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택아트브릿지》 남부문화예술회관 ‘기억과 감각의 접점’

평택시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하고 김달진미술연구소가 공동 기획·운영하는 《평택아트브릿지 : 사이의 예술, 관계의 지형》이 10월 27일부터 12월 9일까지 평택남부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남부문화예술회관 전시는 ‘기억과 감각의 접점’을 소주제로 최영균, 조성락, 황교영, 조순조, 김영배, 지선희, 황제성, 천인안 등 평택과 인연을 맺어온 8명의 작가를 소개한다. 작품뿐 아니라 작가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도록, 리플릿, 포트폴리오, 화구 등 아카이브 자료를 함께 선보이며 평택미술의 시간을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기억과 감각의 접점’에서 기억은 과거를 보존한 자료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랫동안 바라본 고향의 풍경, 손으로 반복해 익힌 기술, 특정한 장소에서 살아온 경험과 감정 역시 작품 속에 축적된다. 이번 전시는 평택미술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기보다 작가들의 손과 몸을 거쳐 남겨진 형상과 재료, 지역에서 이루어진 전시와 교육의 흔적을 함께 보여주며 과거의 시간을 오늘의 감각으로 불러낸다.

최영균 작품 섹션 

전시는 평택 근현대미술의 초기 활동을 보여주는 연암 최영균에서 시작한다. 1915년 평택 현덕면에서 태어난 최영균은 산과 계곡, 꽃과 나무를 수묵채색으로 그렸으며, 가는 선으로 대상의 윤곽을 잡는 구륵법과 먹의 농담, 옅은 담채를 활용해 자연의 서정을 표현했다. 화면에 한시를 직접 적어 그림과 시를 함께 구성한 점도 특징이다. 1941년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지역에서 미술교육을 이어간 그의 활동은 평택 근현대미술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전시장에서는 작품과 함께 당시 미술계와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짐작할 수 있는 기록자료도 살펴볼 수 있다.

조성락 작품 섹션

이어지는 죽리 조성락의 화면에는 목화와 접시꽃, 새와 고추밭처럼 작가가 고향에서 직접 보고 경험한 자연과 생활의 풍경이 등장한다. 특히 어린 시절 평택의 목화밭에 대한 기억은 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소재가 됐다. 전통적인 화조화의 세필과 채색을 익힌 그는 이를 자신의 생활 경험과 결합해 독자적인 한국화로 발전시켰으며, 1981년 마지막 국전인 제30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촉규화〉로 특선을 수상했다. 당시 국전 도록과 오랜 기간 사용한 붓과 화구를 작품 곁에 배치해 완성된 한 점의 그림 뒤에 축적된 작가의 시간까지 함께 보여준다.

황교영 작품 섹션

평택 출신 조각가 황교영은 자연의 재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리’와 ‘섭리’라는 추상적인 형태를 발전시켰다. 철과 브론즈, 나무 등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해 두 개 이상의 덩어리를 연결하고 맞물리게 하면서 인간과 인간, 나와 타자의 관계를 조각으로 표현했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지속한 고리 형태는 서로 독립된 존재들이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작가의 생각을 보여준다. 매끄럽고 단단한 조각의 표면과 구조, 그 사이에 형성되는 빈 공간까지 함께 살펴보면 황교영이 조각을 통해 관계를 다루었던 방식을 읽을 수 있다.

조순조 작품 섹션

조순조의 목판에는 송탄에서 보낸 삶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사람과 동물, 꽃과 물고기, 종교적 이미지, 어린 시절과 가족의 기억은 조각칼로 반복해 새긴 선을 통해 화면에 나타난다. 〈행복한 날〉과 같은 작품에서는 일상의 소박한 풍경을 따뜻하게 기록하는 한편, 다른 작품에서는 대상을 단순화하거나 해체하면서 목판의 물성과 리듬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조순조는 작품 제작뿐 아니라 송탄문화원에서 시민들에게 판화를 가르치고, 1990년대에는 평택과 해외 어린이들의 그림을 연결하는 국제아동미술교류전을 이어가는 등 미술을 지역사회의 관계로 확장했다.

