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택아트브릿지》 안중시장 전시를 따라 걷다
시장서비스센터 로비 공간의 높은 천장에 작품이 걸리고, 오래된 상가에는 철과 석고붕대로 만든 인물이 들어섰다. 카페였던 공간에서는 일상의 물건이 ‘반짝임’의 형상으로 바뀌고, 미용실 쇼윈도에는 도시의 인구와 임대료가 이미지로 나타난다. 《평택아트브릿지 : 사이의 예술, 관계의 지형》이 펼쳐지는 안중시장의 풍경이다. 평택시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하고 김달진미술연구소가 공동 기획·운영하는 이번 전시는 남부·북부문화예술회관과 더불어 안중시장 다섯 공간에서 관람객을 만난다.
안중시장 전시의 소주제는 ‘관계의 장’이다. 안재원, 김희곤, 안민욱, 조정희, 황혜인은 서비스센터 로비와 오래된 상가, 카페와 미용실, 무인점포로 쓰이던 장소에 각자의 작업을 펼쳤다. 공간마다 다른 층고와 구조, 거리에서 내부를 들여다보게 하는 유리창은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다섯 공간을 차례로 걸으면 작품과 함께 시장의 건물과 골목도 눈에 들어온다.

안재원, 〈온갖 것들이 있고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숲〉, 2025, 간지 노방 천과 투명 페트에 인쇄, 가변 크기
첫 번째로 만나는 안재원의 작품은 안중시장서비스센터 로비의 높은 층고를 이용한 모빌형 설치작품이다. 약 6m 높이로 열린 공간의 상부에 작품을 매달아, 평소 앞을 향해 걷던 관람객의 시선을 위로 이끈다. 벽면에 걸린 작품을 정면에서 보는 방식과 달리, 관람객은 로비를 이동하며 머리 위에 놓인 형태들의 배치를 살펴보게 된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겹침과 간격, 작품 사이로 드러나는 빈 공간까지 감상의 일부가 된다. 시장을 안내하고 사람들이 오가는 로비가 작품을 올려다보며 잠시 머무는 장소로 바뀐다.

김희곤 전시전경 : 〈안아주세요〉, 2019, 철사, 석고붕대, 마커팬(관객 참여), 50×30×176cm ; 〈살아내는 자들〉, 2026, 칼라강판, 가변크기
시장의 중심에 자리한 김희곤의 전시공간은 오랜 시간이 느껴지는 낡은 상가다. 이곳에서 선보이는 〈안아주세요〉 연작은 철제 구조와 석고붕대를 사용한다. 단단한 철과 몸을 감싸고 보호하는 붕대가 한 작품 안에서 만나면서 인간의 상처와 회복을 구체적인 재료의 감각으로 전달한다. 빔프로젝터의 빛은 이러한 형상과 함께 놓이며 공간의 분위기를 만든다. 관람객이 흰 벽면에 낙서나 자기고백을 남기도록 한 구성은 작품의 제목을 관람객 자신의 이야기로 이어준다. 오래된 상가 안에 작가가 만든 인물과 방문자가 남긴 말이 함께 쌓이는 셈이다.

안민욱, 〈작업이 될 때 01〉, 2026, 종이, 나무, 분필, 가변 크기
카페로 사용되었던 안민욱의 공간에서는 익숙한 ‘반짝반짝’ 형상이 등장한다. 〈작업이 될 때 01〉은 LP판을 겹치거나 커피잔 받침을 맞대어 반짝임의 윤곽을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 빛나거나 특별한 것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기호를 일상의 물건으로 만들어, 예술작품을 둘러싼 아우라를 유머러스하게 다룬다. 한때 커피를 마시던 장소에서 커피잔 받침이 작품을 만드는 단서가 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작업은 이러한 형상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판화지 20장에 세 개의 구멍을 뚫어 자작나무 틀에 걸고, 시장 바닥에는 노란 분필로 표시를 남긴다. 종이에 난 구멍과 나무틀, 바닥의 표식처럼 단순한 요소들이 전시장과 시장의 길을 연결한다. 관람객은 재료 자체의 평범함과 그것이 작품으로 제시되는 상황을 번갈아 보게 된다. ‘반짝임’을 알아보는 순간의 웃음은 어떤 물건과 행위가 예술로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조정희의 공간은 미용실이었던 점포의 전면 쇼윈도를 활용한다. 작가는 인구와 세대 구성, 상가 임대료 등 도시의 변화를 보여주는 데이터를 점과 선, 창의 이미지로 옮긴다. 〈유년의 온도〉에서는 중심을 유년기에 두고 바깥으로 갈수록 나이가 들도록 구성하며, 점의 밀도로 세대별 인구를 표현한다. 어린 시절의 운동장과 공작새, 모래놀이터에 대한 기억은 현재의 아파트 풍경과 포개진다. 숫자로 나타나는 고령화와 인구 변화가 한 사람이 기억하는 장소의 변화와 만나는 것이다.

조정희 전시전경
〈서서히 비워지는 공간〉은 창 하나를 100명에 대응시키고, 켜진 창과 꺼진 창으로 남아 있는 사람과 떠난 자리를 보여준다. 〈불 꺼진 1층〉에서는 임대료의 변화가 선의 밝기와 굵기로 나타난다. 이러한 표현은 데이터를 읽기 쉽게 정리하는 인포그래픽에서 더 나아간다. 사람이 모이고 떠나는 일, 상점이 문을 열고 닫는 일, 개인의 기억 속 장소가 사라지는 일을 함께 바라보게 한다. 전면 유리 너머의 이미지와 그 앞을 오가는 시장의 풍경이 겹치면서, 사회와 개인의 성장과 쇠퇴의 반복을 넘어 무엇이 남고 이어지는지 생각하게 한다.

황혜인 전시전경
마지막으로 황혜인의 작업은 무인점포였던 1층 공간에 자리한다. 전면이 쇼윈도로 된 구조 덕분에 거리에서도 내부의 작업을 마주할 수 있다. 평택의 사람과 장소를 사진과 아카이브로 기록해 온 작가는 일상의 물건과 예술작품을 교환하는 방식으로도 작업을 확장해 왔다. 〈Trade It Project〉에서는 개인이 주관적인 가치를 부여한 물건과 작가의 작품을 맞바꾸며, 물건에 담긴 기억과 이야기를 교환의 기준으로 끌어들인다.
이번 전시와 연결된 ‘일상의 가치 교환’ 역시 이러한 작업의 연장에 있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 간직한 기억일 수 있고, 사진작품 또한 교환을 통해 새로운 사람의 일상으로 들어간다. 물건을 고르고 값을 지불하던 무인점포에서 개인의 사연과 예술의 가치를 함께 생각하게 하는 작업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장소와의 접점이 분명하다. 물건이 얼마인지를 묻던 공간에서, 그것을 왜 간직해 왔는지 묻게 된다.
11월 1일에는 안중시장 동행축제와 연계한 작가·시민 교류회와 김희곤의 퍼포먼스도 예정되어 있다. 철제 인간상을 손수레에 싣고 시장을 이동하는 행위는 전시공간 안에 있던 인물과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같은 길 위에 놓는다. 《평택아트브릿지 : 사이의 예술, 관계의 지형》은 2026년 12월 9일까지 이어지며, 관람료는 무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