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 : 달빛왕관

2021.7.29-9.26

아트선재센터



전시장 입구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태어나자마자 여자라는 이유로 버려졌다가 사후 세계에서 돌아온 후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무당의 길을 택한 바리데기 공주. 아트선재센터에서 각각 2층과 3층에서 진행 중인 이수경·제인 진 카이젠의 개인전은 바리데기 신화를 차용하여 예술 작품에 그것이 가진 상징성을 공통적으로 반영하였다. 이수경 작가의 <달빛왕관>은 바리데기 공주처럼 버려진 존재 속에서 성스러움을 발견하기 위해 ‘왕관’을 모티프로 새로운 연작을 선보인다. 우리가 아는 ‘왕관’은 최고 권위에 자리하는 왕이 쓰던 관모로, 통치자로서 지닌 막강한 권력을 가리키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을 지닌 왕관을 머리 위가 아닌 받침대로 두는 것에서부터 작가의 의도는 시작되고 있다.




전시장 전경


전시장을 들어서면 순백의 드넓은 공간 속 열 한 명의 군상이 서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각 작품들은 제일 아래에 놓인 왕관의 형상으로부터 출발해서 점차 위로 확장되는 구조를 띠고 있다. 볼록한 항아리를 왕관 위에 얹고 꼭대기로 올려갈수록 뾰족하고 가늘어지는 형상은 인간의 신체를 형상화한 듯 왕관에서 출발하여 작업을 발전시킨다. 최고 권력자 머리 위에 얹혀있어야 할 왕관을 이수경 작가는 그것이 지닌 권력의 상징을 엎고 인간 내면의 신성성에 관심을 주는 것으로 사유의 반경을 확장시켰다. 




달빛왕관-다정한 자매들, 모두 잠든, 60x40x26cm, 3D 프린트 조각, 황동, 에폭시, 유리, 진주, 레진, 2021



전시장 전경


철, 놋쇠, 유리, 진주, 자개, 원석, 거울 파편 등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볼 때 각양각색의 수공 재료들을 마주할 수 있다. 정교한 수공의 과정을 거친 그것들은 천사, 기도하는 손, 십자가, 용, 식물, 만화 주인공과 요술봉 등의 형상으로 등장하여 새로운 의미로서의 생명체 탄생을 말한다. 깨진 파편들이 모자이크 기법으로 표면을 장식하고, 이는 점차 용암이 녹아 흘러내리는 듯한 형상으로 나아간다. 신라의 금관과 백제의 금동대향로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의 달빛왕관 연작은 고대 공예품들의 미적가치를 환기시키고 그 영혼이 남긴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현대사회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생성한다. 작가는 파편들이 엉겨 붙는 구성을 통해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삶을 형성한다고 믿는데, 이는 우리가 믿고 있던 기존의 상징적인 맥락 속에서 길을 벗어난 것들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달빛 왕관-바리의 눈물, 197x42x42cm, 철, 황동, 유리, 에폭시, 나무, 레진, 크리스탈, 24K 금박, 자개, 2019

달빛 왕관-바리의 눈물, 그림자, 197x42x42cm, 3D 프린트 조각, 에폭시, 나무, 레진, 2021




달빛 왕관-쉿-금빛 그림자, 101x55x55cm, 황동, 에폭시, 유리, 옥, 나무, 자개, 철, 레진, 2021


이번 전시에서 이수경 작가는 달빛 왕관 연작을 양가적인 성질에 초점을 두고 대칭적 구조로 뼈대를 구축하였다. 반짝이고 화려한 빛과 색을 띠는 작품과 대비되는, 광택이 없고 어두운 색의 작품을 통해 ‘밝음-어둠’, ‘삶-죽음’, ‘천국-지옥’이라는 대칭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이분법적인 개념이 아닌 이면의 상태가 공존한다는 사실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양가성은 존재한다는 것을 엄연히 밝히고 있다. <달빛 왕관>이라는 전시 제목에서도 이와 같은 대칭적인 맥락과 의도가 숨어있다. 태양에 비유한 왕관이 겉으로 보이는 권위의 상징이고, 달빛은 그 이면에 가려진 것들을 품은 상상의 영역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달빛 왕관-사자 토템, 225x87x87cm, 철, 황동, 유리, 에폭시, 나무, 깃털, 거울, 진주, 24K 금박, 자개



달빛 왕관-시인 이상의 장난감 신부,

180x40x40cm, 황동, 철, 자개, 24K 금박, 유리, 에폭시, 전구, 나무, 진주, 도자기, 거울, 2021



달빛 왕관 연작은 이수경 작가에게 있어 예술적 성물의 경지에 도달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작품을 탄생시키는 과정은 무의식적이며 반복적인 일상과도 같은 작업이었다. 작가는 최면에 걸린 듯 집중을 쏟은 시간들로 인해 죽음, 두려움, 좌절에 맞서 버텨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 자기 자신이 품은 기운이 곧 왕관 그 자체이자 우리 모두는 어떠한 종교에도 소속되지 않는 고유한 신성을 내포한다는 것을 고하고 있다. 이수경 작가의 달빛 왕관 연작을 감상하며 우리 내면 안에 감춰진 성스러움에 대해 그 의미와 본질을 마주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전시장 전경



달빛 왕관-다정한 자매들, 동쪽 산꼭대기 (확대), 114x73x74cm, 황동, 에폭시, 철, 레진, 2021


안채원 chaewon63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