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미나 : 바다위 Badawi
2026.03.05.-04.18
피비갤러리

삼청동에 위치한 피비갤러리에서 함미나 작가의 개인전이 열렸다. 개인사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담아 세계관을 만들어가던 작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여 세계관의 확장을 도모한다. 



예술은 시각 언어로서 나와 타인이 말로 다 못 하는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상할 수 있게 해준다. 전시 제목으로 사용된 ‘يودب(Badawi)’는 ‘바다 위’라는 우리나라 말을 연상시킨다. 사막을 떠도는 유목민을 가리키는 이 단어는 많은 것과 연결되지만, 그 중심에는 ‘이동’이 있다. 작가는 물리적인 이동에 국한하지 않고 삶의 시간과 감정의 흐름으로 확장한다. 

현실 속 인물의 표정과 행동을 표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타인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일그러지고 모호한 형상은 관람객만의 새로운 해석을 끌어낸다. 



3월 5일 오프닝 행사는 작가와 큐레이터의 설명 위주로 진행됐다. 이수민 큐레이터와 함미나 작가가 관람객과 대화하며 작업의 배경과 의도를 전달했다. 

 다음은 전시장에서 함미나 작가, 이수민 큐레이터와 진행한 인터뷰의 내용이다. 



Q.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와 모나크 나비의 이동 방식으로부터 영감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둘 사이 어떤 연관성이 있고, 어느 부분이 작가님의 공감을 끌어냈을까요?
 여름 장마 때 제가 기차를 타고 한강을 지나가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날 비도 많이 내려 파도도 좀 세고 강물의 흐름이 거세서 약간 회갈색 빛의 흙탕물이 사막 모래바람 같기도 했거든요. 그때 마침 하얀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작가로서 시각적인 게 먼저 인식되면서 기억에 남았어요. 모래바람이 물과도 연관된 것처럼 보이고 나비가 홀로 날아다니는 게 유목민 느낌도 났거든요. 그래서 유목민을 가리키는 단어가 '노마드(nomad)'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랍어로 사막의 유목민을 베두인(Bedouin)이라고 부르는데 영어로는 '바다위(Badawi)'라고 쓰더라고요.
 우리나라 말로 '바다'처럼 들리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막의 유목민이나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이 하나로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나비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김기림 시인을 접하게 됐어요. 시에서 나비는 바다 위에 부서지는 빛이 무청 꽃밭인 줄 알고 날아갔다가 실망하고 물기에 젖어서 다시 돌아왔다는 내용이에요. 하지만 실제 나비는 가루가 있어서 물에 묻지 않잖아요. 방수가 돼서 물 위에서 쉬어갈 수도 있고, 이어서 날아갈 수도 있는데, '내가 몰랐던 나비의 특징이 또 있구나' 하고 좀 더 알아가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모나크 나비라는 종을 알게 됐어요.
 모나크 나비의 경우, 일반적인 나비와는 다르게 1세대부터 4세대까지 종이 계승됩니다. 독성 있는 잎을 먹으며 자란 유충이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기 때문에 독성이 강하다고 해요. 보통 나비에 비해 강인한 존재라는 게 특이하게 다가왔어요. 1세대가 2세대, 3세대를 키우다가 4세대가 추운 나라의 겨울을 견디며 남쪽으로 대이동을 한대요. 4세대는 1세대를 모르지만, 후세대는 바다를 건너며 본능적으로 1세대가 있던 나라로 돌아온다고 하더라고요.
 이를 봤을 때 인간과도 연결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고향을 떠나 살다가 그리워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잖아요. 유괴되거나 입양된 사람들이 자기 뿌리를 찾아 모국을 찾는 것도 그런 느낌이라 생각했어요. 모나크 나비가 세대를 계승하는 것도 약간 인간의 족보 같다고 느껴지고, 그 모험을 하며 이동하는 게 유목민 같으면서도 사람과 연결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번데기에서 부화하면 직전의 모습을 찢고 나오는 순간을 표현한 인간 번데기 작업도 있고, 윗세대가 자신을 희생하며 지켜낸 후세대가 겨울을 견디고 이동하는 모습을 인물에 빗대어 작업해 봤습니다.



