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미술관 입구


서울대학교미술관은 2026년 9월 10일 오전 11시 미술관에서 《일상의 이미지, 어떻게 말을 거는가》 개막을 앞두고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전시는 2·3층 전시실 1~4에서 열린다. 참여 작가는 권기수, 권오상, 김화현, 노준, 박그림, 서기환, 손동현, 신학철, 아오키지, 아트놈, 이동기, 이원우, 이윤성, 함도하로 총 14명이며 회화·조각·설치 등 약 120여 점을 선보인다. 간담회에는 박보나 학예연구사, 전시를 기획한 김태서 학예연구사와 참여 작가 권기수·노준·권오상·김화현, 4명이 자리했다. 

행사는 박보나 학예연구사의 인사말에 이어 김태서 학예연구사의 전시 기획 취지 설명, 참여 작가 소개 순으로 진행됐으며, 이후 참석자들은 김태서 학예연구사의 안내로 2층부터 3층까지 전시장을 함께 둘러보는 투어로 이어졌다. 투어 도중에는 자신의 작품이 놓인 구간에서 노준·권기수·김화현 작가가 직접 작업에 관해 설명을 보탰다.

김태서 학예사


김태서 학예연구사는 전시 기획 취지를 설명하며, 이번 전시의 디자인 콘셉트 자체가 기존 서울대학교미술관 전시들과는 결이 다른, 다소 사적이고 가벼워 보일 수 있는 방향으로 잡혔다고 말했다. 대중적인 이미지나 맥락을 자신의 작업으로 끌어오는 작가들을 통해 한국 팝아트가 시작부터 오늘날까지 걸어온 과정을 대략적으로나마 살펴보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시를 구상하며 참조한 레퍼런스로 17세기 서양 회화의 '이상적 풍경화(ideal landscape)' 개념을 들었다. 당시 풍경화는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화가들은 자연의 요소를 수집하고 재배치해 종교적·신화적 의미를 지닌 이상적 풍경을 구성함으로써 풍경을 그릴 명분을 얻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중적 이미지를 자신의 작업으로 가져오는 작가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 있다고 봤다. 김태서 학예사는 소비사회 비판이나 고급 예술과 대중예술의 위계 허물기, 이미지의 민주화 같은 익숙한 해석 틀에서 다소 벗어나 오늘날 작가들이 이미 대중적 이미지로 가득한 문화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별다른 명분 없이도 그러한 이미지를 자신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 이번 전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17세기 화가들이 이상화된 풍경을 통해 자연을 보는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했듯, 이번 참여 작가들의 작품 역시 동시대의 대중문화 이미지를 수용하고 재조합해 오늘의 현재를 구성하는 또 다른 이미지의 지평을 만들어낸 시각적 증거임을 강조했다.


이동기, 〈헤르메스〉,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260×840cm


전시는 2층 이동기의 작업으로 시작한다. 이동기는 1990년대부터 활동해 온 한국 팝아트 1세대 작가로, 일본 애니메이션 '아톰'과 디즈니 '미키마우스'를 결합해 만든 캐릭터 '아토마우스'를 만들었다. 이는 서로 다른 두 나라의 대중문화를 동시에 접했던 당시 한국의 문화적 조건을 반영한다. 전시에 걸린 대형 회화 〈헤르메스〉는, 상업과 교역을 관장하는 그리스 신 헤르메스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만화·광고·브랜드 로고 등 수많은 이미지가 뒤섞여 하나의 새로운 풍경을 구성한다. 화면 한쪽에 작게 그려 넣은 믹서기 이미지를 언급하며, 이는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나란히 놓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뒤섞이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의도로 읽을 수 있다고 김태서 학예사가 덧붙였다.

이어지는 서기환 작가의 〈사람풍경〉 연작에 대해서는, 전통 인물화·동물화의 제작 형식을 빌려 현대 가족의 일상을 담아낸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다음 3층으로 올라가 처음 만나는 작품은 박그림의 불화 형식 회화였다. 박그림은 불교 회화(탱화)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삶과 관계, 감정의 변화를 연작 형태로 그려 온 작가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심호도' 시리즈 속 인물들이 작가의 어머니나 지인들을 불화적 상징으로 재구성한 존재로 함께 등장하는 피에타 같은 기독교적 상징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이어지는 이원우의 소비 문화를 입체 작업으로 보여주는 작품과 아오키지, 아트놈, 이윤성의 작업을 지나 권오상의 작업에 이르렀다.

권오상, 〈파크〉, 2014, C-print, 혼합재료180 x 180 x 300 cm


권오상, 〈트리〉, 2014, C-print, 혼합재료180 x 180 x 300 cm

본래 권오상의 〈트리〉는 〈파크〉와 한 쌍으로 제작됐지만 그동안 함께 전시된 적이 없었는데, 이번 전시를 위해 작품을 대여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먼저 두 작품을 함께 선보이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 와 처음으로 두 작품이 나란히 공개됐다고 설명했다. 사진을 오려 붙여 조각의 부피와 표면 광택을 구현하는 작가의 '사진조각' 방식은 이미지가 물성을 얻어 현실 공간에 새로운 실재로 드러나는 과정이라고 짚었다.

