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재단의 신진작가 후원 전시: 김수지의 《보이지 않는 흔적》
2026.3.4.-5.29.
박서보재단 ARTBASE 26SQM
박서보재단의 26SQM에서 신진작가 육성을 위한 전시가 3월 초에 열렸다. 본 공간은 작은 규모의 비상업적 전시 공간으로, 신진 작가들을 후원하는 데 의의를 둔다. 이번 전시 《보이지 않는 흔적》은 이러한 공간의 성격과 맞물리며, 개인의 기억과 회화적 층위를 탐색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김수지, 〈Something to Hold on To〉, 2025,
oil on newspaper and hanji wrapped linen canvas in a wooden frame, 81×140.5×7cm
전시장에 들어서면 화면 속에는 커튼, 창, 메모 등 일상적인 요소들이 분절된 채 배치되어 있다. 이들은 단순한 사물의 재현이라기보다, 어떤 장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 주변부를 통해 존재를 암시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특히 화면 안에 병치된 이미지들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감각을 동반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기억의 잔상과 시각적 단서를 바탕으로 그 속의 내러티브를 유추하도록 만든다.
김수지 작가는 얇은 유화 레이어를 겹겹이 쌓고 지워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다양한 시간선의 표상을 회화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은 하나의 명확한 장면을 제시하는 대신 시간 속에서 흐릿해지고 왜곡된 이미지의 상태를 드러낸다. 화면 위에 남겨진 흔적들은 완결된 이미지보다 사라짐과 생성이 동시에 일어나는 과정의 일부처럼 제시된다.

김수지, 〈The Perversion of Freedom〉, 2025,
oil on newspaper and hanji wrapped linen canvas in a wooden frame, 81×140.5×7cm
특히 주목되는 점은 박서보 작가의 캔버스를 기반으로 한 작업이다. 그 위에 김수지의 회화가 덧입혀지면서 서로 다른 시간과 작가의 층위가 하나의 화면 안에 공존한다. 이는 한국 현대미술의 물질성과 역사적 맥락을 현재의 회화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로 읽힌다. 기존의 표면 위에 또 다른 이미지를 덧씌우는 방식은 회화를 하나의 ‘기억 저장 장치’처럼 작동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흔적》은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시각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수렴한다. 작가는 명확한 서사를 제시하기보다, 파편화된 이미지와 흔적들을 통해 관람자의 감각과 기억을 환기시킨다. 그 과정에서 회화는 단순한 재현의 매체를 넘어,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는 장소로 확장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