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2012년부터 국외 한국학 연구의 증진과 국제 네트워크 강화를 목적으로 ‘박물관 네트워크 펠로우십’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국내외 전문가의 온라인 주제강연과 국제 포럼으로 구성되었으며 내용은 유튜브 채널에서 12월 17일까지 자유롭게 시청 가능하다.

온라인 주제강연은 ‘조각’, ‘디지털박물관’, ‘한국미술’ 이라는 키워드로 각각 구성되었다. 그 중 정연심 홍익대학교 교수의 ‘한국미술’ 키워드로 <‘한국 현대미술’ 해외 전시 연구 : 1958-1993> 강연 내용이다.

한국 현대미술이 해외에 처음 소개된 것은 국내에서 앵포르멜 운동이 한창이던 50년대 후반, 뉴욕에 위치한 월드 하우스 갤러리의 전시(Contemporary Korean Paintings, 1958, World House Galleries)를 통해서였다. 당시 박수근, 이응노, 정창섭, 김환기 등 35명 내외의 작가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드 하우스 갤러리는 상업갤러리지만,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주요 작품이 출품되었고. 김재원 관장이 전시에 관여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제도적 차원에서 전시에 대한 지원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1960-70년대에는 상파울로비엔날레와 파리비엔날레가 한국 미술을 해외에 알릴 주된 기회였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로비엔날레에 김환기가 <여름 달밤>을 출품하였는데, 이러한 기회는 그에게 있어 국제미술에 눈뜨는 계기가 되었다. 이룰 기점으로 그는 뉴욕으로 건너가 바넷뉴먼, 마크 로스코 등을 보고 작품에 변화가 생기기도 하였다. 따라서 국제 비엔날레 참여는 그에게 화가로서 맞는 새로운 전환점이자 변화의 계기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사라진 파리비엔날레는 1959년 시작되었고, 당시 파리가 세계미술의 수도로 인식되었던 만큼 중요한 국제전이었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1961년부터 출품하였고, 이때 박서보와 이일이 주축이 되었다. 당시 김창열이 출품한 작품은 전쟁의 트라우마와 상흔을 보여주는 <제사>와 같은 작품이었다. 제도적 지원이 부족한 이때 서울에 박서보, 파리에 김창열, 도쿄에 이우환, 뉴욕에 김환기가 있었고 이들은 개별 작가를 넘어서 각 도시의 플랫폼 역할을 하였다.

이어서 1977년 대만에서 열린 <한국현대화> 전이다. 김창열, 하종현, 하종현, 이우환 등이 참여하였으며 대만 작가들 역시 우리나라에서 전시를 함으로써 교류전의 성격을 가졌다. 1984년 대만에서 열린 <현국현대미술전>은 김수자, 박현기 등이 출품하였고, 이 전시는 박서보가 주도적 역할을 하여 진행되었다.

1987년 해외여행이 자율화 되고, 88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 화단은 포스트모더니즘 시기라는 전환기를 맞았다. 민중미술이 떠올랐고 그 뒤를 이어 신세대 소그룹 운동 등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1980년대 초 뉴욕에 간 박이소는 브루클린에 대안공간 ‘마이너 인저리’를 운영하였는데, 이곳의 디렉터로서 민중미술 전시를 열기도 하였다. 이후 다른 대안공간에서 열린 한국미술 전시들도 박이소가 매개자로 활동하였다. 뉴욕 퀸즈 미술관에서 열린 <태평앙을 건너서: 오늘의 한국미술>(1993)전은 한국미술의 다양성이 처음으로 해외에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민중미술은 물론 김홍주, 민영순 등이 참여하였다.

국제화에 대한 열망이 커지던 1993년은 해외 미술의 국내 전시가 많았던 해다. 그 중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은 인종, 성소수자에 관한 작품이 다수 출품되어 한국 미술계에 충격을 주었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미술관, 비엔날레가 주도하는 해외전시가 증가하였다.
1960-70년대 개최된 국제 비엔날레는 우리나라 정부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협회나 개별미술가들이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국제교류는 지극히 개인적인 네트워크로 이루어졌다. 기관 주도의 전시가 다수 개최되기까지 40여 년간 수많은 개별 작가와 개별 기획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황수현 vmflxlzhzh1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