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서울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2025.05.01. ~ 2026.05.0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층, 1전시실/ 지하 1층, 2전시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경


MMCA 서울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MMCA 서울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는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이래 처음으로 선보이는 상설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지금까지 모아온 약 11,800여 점의 소장품 가운데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대표작 90여 점을 엄선해 전시한다. 1전시실은 1960~1980년대, 2전시실은 1990~2010년대로 나누어 시대별 주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추상, 실험, 형상 등 주요 소주제를 중심으로 시대 별로 어떻게 한국미술이 변화하고 확장되어 왔는지를 조망하며 지금까지의 한국미술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전시실의 넓은 구성과 여백이 유독 돋보인다. 이는 단순한 쾌적한 관람환경을 넘어 관객이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는다. 작품 사이 간 간격이 충분하여 집중하기가 쉽고 각 작업이 다른 작업의 분위기를 침범하지 않은 채 고유하게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의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닌 한 작품에 오로지 집중하고 다음 작품을 보기 전 호흡을 고를 수 있게 하는 전환의 시간 같기도 했다. 특히 이러한 넓은 공간은 관객에게 거리의 선택권을 부여한다. 가까이 다가가 재료의 결이나 느낌을 세세히 감상할 수도 있고 멀찍이 물러나 전체 구조와 작품 전반의 분위기를 한눈에 읽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 자체가 단순히 작품을 담아내는 장소를 넘어 관객의 시선과 속도를 조율하는 또 하나의 장치로 기능한 듯했다. 


이우환, <선으로부터>, 1974, 캔버스에 석채, 194x259cm 

흰 캔버스 위 세로로 그어진 푸른 선들이 놓아져 있다. 화면은 선이 남기는 흔적과 붓의 결을 그대로 담아낸다. 선명하게 시작된 파랑은 아래로 갈수록 점차 힘을 잃고 옅어지며 끝내 희미해지듯 사라진다. 이러한 단조로운 구성과 절제된 색채는 동양적인 미감을 나타낸다.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선을 긋는 반복적 행위가 축적하는 시간이다.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지만 매번 미세하게 달라지는 흔적은 작가의 호흡, 붓을 쥔 힘의 변화, 집중의 밀도를 그대로 나타낸다. 그래서 이는 단순한 형태나 결과물이 아니라,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 내재된 본질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정창섭, <저 No.86077>,<저 No.86088> 1986, 캔버스에 한지, 330x190cm

거대한 화면은 멀리서 보았을 때 거의 단색에 가까우며 담담한 듯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닥지의 결이 만들어내는 주름과 투명한 여백이 미세한 높낮이를 만들고 음영을 형성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 〈저 No.86077〉와 〈저 No.86088〉이 나란히 이어져 걸렸을 때, 두 작품은 ‘두 점’이라기보다 한 장의 큰 캔버스와 같이 연결되어 보이며, 종이의 흐름이 한 화면에서 다음 화면으로 자연스럽게 번져 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서도호, <바닥>, 1997-2000, PVC 인물상, 유리판, 석탄산판, 폴리우레탄 레진, 8x100x100cm(8)

사실 멀리서 보았을 때 담배꽁초 위 유리판을 놓은 작품인 줄 알았다. 가까이서 보았을 때 유리판을 지탱하고 있는 것들이 수많은 작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작품은 PVC로 만든 미니어처 인물상들이 팔을 위로 뻗고 있고 그 위 거대한 유리판이 놓여 인물들이 유리창을 떠받치는 구조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물들의 인종, 성별들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같기도 하다. 또한 한 개인 개인은 작고 힘이 없지만 그 수가 모여 유리를 지탱하는 현상은 현대 사회가 개인을 다루는 구조에 대해서 질문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1전시실 전경

MMCA 서울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는 한국 현대미술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어떠한 논의를 하였는지 그리고 그러한 논의들이 오늘의 감각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한 자리에 볼 수 있다. 시대별 흐름을 따라 걷는 동안 관객은 한국 현대미술의 특수성과 보편성이 교차하는 지점 또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층에서 시작된 전시가 지하로 자연스레 이어져 지하 1층에 자리하고 있는 동시대 작가의 전시인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 «올해의 작가상 2025»를 관람하게 됨으로써 전시의 흐름 또한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이어지게 된다. 해당 상설전은 오는 5월 3일까지 진행된다. 

박지나 wlskjicqc4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