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로 돌아온 ‘원화의 힘’… 600년 서양미술사, 광화문을 깨우다
미디어 아트 홍수 속 ‘정통 회화’로 승부수 던진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뮤지엄 미공개 소장품 25점 등 거장 60인의 마스터피스 한자리에
겨울의 끝자락,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앞은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인파로 북적였다. 화려한 영상미와 몰입형 미디어 아트를 내세운 전시들이 주를 이루던 최근 서양미술사 전시 가운데에서, 오로지 ‘작품 그 자체’의 힘으로 관람객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은 지난해 11월 개막해 막바지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서양미술 600년》 전시 현장이다. 이번 전시는 앙리 마티스, 장 미쉘 바스키아 등 굵직한 기획전을 성공시켜 온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가 주관해 개막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특히 해외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샌디에이고 뮤지엄의 영구 소장품 25점이 포함된 65점의 명작은 국내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을 붙들기에 충분했다.
◇ ‘브랜드’ 전시에서 ‘미디어’를 거쳐 다시 ‘본질’로
한국의 서양미술 블록버스터 전시는 시대에 따라 변주해 왔다. 2000년대가 조선·동아·한국일보 등 주요 언론사 주도로 루브르, 오르세 등 프랑스 국립 미술관의 ‘브랜드’를 수입하던 시기였다면, 이후 시장은 디자인과 현대미술로 영역을 확장했다. 최근 몇 년간은 ‘빛의 벙커’ 시리즈로 대표되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가 대중의 눈을 사로잡으며 전시의 문법을 완전히 바꾸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미디어의 화려함 대신 ‘정공법’을 택했다. 전시장 초입은 현란한 영상 대신 샌디에이고 뮤지엄 전문가들의 인터뷰 영상이 장식한다.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컬렉션의 역사적 가치를 먼저 이해하게 함으로써 작품을 마주하기 전의 기대감을 극대화하는 장치가 됐다.

◇ 친절한 해설, 공간의 가치… 관람객과 소통하는 미술관
단순히 보기만 하는 전시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관과 2관을 잇는 유휴 공간에서는 사전 신청자를 대상으로 한 전시 강의가 수시로 열린다. 도슨트를 넘어선 상세한 대면 설명은 관람객들이 서양미술 600년의 방대한 서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든든한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시가 열리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의 위상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1978년 개관 이후 1999년 재단법인으로 거듭난 세종문화회관은 산하에 서울시립예술단 9개를 둔 명실상부한 서울의 문화 심장부다. 특히 2015년 대규모 리모델링을 마친 미술관은 외부 기획전과 자체 기획전을 유연하게 교차하며, 광화문을 단순한 광장이 아닌 ‘문화 예술의 향유 공간’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전시는 이제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이번 흥행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아무리 진보해도 거장의 붓 터치 하나, 물감의 질감 하나가 주는 정서적 울림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600년의 세월을 견디고 광화문에 당도한 명작들이 그 답을 대신하고 있다.

작성: 김영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