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택아트브릿지》 북부문화예술회관 ‘시선들의 교차’
평택시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하고 김달진미술연구소가 공동 기획·운영하는 《평택아트브릿지 : 사이의 예술, 관계의 지형》이 10월 27일부터 12월 9일까지 평택북부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북부문화예술회관의 소주제는 ‘시선들의 교차’다. 장선영, 엄태순, 김선, 문소정, 박보선, 유영동, 김성기, 엄소완 등 8명의 작가가 드로잉과 회화, 조각, 판화, 설치, 미디어아트 등 서로 다른 방법으로 자연과 일상, 인간과 도시를 바라본다.
북부 전시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가보다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관심을 둔다. 같은 풍경도 누군가는 오래 관찰해 선으로 기록하고, 누군가는 시간이 지난 뒤 기억을 더해 그림으로 옮긴다. 금속선을 구부려 공간 속에 선을 만들기도 하고, 디지털 이미지의 투명 격자나 빛과 영상으로 오늘날의 인간을 바라보기도 한다. 서로 다른 여덟 개의 시선이 한 공간에서 교차하면서 익숙했던 대상과 일상을 다시 보게 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장선영 작품 섹션
전시가 장선영의 작업에서 시작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장선영은 새소리와 개구리 울음, 버스 안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말소리, 주변 자연의 미세한 변화처럼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을 관찰하고 드로잉으로 남긴다. 화려한 기술이나 거대한 주제보다 먼저 주변을 오래 바라보고 손으로 기록하는 행위에서 예술을 시작한다. 이는 미술사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가장 기본적이고 고전적인 창작 태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고전적’이라는 말은 오래되었다는 뜻보다, 관찰과 반복을 통해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성장하는 작가의 기본적인 자세에 가깝다.
전시장 배경을 이루는 장선영의 《배의 노래》 시리즈는 시멘트 운송선에 들어갔던 경험에서 출발했다. 선박 곳곳에서 움직이는 기계와 그 소리를 접한 작가는 기계를 악기처럼, 그 소리를 하나의 음악처럼 바라봤다. 둥둥 울리고 서로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기계의 구조와 리듬을 그림으로 옮겨, 글이 없는 한 권의 그림책처럼 구성한다. 관람객은 화면을 따라가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배의 노래’를 저마다 상상하게 된다. 눈으로 바라보는 드로잉이 소리에 대한 상상으로 확장되는 작업이다.

엄태순 작품 섹션
엄태순 역시 가까이에 있는 풍경에서 작업을 시작하지만 방법은 다르다. 작가는 집과 골목, 식물처럼 일상에서 마주치는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한 뒤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바라보며 그림으로 옮긴다. 《식물일기》, 《일상화첩》과 같은 작업에서 화려한 사건 대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과 오래 바라본 동네 풍경을 차분한 아크릴과슈의 색채로 담는다. 처음 보았던 순간과 그림을 그리는 현재 사이에 시간이 놓이면서 실제 풍경에는 작가의 기억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김선 작품 섹션
김선의 작업에서는 화면 위의 선이 실제 공간으로 나온다. 철과 나무, 테라코타, 동파이프 등 여러 조각 재료를 사용해온 작가는 특히 가늘고 긴 동파이프를 반복해서 휘고 연결하며 유기적인 형태를 만든다. 단단한 금속이 식물의 줄기나 물결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으로 변하고, 선과 선 사이의 빈 공간까지 조각의 일부가 된다. 관람객이 작품 주변을 움직일 때마다 금속선이 겹쳐지는 모양과 그림자가 달라져 하나의 조각에서도 여러 장면이 나타난다.
문소정 작품 섹션문소정은 판화에서 출발해 회화와 설치, 재료 실험으로 작업을 확장한다. 판화를 반복해서 찍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압력과 흔적, 이미지가 겹쳐지며 생기는 미세한 차이를 작업의 중요한 요소로 삼는다. 최근에는 판화의 평면적인 이미지와 라텍스처럼 부드럽고 유기적인 재료를 함께 사용하면서 이미지가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변형되는 과정 자체를 보여준다. 독일에서 생활했던 경험과 평택이라는 서로 다른 장소의 기억도 한 화면에 들어온다. 서로 다른 문화와 재료가 완전히 하나로 섞이기보다 각자의 성질을 유지한 채 공존한다.

