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 Landscape, and Memories Lost
2021.7.23-9.4
송은아트스페이스

전시장 입구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 그것은 현대의 많은 예술가들의 공통된 질문이다. 이번 전시는 고려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도자, 서예, 회화 등 다양한 소장품을 한자리에 모아 라오미 작가의 협력 기획으로 고미술품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공유하는 속도와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 SNS 시대 속, 역사를 기억하고 재현하고 관객에게 공유하는 방식에 있어 현대 작가들은 더욱 유연한 태도가 요구되고 있는 동안, 라오미 작가의 역사화는 잊힌 역사를 재발굴하고 새롭게 접근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전시장 전경

물구경 꽃구경, 7폭 병풍 1점, 회전인형 13점, 가변크기, 2016
작가에게는 무엇이 재현되었느냐보다 무엇이 전시 감상의 프레임을 정하는가를 작업의 기준으로 삼는다. 전시기획자로서 자신의 작업과 컬렉션을 나란히 배치하고 다양한 매체, 출처, 미술사적 시간성을 띤 이미지와 물건은 역사적인 연관성을 강요하는 방식에 저항하고 있다.

금강산혼성곡, 단채널영상, 14분 5초, 2021
<금강산혼성곡> 퍼포먼스는 남북한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영상 작품이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세 개의 악기로 구성되어 1962년 남한에서 한국전쟁 12주년 기념으로 만든 <그리운 금강산>으로 시작해 1945년 분단 이후 북한에서 만든 곡과 1927년 분단 이전의 곡으로 연결된다. 무대 배경처럼 보이는 <호월일가>는 작가가 무대미술가 원세하의 금강산 무대 스케치, 관광엽서, 조선화, 사진관 배경 그림을 기반으로 수집한 이미지를 병치해 제작한 것이다. 작가는 캔버스 위로 금강산의 비봉폭포, 소나무숲, 호랑이 등의 이미지를 얹혀 배경으로 세우고 그 앞으로 연주자를 모아 하나의 연극적 상황을 연출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존재하지만 기약 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금강산에 다가서며 일시적 환상에 접어든다.

전시장 전경

끝없는 환희를 그대에게, 칸버스에 분채, 227x910cm, (5점, 각 227x182cm), 2020-2021
라오미의 회화에서는 금강산, 인천항, 압록강 근처 국경지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쉽게 접할 수 없거나 흘러간 과거의 장소나 사건이 등장한다. 수평으로 펼쳐진 구도는 서로 다른 시공간으로부터 유래한 이미지를 펼쳐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듯 화면 위를 부유하며 이미지들을 연결해 자신만의 스토리를 상상한다. 라오미의 역사화 혹은 서사화에 등장하는 서사와 장소의 역사적인 진실성이나 확정성은 이미 각종 경계가 허물어진 개념의 포스트 상황에서 출발하고 있다. 역사적 기록이 사라졌거나 우리가 갈 수 없는 장소는 그저 간접경험에 불과하다. 넘쳐나는 정보의 시대와 강제로 사라진 장소들의 역사적 의미를 진행형으로 돌리고 관객의 시선으로 듣고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라오미 작가의 요점이 되었다.
반복적으로 물이나 안개가 이미지들을 감싸며 서로의 장면을 연결하고 있다. 근경과 원경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파도에 휩쓸리듯 여러 시공간적 배경을 지닌 이미지들이 한 화면 속에 압축된다. 민족의 비극을 떠올릴 것 같았지만 오히려 국경 지역의 이미지는 모호하게 남아있다.

전시장 전경

그림자의 강, 캔버스에 분채, 194x390cm, (3점, 각 194x130cm), 2021
라오미 회화가 지닌 연극적인 특성은 망각에 묻힌 역사의 장으로서 작품에 적용된다. 연극이 원래 허구의 세상을 관객의 눈앞에 재연하는 것이라면, 라오미의 금강산 회화 역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라오미는 굳이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태도, 이데올로기와 연관시키지 않으며 금강산을 찬양하거나 비판하는 태도는 더욱 아니다.

Form, Landscape, and Memories Lost
유토 오브제 12점, 사운드, 10분 2초
사운드 협업: 신예준, 나레이션: 서영수
강세황 「유금강산기」, 김규진 「금강산유람가」, 김금원 「호동서락기」, 남효온 「유금강산기」, 노경임 「유금강산기」, 박영석 「동유록일기」, 서영보 「풍악기」, 성제원 「유금강산기」, 신광하 「동유기행」, 송환기 「동유일기」, 양대박 「금강산기행록」, 유운룡 「유금강산록」, 유정문 「유금강록」, 이진택 「금강산유록」, 이병운 「동정일록」, 이원 「유금강록」, 이동표 「유금강산록」, 임정주 「동유기」, 최은우 「금강산록」, 홍인우 「관동록」에서 발췌

Blue Spectrum, 폐영사기램프, 가변크기, 2020
실향민이라는 창업주의 정체성이 반영된 도자나 그림 컬렉션으로, 작가는 컬렉션의 도자기를 모아 2층에 폭포가 떨어지는 것 같은 대형에 따라 배열한다. 북한의 풍경과 서사를 다룬 컬렉터가 후원하는 젊은 현대미술의 작가와 만나는 과정을 담았다. 컬렉터와 원작자의 의도나 생각보다 지금 과거의 물건과 시각문화를 감상하고 재배열하는 것, 그리고 현대인의 시점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한다. 그것은 시공간의 틈을 극복하고 서로 만나게 만들어주는 절대적인 힘을 작가는 작품에 불어넣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오래된 미술관의 컬렉션과 현대미술 작가의 작업이 얼마나 잘 연결되었느냐를 따져보는 전시가 아니다. 과거로부터 온 물건과 현대미술 작가의 작업이 서로 병치되어 풍경, 역사적 기억, 재현의 문제를 어떻게 공유할 수 있는지 관객에게 관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라오미의 역사화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장면과 대상을 조합하여 예상치 못한 감상의 경험을 창조해낸다는 점에서 역사와 서사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잊힌 역사 위에 새로운 서사를 입힘으로써 우리에게 역사를 정리해야 하는 중요한 역사적 과업까지 상기시키고 있다.
안채원 chaewon63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