김영배 작품 섹션

김영배에 이르면 화면은 크게 달라진다. 그는 격자와 망점, 반복적인 패턴, 만화적인 인물과 서로 다른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도시화 속 인간의 불안과 소외, 파편화된 일상을 표현했다. 팝아트와 콜라주의 방법론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대 한국 사회의 감각을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로 바꾸었다. 한광여자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평택과 인연을 맺었던 그는 문학과 삽화의 영역에서도 활동했다. 전시장에 펼쳐 놓은 포트폴리오에서는 평택 출신 문인 박석수의 소설 「차표 한 장」에 김영배가 그린 삽화를 볼 수 있어, 지역에서 문학과 미술이 만났던 한 장면도 확인할 수 있다.

지선희 작품 섹션

지선희의 자료는 평택에서도 특히 송탄의 독특한 미술환경을 보여준다. 그는 목판회화를 중심으로 작업하며 1990년 K-55 미군기지 안의 예술공예센터(Art & Craft Center)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조순조와 함께 기지 내에서 2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개인전 리플릿과 송탄미술대전 관련 자료는 미군기지와 지역 주민의 생활권이 맞닿아 있던 송탄에서 미술인들이 어떤 공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교류했는지를 보여준다. 작품과 함께 놓인 작은 인쇄물들은 한 작가의 이력을 넘어 당시 지역의 문화환경을 증언하는 자료가 된다.

황제성 작품 섹션

황제성은 평면 회화에 오브제를 결합하고 동판, 문, 빨래판과 같은 기존 사물을 작업에 끌어들이며 매체의 범위를 확장했다. 1990년대에는 한미연합훈련 ‘팀스피릿’을 소재로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다뤘고, 이후 〈순환의 계절〉 연작을 통해 자연과 인간, 시간과 공간의 순환에 관심을 옮겼다. 최근에는 피노키오를 비롯한 유년기의 이미지와 일상의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동심과 자기 회복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함께 전시된 1990년대 베아트리체 아트홀 관련 포트폴리오는 황제성 개인의 활동과 함께, 지역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하며 평택 미술인들의 교류 거점 역할을 했던 민간 문화공간의 역사도 보여준다.

천인안 작품 섹션

마지막 천인안은 붓 대신 재봉틀을 사용한다. 캔버스 원단 위를 재봉실로 반복해 박음질하며 선을 만들고, 골목과 오래된 건물, 도시의 기억과 일상의 사람들을 천 위에 새겨나간다. 작가가 ‘소잉드로잉’이라 부르는 이 방식에서는 실의 선뿐 아니라 바늘이 천을 통과하며 남기는 촉각적인 표면과 앞뒤가 서로 다르게 형성되는 구조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평택의 과거를 그린 수묵과 목판에서 출발한 전시가 재봉틀과 실을 이용한 동시대의 기록 방식으로 이어지면서, 기억을 남기는 예술의 방법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남부문화예술회관 전시에서 작품과 아카이브는 서로를 보완한다. 한 점의 그림 옆에 놓인 오래된 도록과 리플릿, 작가가 손에 쥐었던 화구와 포트폴리오는 작품이 어느 시대와 장소에서 만들어지고 발표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최영균에서 천인안까지 이어지는 여덟 작가의 작업은 하나의 동일한 ‘평택미술’을 보여주기보다, 서로 다른 세대가 자연과 도시, 사람과 장소를 바라보고 기록해온 다양한 방법을 드러낸다. 그렇게 남겨진 기억은 전시장 안에서 다시 관람자의 눈과 몸을 만나 현재의 감각으로 되살아난다.

전시 개막행사는 10월 30일 오후 2시 평택남부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며, 이어 참여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세계와 평택과의 관계를 직접 이야기하는 작가·시민 교류회가 진행된다. 전시는 12월 9일까지 계속되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하며 관람료는 무료다.

《평택아트브릿지》 작가·시민 교류회 및 스튜디오 탐방 참가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