Q. 이번에 새로운 스타일로 작업을 시도하신 걸로 아는데 그 계기가 무엇인지?
 그전에는 유화 물감만 쓰다가 나비의 가루를 어떻게 작업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서 콩테나 파스텔 같은 건식 재료를 새로 접목해서 작업도 했습니다. 저쪽에 보이는 종이 작업은 노루지라고, 기름종이 같은 종류인데 물에 방수가 돼요. 그 형태가 나비의 날개와도 닮았지만, 저 종이도 상처를 내면 확 찢어지기 때문에 나비의 약하면서도 질긴 성질과 방수 특성을 재료로 표현하고자 시도했습니다.
 접히는 부분은 나비가 날개짓을 하듯 접었다 폈다 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모나크 나비에는 왕비, 총독, 병사 등 계급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바다를 건너는 병사가 배를 타고 다가오는 겨울을 피해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는 느낌과, 곳곳에 왕비·엄마·누나 같은 모습을 더 표현하고 싶어서 갈색으로 작업한 작품도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연계해 이야기를 찾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녹여내어 새로운 인물화 작업으로 이어가게 됐습니다.

Q. 모나크 나비가 계급사회를 따른다고 하셨는데, 독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보통 나비는 한 번 태어나면 죽잖아요. 그런데 모나크 나비는 알을 낳으면 후대를 키우고 희생하며 넘어가는 식으로 세대를 유지한다고 해요. 어릴 때부터 독성 있는 잎을 먹다 보니 자기 보호 능력도 강하고, 무리를 지어 함께 항해도 해요. 보통 나비들은 개별적으로 활동하잖아요. 하지만 모나크 나비는 함께 겨울을 견디고 이동하며, 다 같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집단으로 행동하는 특이한 종이더라고요. 그렇게 후세대가 따뜻한 멕시코 지역으로 넘어간다고 합니다.

Q. 그러면 〈바다위-항해〉가 이제 다 같이 이동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는 말씀이지요?
 저 작품 속 인물이 바로 나비입니다. 나비를 인간화한 것이라, 뚜렷한 사람의 형상보다는 약간 외계 형상 같기도 하면서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타고 있는 배는 나무 배로 현실성을 가미하되, 사람 자체는 다른 세계에 있는 존재처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모나크 나비가 번데기였을 때의 색감이 제가 평소에 즐겨 쓰는 푸른색과 유사해서, 이 부분도 연관 지어 작업으로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Q. 이번 전시가 과거에 하셨던 전시들과는 다르게 순간의 포착, 기록적인 성격이 좀 더 강해 보이는데, 이런 작품을 구성해서 전시하게 된 계기가 또 있으신가요?
 말씀드렸듯이 우연히 기차에서 한강을 보면서 시작했습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사막 유목민과 나비를 통해 기존의 제 작업 틀에서 벗어나지 않되, 색다른 소재로 이야기를 그려보고자 했습니다. 이전에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나 주변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 또한 하나의 계승이라고 생각해요.
 (이수민 큐레이터) 원래 작가님이 아이들의 특징을 주목하거나 본인의 욕망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화면에 잘 담아주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의 우는 모습이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행동을 집중적으로 포착하신 것이 작가님만의 세계관을 형성해 온 바탕이라고 봅니다. 이번 작업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많이 녹아 있어서 작가님만의 이야기가 새로 구축됐다고 느낍니다.



Q. 정치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많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나’ 외에 여러 장소를 이동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타인들도 많이 연상되네요. 
 네, 저도 항상 여기에 내가 있는 게 맞는지, 딴 곳으로 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본래의 장소로 돌아가야 하는지 매번 생각해요. 전 세계적으로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보면 우리 모두 유목민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테러나 전쟁을 겪게 되면 우리 모두 흩어졌다가 되찾아야 하잖아요. 그 노력과 과정 자체가 제가 이어가는 계승과 의도치 않게 연결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의도치 않게 전시 제목을 아랍어로 지었는데, 지금 그쪽이 처한 힘든 상황과도 다 연결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제 작품은 정해진 답보다 관람객이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이 맞다고 생각해요.



Q. 이번에 똑같은 크기의 작품을 나열하셨는데, 왜 특별히 이 사이즈인지 궁금합니다.
 원래 〈ID Picture〉라고 작업해온 증명사진 시리즈는 지금 작품 사이즈보다 더 작았습니다. 연작으로 이어지는 인물 작업을 꾸준히 해왔어요. 이번에 사이즈가 커진 건 번데기에서 나비가 나오듯, 인간화한 모습을 밀도 있게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균일한 사이즈로 다양한 각도의 포즈를 나열하면 관람객도 보기 쉽고 이야기가 잘 전달될 것 같아서 이렇게 작업했습니다.



 함미나는 정적이면서도 유동적인 순간을 지속적으로 화면 속에 담아낸다. 모나크 나비가 세대를 이어 본능적으로 귀환하듯, 작가의 인물들도 어딘가로부터 와서 어딘가로 향하는 중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이동이 어디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함미나의 캔버스는 그 알 수 없음 속에서도 계속되는 모든 순간을 묵묵히 붙잡아 둔다. 방향을 잃은 듯 보이는 형상들이 오히려 가장 솔직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