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자본 Hold On for Dear Life

2021.8.24-9.19

SeMA 벙커




서울 여의도는 한국 금융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높은 빌딩들로 이루어진 마천루가 이곳의 대표적 이미지다. 이러한 여의도 한복판에는, 입구조차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지하 벙커가 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조성하였고 현재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SeMA 벙커라는 이름과 함께 전시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곳, 여의도의 지하 공간에서 기획자 권정현과 네 명(팀)의 작가는 노동과 자본에 대해 사유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파고들기 훨씬 전부터 노동의 안정성은 줄어만 갔다. 정규직 취업의 문이 바늘구멍만해졌고 설사 정규직이 된다 해도 은퇴시기는 점점 앞당겨져왔다. 여기에 코로나19가 덮치면서 상황은 악화되었고, 사람들은 불안정한 노동 대신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 등을 믿기 시작했다. 




전시는 바로 그 믿음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콜렉티브 무병장수의 작품은 너무나 익숙한 자본(광고)의 문법을 따르고 있어 기시감이 든다. 포스터 형태의 벽에 걸린 작품도, 모니터에서 재생되고 있는 광고 영상도 마치 방금 전 텔레비전에서 본 것과 같다. 그러나 이들이 판매하는 제품은 정체불명의 것으로, 우리는 이들이 강요하는 믿음에 대해 재고하게 된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2m에 달하는 다섯 개의 높은 패널들이 오각형 모양으로 세워져 있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풀로 장식된 제단이 있다. 이빈소연의 작품이다. 다섯 개의 화면에는 새벽배송을 하는 오토바이, 침대 위의 시계들과 같은 아침 시간, 즉 자기계발과 연관되는 이미지들이 있다. 


제단 바로 뒤로는 양윤화의 영상 작업이 보인다. 12분 길이의 이 영상은 대칭이미지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자본에 대한 믿음의 방향성을 시각적으로 전환한 것이다. 





강은희의 작업을 감상하는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전시장 내에서 투어 안내영상을 시청하고, 휴대폰 nfc 기능을 활용해 웹페이지에 접속한다. 그리고 그대로 전시장을 나서면 <여의도 투어 : 환상의 버블>이 시작된다. 휴대폰 화면에는 지도가 나타나고, 지도에는 화장실, 벤치 등의 위치와 함께 숫자핀이 있다. 이 숫자핀을 터치하면 작가가 준비한 작업과 다음 디렉션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우리는 금융의 중심 여의도를 다른 시각으로 여행할 수 있다. 


면적이 크지 않은 SeMA 벙커 공간에 4명(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지만 답답한 느낌은커녕 오히려 집중하게 되는 구성이었다. 전시장에는 기획자의 글과 함께 정구원 음악비평가의 글도 비치되어있는데, 그가 전달하는 이야기와 뒷면의 해시태그(#)들로 정리된 노동/자본 현실이 작품 감상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황수현 vmflxlzhzh1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