리가 사용하고 쉽게 버리는 비닐봉지를 향해 특별한 시선을 건넨다. 작가의 오브제로 채택된 비닐봉지는 작가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은 채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


‘쓸모없는 것’에 대한 관심은 작가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차연 작가는 지난 40년간 프랑스와 독일에서 활동해왔다. 그녀는 소수자, 외국인, 이방인이라는 타이틀 속에서 이주민의 삶에 주목한다. 유럽 길거리의 노숙자, 불법체류자, 난민 희생자 등에 동질감을 느끼며 정처 없이 떠도는 비닐봉지의 속성에 자연스럽게 매료된 것이다.




<스터디 리턴 홈3>, 비닐봉지, 액자, 501x149cm, 2019/2021



<집으로-지중해 난민들을 위한 헌정>, 퍼포먼스, 싱글 채널 비디오, 8분, 2019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검은색의 형상들은 각각의 액자 안에 담겨있다. 언뜻  봐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비닐봉지임을 알게 된다. 하차연 작가는 난민들이 더 이상 부유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비닐봉지에 유리판을 얹었다. 희생자들의 관을 상징하기도 한 비닐봉지를 유리판으로 덮는 퍼포먼스를 통해 작가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위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1층 전시장 전경



(왼쪽부터) 

<Balade de Carola>, 싱글 채널 비디오, 사운드, 9분 37초, 2008

<토지지기>, 싱글 채널 비디오, 사운드, 4분 9초, 2019

<The Collecting>, 싱글 채널 비디오, 사운드, 6분 36초, 2020



<Balade de Carola>, 싱글 채널 비디오, 사운드, 9분 37초, 2008


영상은 파리 생 마르탱 운하 주변에서 우연히 만난 비닐봉지의 여정을 좇는다. 보도에서는 사람들에게, 차도에서는 자동차에 의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비닐봉지는 떠돌아다니는 존재로서 무소속 혹은 탈소속의 상징으로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자들을 대변한다. 마치 그들의 고단한 삶을 말해주는 듯하다. 거기에는 작가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이방인 작가 혹은 재불 작가 등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그녀의 삶은 어딘지 모르게 비닐봉지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다. 





B1층 전시장 전경



<스위트 홈4>, 싱글 채널 비디오, 사운드, 7분 59초, 2009


하차연 작가는 2000년 초 파리 노숙인의 생활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한 <스위트 홈>을 제작한다. 우리의 안락한 생활을 돕는 매트리스, 이불 등과 주거 이동할 때 필수품인 여행가방 등은 굴착기에 의해 땅바닥을 여기저기 뒹굴며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강제로 내쫓겨 오고 가지도 못하는 유랑민의 삶을 담담하게 은유한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동시에 복지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서구 국가의 모순된 실상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매트, 보트, 카페트-나의 매트, 가족을 실을 배, 모두를 위한 양탄자>, 설치, 플라스틱 병, 노끈, 1988/2021

<네비게이션>, 싱글 채널 비디오, 7분38초, 2021


천여 개의 페트병을 노끈으로 연결한 설치 작업 <매트, 보트, 카페트>에는 이들의 꿈이 담겨있다. 한 사람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작은 매트는 서로 연결되어 보트가 되고 보트는 다시 모두를 태울 수 있는 마법 카펫이 된다. 가족, 마을, 그리고 나라와 같은 자신의 공동체를 떠나야 했던 누군가의 삶이 가족과 함께 탈 수 있는 보트로 발전하고 모두와 하늘을 날 수 있는 마법의 카펫으로 다시 발전한다. 이는 옆에 놓인 파도와 모터 소리를 담은 영상을 통해 물살 위를 가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 엎어질 지도 모르는 좁디좁은 매트 위의 생활은 두려움과 불안함의 연속이다.


하차연 작가는 모두가 함께 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살 수 없는 사회를 경고한다. 페트병과 비닐봉지 등을 오브제로서 채택하며 환경적 문제를 꼬집고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 의해 배제된 이들을 대변함에 따라 ‘같이 살기’를 더욱 강조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뒤덮은 지금, ‘같이 살기’는 특히 더 가슴에 와 닿지 않은가?


안채원 chaewon63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