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인구 10만 인파 속 고요한 섬, ‘요절한 천재’의 매스를 마주하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전국광: 쌓는 친구, 허무는 친구》 전시 현장

주 7일 쉼 없이 돌아가는 상권, 하루 유동인구 10만 명에 육박하는 서울 사당역 인근. 번잡한 도심 한복판에 고풍스러운 유럽풍 건축물 하나가 섬처럼 서 있다. 과거 벨기에 영사관을 리노베이션해 시민의 공간으로 돌아온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이다. 차가운 주말 아침, 긴 햇살이 실내로 스며드는 이곳에서 한국 현대 조각사의 한 페이지를 찬란하게 장식했던 이름, 전국광(1945-1990)을 만난다.






‘쌓고 허무는’ 조각가의 고뇌, 드디어 빛을 보다
이번 전시 《전국광: 쌓는 친구, 허무는 친구》는 45세라는 이른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그를 조명하는 첫 국·공립미술관 개인전이다.






전시명은 작가의 작업 노트에서 따왔다. 스스로를 ‘쌓는(작업을 하는)친구’로 불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나중에는 ‘허무는 작업을 하는 친구’라 불릴지언정 그 허묾의 표현 방식에 심취하겠다던 그의 결연한 다짐이 서려 있다. 전시실에는 돌과 나무 조각은 물론, 조각의 기초가 된 드로잉과 마케트(모형) 등 100여 점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덩어리를 뚫고 나온 ‘정신적 에너지’
전국광은 해방 후 1세대 구상 조각과 이후의 완전 추상 조각 사이를 잇는 가교이자, 자신만의 독자적인 추상 세계를 구축한 선구자였다.

그의 작업 중심에는 늘 ‘매스(Mass, 덩어리)’가 있었다. 1981년 국전 비구상 부문 대상을 거머쥔 〈매스의 비(碑)〉에서 볼 수 있듯, 그는 무거운 돌을 가볍게 만들고 꽉 찬 덩어리의 속을 비워냄으로써 물질 속에 숨겨진 에너지를 시각화했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그의 드로잉이다. 평면 위에 3차원적 입체를 설계한 그의 드로잉은 단순히 밑그림에 머물지 않고 공간과 물성을 치밀하게 분석한 독립된 작품으로서 존재감을 뽐낸다.

아카이브로 되살아난 작가의 숨결
미술관 정원과 1층을 돌아 2층 전시장으로 향하는 계단참, 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전시의 여운을 더한다. 이번 전시는 작품뿐 아니라 작가의 자필 원고, 육성 녹음, 인터뷰 영상 등 방대한 아카이브를 함께 공개했다.






이번 전시가 전국광이라는 작가에 대한 다각도 조망을 통해 심층적인 연구가 시작되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며,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물질의 근원을 파고들었던 한 조각가의 뜨거웠던 생애를 마주하는 시간. 이번 주말, 남서울미술관으로 떠나는 ‘미술 산책’이 당신의 겨울 아침을 특별한 일과로 바꿔주길 기대한다.





◇상세전시
전국광 : 쌓는 친구, 허무는 친구
2025-09-24 ~ 2026-02-22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https://www.daljin.com/display/D105161

작성 김영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