박보선 작품 섹션
박보선은 사람의 얼굴과 몸을 통해 도시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불안과 익명성을 바라본다. 그의 인물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얼굴이나 신체 일부에 나타나는 모자이크와 격자무늬다. 특히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에서 배경이 없다는 것을 표시할 때 사용하는 회색과 흰색의 ‘투명 격자’를 회화의 요소로 가져온다. 누군가의 몸이 비어 있거나 일부가 삭제된 것처럼 보이면서, 겉으로 보이는 얼굴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람의 내면을 드러낸다. 수많은 사람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서로의 감정은 알지 못하는 동시대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유영동, 〈EVADAM 2〉(세부), 2026, OLED 모니터, 70×123㎝
유영동은 이러한 디지털 이미지의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기술과 공간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비디오 설치와 디지털 이미지, 빛을 활용한 라이트 벌룬,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이미지와 공간, 관람자의 신체 사이의 관계를 실험해왔다. 대표적인 〈EVADAM〉이라는 명칭은 성경 속 이브(Eve)와 아담(Adam)을 결합한 것이다. 작가는 남성과 여성, 인간과 이미지, 실제와 가상처럼 서로 다른 존재의 경계를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질문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이미지가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오늘날,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미디어의 언어로 다시 던진다.

김성기 작품 섹션
김성기는 브론즈와 자연석, 스테인리스 등 조각의 전통적인 재료를 바탕으로 인간의 몸과 움직임을 탐구해온 작가다. 그의 작업에서는 완전한 인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몸의 일부를 생략하거나 변형하고, 덩어리 사이에 구멍과 틈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소리’와 ‘춤’, 공간에서 발생하는 울림처럼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감각을 인체의 움직임으로 바꾸어 표현한다. 관람객의 시선이 조각의 구멍을 통과하면서 작품 뒤의 공간까지 함께 보이게 되고, 단단한 조각의 덩어리와 비어 있는 공간이 동시에 하나의 형태를 만든다.

엄소완 작품 섹션
전시의 마지막은 엄소완의 작업이다. 엄소완은 풍수지리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는 의미의 ‘비보(裨補)’를 작업의 중요한 개념으로 삼는다. 화면에는 땅과 하늘, 산과 물줄기를 연상시키는 형상들이 서로 겹치고 연결된다. 장지와 석채, 수제 종이를 이용한 콜라주 등 전통적인 한국화 재료를 현대적으로 변형해 사용하며, 특히 작품의 기본 바탕에는 방해석을 곱게 갈아 만든 흰색 돌가루인 ‘방해말’을 사용한다. 방해말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요철 위에 색과 종이를 겹치면서 화면은 평면이면서도 촉각적인 지형처럼 보이게 된다.
엄소완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중심보다 서로 다른 형상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부족한 부분을 다른 요소가 채우고, 분리되어 있던 땅과 물, 하늘의 이미지가 화면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장선영이 작은 소리와 풍경을 세심하게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했던 북부 전시는 이렇게 서로 다른 존재와 시선이 만나 더 넓은 풍경을 만드는 장면으로 끝난다.
‘시선들의 교차’라는 소주제는 여덟 작가가 같은 대상을 바라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연을 기록하는 드로잉과 회화, 공간에 그려진 금속의 선, 판화의 반복과 라텍스의 물성, 디지털 격자를 가져온 인물화, 빛과 영상, 인체조각과 돌가루가 쌓인 한국화까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시선을 한 공간에서 마주했을 때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북부문화예술회관은 그러한 차이를 지우지 않고 나란히 놓아, 동시대의 예술이 세계를 바라보는 여러 방법을 보여준다.
10월 31일에는 북부문화예술회관에서 작가와 시민이 함께하는 두 번째 교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참여 작가와 시민들이 1호 캔버스에 자신의 조형언어를 담은 작품을 직접 제작하고, 이를 참여자 간에 나누는 자리다.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작가의 손이 움직이고 하나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만나며, 작품을 매개로 작가와 시민의 관계를 확장한다.
《평택아트브릿지 : 사이의 예술, 관계의 지형》 북부문화예술회관 전시는 2026년 12월 9일까지 이어진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