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박찬경 개인전 ‘안구선사’ 개최… “졸고 있는 전통을 깨우다”
- 3월 19일부터 5월 10일까지 K1관서 신작 회화 24점 공개
- 불교 설화·민화 재해석해 ‘선불교 그로테스크 SF’적 상상력 펼쳐
국제갤러리는 오는 3월 19일부터 5월 10일까지 K1관에서 박찬경 작가의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를 개최한다. 지난 2017년 이후 9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영상과 사진이라는 기존 주력 매체에서 벗어나, 최근 작업한 회화 작품 24점을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운 예술적 전환을 꾀한다.


박찬경은 지난 30여 년간 분단과 냉전, 전통과 민간신앙을 렌즈 삼아 한국의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온 작가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사찰 벽화와 조선 민화의 도상을 빌려와 민간 전통 미학에 내재한 그로테스크, 숭고, 유머 등을 끌어낸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계승하는 차원을 넘어, 작가의 표현대로 “졸고 있는 전통의 관념과 이미지들을 깨우기 위한” 시도다.
전시와 동명의 표제작인 〈안구선사〉(2025)는 제자의 손가락을 잘라 깨달음을 주었다는 구지선사 설화를 파격적으로 변형한 작품이다. 눈이 뽑히고 나서야 비로소 진리에 도달한다는 가상의 이야기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모방해야 하는 시각예술가의 숙명을 자학적 선문답으로 풀어낸다. 또한 〈혜가단비도〉(2026)와 〈혜통선사〉(2025) 등 불가 에피소드를 ‘선불교 그로테스크 SF’로 각색한 작업들은 전통을 현대적 상상력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작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회화’라는 장르에 대한 깊은 사유도 드러낸다. 개인의 독창성보다 공동체 안에서 익명으로 전승되어온 ‘집단적 독창성’에 주목한 것이다. 민화가 기존 도상을 흉내 내며 스스로를 갱신했듯, 작가 또한 옛 그림의 형식을 빌려와 동시대적 의미를 덧입힌다.
수행적 측면이 돋보이는 〈헛수고〉 연작도 눈길을 끈다. 매일 돌 하나씩을 그리고 날짜를 기입한 이 작업은 돌탑을 쌓는 기복 행위처럼 실질적 기능은 없으나 내밀한 의미를 갖는 ‘의미 있는 헛수고’를 제안한다. 이는 디지털 기기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피로한 ‘안구’와 대비되는 회화적 실천이기도 하다.

박찬경(1965년생)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국립현대미술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전통을 박제된 유산이 아닌 생생한 의문이자 에너지로 바라보는 박찬경의 회화적 세계관을 만끽할 수 있는 자리”라며 “작가 특유의 기발한 해석과 철학적 깊이가 담긴 신작들을 통해 한국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