노준, 〈마카롱 축제〉

작품의 좌대이자 집의 역할을 하는 케이스

통로를 건너 다른 전시장으로 이동해서는 노준의 작업이 이어졌다. 고전 조각을 정교한 스테인리스 미니어처로 재현한 뒤 그 사이사이에 마카롱을 끼워 넣은 〈마카롱 축제〉 시리즈에 대해, 김태서 학예연구사는 이미 수많은 형식과 이미지가 축적된 미술사 안에서 오늘날의 작가가 무엇을 새롭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노준 작가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또 다른 연작인 '바람 빠진 조용한 움직임' 시리즈에 얽힌 사연을 전했다. 당시 네댓 살이던 딸에게 중국 여행에서 사 온 풍선을 선물했는데 이틀 만에 바람이 빠지자 딸이 몹시 슬퍼했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작업으로 발전시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다들 안에 바람을 잔뜩 채우고 자랑하려는 요즘 세상에서, 오히려 바람을 좀 빼고 힘을 빼는 편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작품 하단에 놓인 상자에 대해서도, 추운 작업실에서 밤새 놓여 있는 작품들이 안쓰러워 보여 따뜻한 방처럼 스펀지를 채운 '집'을 하나씩 만들어주기 시작했다며, 이후 전시할 때마다 작품마다 이 상자를 함께 두고 있다고 전했다.


작품 앞에서 설명 중인 권기수 작가


이어 자신이 만든 캐릭터 TOM, DONA, TOOL, Tak이 서로 어울리고 다투는 일상을 가구와 회화로 풀어낸 함도하의 작업을 지나, 그 맞은편에 걸린 권기수의 대형 회화가 소개됐다. 대표 캐릭터 '동구리'가 애초 수묵화 인물 시리즈에서 도시의 익명적 개인들을 형상화하려던 작업에서 출발해 디지털 제작 방식을 거치며 오늘날의 캐릭터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대나무나 산수 같은 전통 회화의 요소가 동구리와 함께 화면에 재구성되며 새로운 현대적 풍경을 만들어낸다고 덧붙였다. 권기수 작가는 스스로 '팝아트의 최대 수혜자 가운데 한 명이었으면서도, 지난 15~20년간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말하며, 2000년대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팝아트의 전성기였음에도 그 시기의 작업이 미술사 기록에서는 상당 부분 누락돼 있었던 점이 아쉬웠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가 그 시기의 작업들을 다시 읽고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흔쾌히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학철, 〈이수일과 심순애〉,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종이, 콜라주, 62.5×36.5cm


권기수 작가의 소회에 이어 김태서 학예연구사는 신학철의 포토몽타주 작업을 소개했다. 한국 민중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신학철이 광고에서 잘라낸 이미지를 모아 자본주의와 소비사회를 비판하는 작업을 해 왔지만, 동시에 그 이미지들이 작가에게는 하나의 매혹적인 풍경으로 다가온 지점도 함께 봐 달라고 말했다. 그는 신학철에게 이미지란 역사를 기록한 자료라기보다 역사의 실제 파편 그 자체이며, 그 파편들을 모아 새로운 장면을 구성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시된 작품과 관련한 뒷이야기도 전했다. 원래 무제로 알려져 있던 작품이었는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에게 캡션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직접 〈이수일과 심순애〉로 제목을 붙여줄 것을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손동현, 〈왕의 초상〉연작


이어 소개된 손동현의 〈왕의 초상〉 연작은 2000년대 중후반 제작된 작업으로, 마이클 잭슨을 전통적인 왕의 초상 형식으로 옮겨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데뷔 시기부터 활동 후반기까지 시기별로 총 여러 점의 초상을 제작했으며, 인물이 앉은 의자의 형태가 초기작과 후기작에서 달라지는 점에 주목해 달라고 짚었다. 화면 속 의자가 점차 왕이 아닌 재상의 의자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통해, 마이클 잭슨이라는 대중적 스타의 위상이 시간에 따라 변화해 가는 흐름을 함께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작업을 설명 중인 김화현 작가


마지막으로 소개된 김화현의 작업에 대해서는, 전통 동양화 기법으로 순정만화 속 '꽃미남'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남성상을 그려 온 작가라고 소개했다. 오랫동안 여성의 신체에 집중돼 온 회화적 시선과 대상화의 구조를 남성 신체로 전환함으로써, 누가 보고 누가 보이는가라는 관계를 새롭게 드러낸다고 짚었다. 

김태서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14명의 작가가 동시대의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조합해 우리 앞에 제시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작업에 대중문화를 향한 특별한 명분이 필요한지를 함께 질문해 보자는 말과 함께 마쳤다. 

시각 예술은 오랫동안 창작자가 살아온 시대와 사회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남긴 흔적으로 읽혀 왔다. 권기수 작가가 소회에서 밝혔듯, 2000년대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성행했던 팝아트가 정작 미술사 서술에서는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전시는 회화·조각·설치 등 다양한 매체에 걸쳐 활동해 온 14명의 작가를 통해, 그 시기 작업들을 다시 살펴보는 계기라는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