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바람 사이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가을날, 남양주 와부읍에 자리한 한강뮤지엄을 찾았다. 2019년 문을 연 한강뮤지엄은 이름처럼 한강을 바로 앞에 둔 사립미술관이다. 작품을 보다가도 창밖으로 강과 산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는 곳으로, 예술과 일상, 자연이 함께하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한강뮤지엄

이번 방문에서는 김동우 부관장을 만나 한강뮤지엄의 시작과 운영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그의 전시기획 경험은 한강뮤지엄보다 앞선다. 김 부관장은 서울 강동구에서 4LOG ART SPACE를 약 10년간 운영하며 전시 기회를 얻기 어려웠던 젊은 작가들에게 꾸준히 발표의 장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선후배와 젊은 작가들의 전시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수많은 전시를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기획자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이러한 경험은 한강뮤지엄에서도 잘 알려진 작가뿐 아니라 성장 과정에 있는 작가들을 발견하고 동시대의 문제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강뮤지엄 2층에서 바라본 한강

한강뮤지엄은 그동안 환경문제를 다룬 개관전 《Earth=Us》를 비롯해 관계와 고독, 쉼, 미디어 환경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전시로 풀어왔다. 《폭신폭신-A Moment of Relief》에서는 쉼이 부족한 현대사회에서 잠시 멈추는 시간을 이야기했고, 《타라탁탁-열수의 꽃, 정약용의 아언각비》에서는 디지털 정보사회와 비판적 사고의 문제를 다루었다. 사회적 현상을 하나의 키워드로 잡은 뒤 거기에 맞는 작가와 작품을 찾아 하나의 서사로 엮는 것이 김 부관장의 중요한 기획 방식이다.

《오늘도, 준비중입니다》 전시전경

현재 열리고 있는 《오늘도, 준비중입니다》 역시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에 있다.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끊임없이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준비’라는 키워드로 바라본 전시다.

박장근, 〈겨울나기〉

박장근의 〈겨울나기〉에는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는 듯 세 인물이 서로 가까이 서 있다. 그러나 누구도 다른 이에게 기대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인물들의 자세와 깊게 파인 신체 표현은 불확실한 현실에서도 자신의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인간의 긴장과 강인함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크기와 거리를 두고 배치된 인물들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결국 각자의 삶을 감당해야 하는 오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최우영 작품 섹션

최우영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고독에 주목한다. 초기의 ‘검은 점’과 같은 인물들은 얼굴과 성별, 정체성이 지워진 익명의 존재들로, 서로 가까이 있지만 완전히 연결되지는 못한다. 책상과 의자, 창문, 커피잔 같은 익숙한 사물 역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거리와 관계를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최근에는 사건 자체보다 무언가가 일어나기 직전의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불완전한 관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김규호 작품 섹션

김규호는 안정과 질서를 상징하는 정사각형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변형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괴된 작품의 조각들을 다시 모아 설치로 구성했다. 부서지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면과 직선, 곡선이 뒤엉키면서 기존의 완전한 형태와는 다른 조형적 풍경이 만들어진다. 안정되어 있다고 믿었던 구조가 계속 흔들리고 변화하는 오늘의 현실처럼, 그의 작업은 파괴를 끝이 아닌 또 다른 관계와 가능성이 시작되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이름(E Reum) 작품 섹션

이름(E Reum)의 〈NAME〉은 우리가 사물을 어떻게 부르고 인식하는지 묻는다. 작가는 각각 고유한 이름이 새겨진 레고 브릭이 거대한 구조 안에서는 하나의 작은 부품으로만 인식되는 모습에서 오늘날 개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직접 브릭에 색을 입히고 그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함으로써 기능적 부품으로 보이던 하나의 사물에 다시 고유한 존재와 이름을 부여한다. 끊임없이 미래를 대비하는 동안 자신의 이름과 존재가 흐려지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김동우 부관장

서로 다른 네 작가의 작업은 결국 우리는 무엇을 견디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이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모인다. 전시가 불안을 지적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과 변화 속에서도 각자가 살아갈 가능성을 함께 보여준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김 부관장이 그리고 있는 한강뮤지엄은 여기에서 다시 ‘휴식’과 ‘치유’로 이어진다. 한강과 자연이라는 장소의 힘을 살려 작품을 보는 곳을 넘어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출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궁극적으로는 미술관이 좀 더 친근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원에서 벤치에 앉아 쉬듯이,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쉴 수 있는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게 하는 게 제 목적입니다.”

뮤지엄 정원과 맞닿아 있는 자전거길, 다산길 1코스(한강나루길)

전시를 보고, 한강을 바라보고, 잠시 앉아 머무는 시간. 오늘 김동우 부관장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강뮤지엄이 앞으로 만들어가려는 미술관의 모습은 이미 이곳의 풍경 속에서 조금씩 시작되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