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준 : Monolith》  & 《신형섭 : Mechanical Baroque》 

2.24-3.14

오매갤러리


예술은 때로 극단적인 대조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드러낸다. 삼청동 오매갤러리에서 마주한 두 개의 전시는 매체와 형식 면에서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 ‘시간’과 ‘존재’라는 하나의 커다란 줄기를 공유하며 관람객에게 깊은 사유의 장을 마련해 준다.




장용준의 《Monolith》: 소멸하는 재료로 빚은 영원의 기념비

1층 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 장용준 작가는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옻칠’이라는 매체를 통해 존재의 한계와 허무를 관조한다. 전시 제목 《Monolith(모노리스)》는 본래 영원을 갈망하는 인간의 기념비를 상징하지만, 작가는 역설적이게도 돌이 아닌 가장 쉽게 부서지고 사라지는 ‘나무’를 선택했다.




그의 작업에서 옻칠은 단순한 공예적 장식을 넘어선다. 무명의 존재들이 모여 이루어진 거대한 서사(조각난 나무들) 위에 덧입혀진 옻칠은, 찰나의 존재인 인간이 우주적 시간 앞에서 느끼는 연민과 위로를 담아낸다. 작가는 대학원 시절의 고민을 ‘타임머신’처럼 다시 불러내어, 전통적인 백골 대신 황동과 느티나무, 참죽, 낙엽송을 사용하며 현대적 아우라를 획득한다. 단단해 보이지만 결국 먼지로 돌아갈 존재들에 대한 그의 시선은 ‘숭고한 허무’를 자아낸다.




신형섭의 《Mechanical Baroque》: 이미지가 '발생'하는 찰나의 사건

지하 1층에서 펼쳐지는 신형섭의 전시는 기계적 장치들이 웅성거리는 역동적인 실험실과 같다. 작가는 영상을 단순히 스크린에 투사된 ‘결과물’로 보지 않는다. 렌즈, 모터, 회전판, 그림자 인형이 아상블라주(Assemblage)된 그의 장치들은 이미지를 ‘재생’하는 대신 ‘발생’시킨다.




전시 제목인 ‘바로크(Baroque)’는 바로 이 지점에서 힘을 얻는다. 17세기 바로크 예술이 지닌 과잉된 구조와 주름진 역동성이 현대의 기계 장치를 통해 재현된다. 빛은 서사를 만드는 주체가 되고, 조각적 구조물은 움직이는 영화적 시간을 생산한다. 이수영 큐레이터의 언급처럼, 그의 작업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연상시킨다. 우리가 보는 그림자의 근원이 우주의 빛임을 상기시키며,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를 가로지르는 미디어 고고학적 탐구를 감각적으로 풀어낸다.


다음은 전시장에서 작가와 진행한 인터뷰의 내용이다.




Q.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 기술과 구성 요소는 무엇인가요?

A. 제 작업은 기본적으로 '매직 랭턴(Magic Lantern)', 즉 현대의 환등기나 프로젝터 기술을 근간으로 합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조명, 렌즈, 그리고 투사될 원본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필수로 하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바닥 쪽으로 이미지가 투사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투사되는 원본 이미지는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전통 그림자극에 쓰이는 인형 마크를 활용해 모터로 회전시키며 이미지를 발생시킵니다.




Q. 전시장 곳곳에서 보이는 붉고 푸른 조명과 독특한 패턴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A. 그 조명은 사실 '식물 성장용 LED'입니다. 식물은 녹색광을 흡수하지 않기 때문에 식물 조명에는 녹색 소자가 없고 빨간색과 파란색 소자만 있죠. 이 빛이 돋보기를 통과할 때 '색수차(Chromatic Aberration)' 현상이 발생합니다. 빛의 파장에 따라 굴절률이 달라져서 초점이 어긋나며 독특한 문양이 생기는데, 저는 이 현상 자체를 조명이자 투사되는 원본으로 활용합니다.


Q. 관람객이 직접 장치를 만져보거나 조절할 수도 있나요?

A. 네,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전시장 내 실리콘 장치를 당기면 렌즈와의 거리가 조절되는데, 이는 카메라의 줌(Zoom) 기능이나 프로젝트의 포커스 조절을 아주 원시적인 방식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와서 직접 체험하며 원리를 배우기도 합니다.


Q. 전시 제목인 ‘메커니컬 바로크(Mechanical Baroque)’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A. 사실 이 용어는 '스팀펑크'의 하위 분류인 오타쿠 문화에서 따온 용어입니다. 시계나 조명 장치를 아주 요란하고 화려하게 장식해 바로크 시대의 분위기를 풍기게 하는 것을 지칭하죠. 제 작업이 지닌 복잡한 기계적 구조와 장식적인 시각 효과를 잘 설명해 주는 제목이라 생각했습니다.



Q. 첨단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왜 이런 '로우 테크(Low-tech)'를 고집하시나요?

A. 디지털 미디어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뒤편의 메커니즘을 철저히 숨기고 '매끈한 서사'와 '몰입'만을 강요합니다. 저는 그 기술 이면에 가려진 기계적 원리 자체를 전시하고자 합니다. 또한, 너무 고도화되어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과 달리, 제 작업은 누구나 구조를 보면 원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일종의 엔지니어가 되어 익숙한 선풍기 뼈대나 LP판 사이즈의 회전판 같은 일상적 소재로 아날로그적 감각을 복원하는 것이죠.



Q. 작가님의 작업은 결국 미디어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A. 맞습니다. 영상의 가장 오래된 기원이라 할 수 있는 '그림자극'이라는 수천 년 전 기술과, 현대의 'LED 기술'을 한데 뒤섞는 작업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조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길 제안합니다.


두 전시는 서로 다른 언어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장용준은 사라질 나무 위에 옻을 입히며 ‘소멸을 견디는 존재’의 시간을 기록한다. 신형섭은 기계적 운동과 빛의 어긋남을 통해 ‘현재진행형의 사건’으로서의 시간을 포착한다.


장용준의 모노리스는 그 빛 아래에서 먼지처럼 명멸하는 우리들의 초상이라면, 신형섭의 빛은 원초적 에너지에 가깝다. 옻칠의 정적과 기계 장치의 소음은 오매갤러리라는 공간 안에서 기묘한 화음을 이루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미디어적 시공간과 공예적 영원성 사이를 유영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장용준의 수행적 옻칠과 신형섭의 실험적 메커니즘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 기술의 시간성과 물질의 시간성이 교차하는 이번 전시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이미지와 사물의 존재 방식을 멈추어 서서 다시 바라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