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자모를 해체하고 재구성해 문자를 독창적인 회화 이미지로 전환
30여 년간 이어온 한글 추상 작업과 대표작 〈일월사계도–금수강산〉 공개
황인혜 개인전《읽히지 않는 언어》시는 2026년 10월 8일 부터 21일까지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전시는 한글 자모의 조형미를 회화로 확장해 문자와 그림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황인혜 작가는 문자의 전달 기능을 넘어선 조형미를 꾸준히 탐구해 왔다. 한글 자음과 모음이 지닌 고유한 형태와 리듬, 다채로운 색채를 화폭에 펼쳐낸다. 작가는 자모를 해체하고 뒤집거나 겹치며 낯선 이미지로 탈바꿈시켰다. 황 작가는 "한글로 뜻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글자를 눈으로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면 된다"고 설명했다.

황인혜 작가가 한글을 회화 소재로 삼은 것은 1993년부터다. 독일 베를린 기술박물관의 '문자의 역사' 전시 참여가 계기였다. 세계 각국의 문자를 살피다 훈민정음의 독창적인 구조에 깊이 주목했다. 작가는 한글 기본 조형에서 무한한 시각적 가능성을 찾아냈다. 황 작가는 "△세모 △네모 △동그라미에 점과 선까지 다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어떻게 구성해도 그림이 되는 놀라운 문자였다"고 덧붙였다.
붓을 다루는 기초 체력은 어린 시절 서예를 가르쳐 준 부친에게서 길렀다.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배운 그는 대학 시절 국전 서예 부문에서 입선했다. 그러나 글씨를 바르게 쓰는 서예와 그림을 만드는 일은 달랐다. 황 작가는 "글자를 생긴 대로 쓰면 서예에 머물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모를 자르고 회전시키며 새로운 형상을 빚어냈다. 'ㅇ'은 해가 되고 꼭지가 달린 옛이응은 밤하늘의 달이 됐다. 'ㄹ' 두 개를 돌려 겹치면 날아가는 기러기 모습으로 변했다. 'ㄷ'의 모서리를 둥글려 얼굴을 만들고 'ㄴ'으로 코의 윤곽을 세웠다.

전시장에 걸린 대표작 〈일월사계도–금수강산〉은 자연관을 압축한 작품이다. 기하학적인 한글 구조에 전통 풍경과 사계절의 색을 한 화면에 결합했다. 화면에는 △붉은 가을 △초록의 봄 △베이지색 겨울 △푸른 여름이 공존한다. 구겨 붙인 색색의 조각들은 산속 바위와 꽃, 열매와 짐승을 대신한다. 실제 자연을 묘사하기보다 문자와 색채로 자연을 새롭게 재해석했다.
작품 제작 방식에서도 동양과 서양의 조형 전통이 자연스럽게 만난다. 작가는 서양화 캔버스 위에 두꺼운 전통 한지를 정성껏 덧붙였다. 그 위에 물감과 돌가루 등을 섞어 여러 겹 칠한 뒤 짙은 먹선을 그었다. 종이의 결 위에 쌓인 안료와 먹선은 평면에 깊은 입체감을 더한다. 직선 사이에 곡선을 섞고 짙고 옅은 점을 찍어 화면에 리듬을 불어넣었다.

화면을 채운 화려한 색감은 전통 민화와 활옷 자수에서 영감을 얻었다. 한국 전통의 색채 감각을 현대 회화의 언어로 새롭게 재해석한 결과다. 황 작가는 "백의민족 뒤에 가려진 다채로운 한국의 색을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30여 년 동안 문자를 그림으로 바꾸며 그는 한글의 확장을 몸소 증명했다. 작가는 "우리 글자는 무궁무진해 작업 시간이 모자랄 정도"라고 감탄했다.
황인혜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원로 작가다. 작가는 지난 30여 년 동안 한글을 현대 조형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왔다. 관람객은 한글이 품은 무한한 조형의 자유와 색채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