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미술관 소장품 특별전_미술관 소장 판화와 전시를 중심으로 


고충환 | 미술평론가



지금의 아르코미술관은 원래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1974)에서 마로니에미술관(2002, 미술관이 위치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이름을 가져온)으로, 그리고 재차 아르코미술관(2005)으로 개명한 것이었다. 2004년 미술관의 운영주최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한 것에 따른 것이다. 운영 초기에는 주요 단체와 협회전에 전시장을 대관하는 형식으로 운영해오다가, 1999년 큐레이터 제도를 도입하면서 미술관 본연의 기획전 중심 체제로 전환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큐레이터 제도의 도입과 함께 인근에 별도의 인사미술공간(줄여서 인미공)을 개관(2000)했는데, 그즈음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이 불면서 이에 따른 형식실험이 활발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돌이켜보면 대안공간의 등장과 함께 소위 탈의 논리에 따른 다원주의 예술이라는 용어가 처음 도입 정착된 것도 인사미술공간에서의 일이다. 

1974/ 미술회관 개관기념 판화초대전 

미술관 전시 중 판화 관련 전시를 보면, 1974년 미술회관 개관기념으로 판화초대전을 연 것이 주목된다. 당시 전시에는 이항성과 최영림을 초대 전시했는데, 주지하다시피 이항성(1919-1997)은 1958년 한국판화협회를 창립한, 한국 최초의 석판화가로 알려져 있다(물론 그 이전에 이미 석판화로 시전지를 제작한 예는 있지만, 시전지는 예술판화라기보다는 생활판화로 간주 된다). 
1956년 이항성은 광화문 근처에서 미술교육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계간 <신미술>을 발행했으며, 주로 교정기를 이용한 오프셋 인쇄기법으로 석판화를 제작했다. 석판화는 원래 석회석에 찍어야 하지만, 그는 주로 아연판을 이용해 판화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아연판은 가격이 비싸기도 하거니와 조직이 물러서 에디션을 내기가 어려워 지금은 알루미늄판이 석판화 대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작가는 1958년 한국판화협회를 창립하면서, 아연판으로 제작한 석판화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자신의 판화 외에 이상욱, 김정자, 유강렬 등의 작품도 찍었던 것으로 보아 판화 공방의 효시로 봐도 되겠다. 이봉상과 함께 최초로 석판인쇄에 의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제작하기도 했고, 1958년에는 미국 신시내티미술관에서 열린 제5회 <국제현대컬러리토그래피전>에 입상하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이항성은 본 협회를 창립하고, 같은 해 제1회 <한국판화협회전>을 중앙공보관에서 개최했다. 당시 이항성을 비롯해 유강렬, 이상욱, 김정자, 최영림, 정규, 임직순, 장리석, 변종하, 차혁, 박성삼, 박수근, 최덕휴, 전상범, 이규호 등이 창립회원으로 참여했다. 이후 정기적인 협회전과 함께, 1968년에 처음 개최된 이후 1975년까지 존속한 신인 공모전을 통해서는 송번수, 이승일, 김진석, 김태호, 백금남, 이인화 등 차세대 판화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항성은 1968년 <한국현대판화 10년전>을 기획 전시하기도 했는데, 당시 이항성을 비롯해, 김영주, 정규, 유강렬, 최영림, 배륭, 김정자, 강환섭, 이상욱, 윤명로, 김상유, 김종학 등이 전시에 참여했다(1968년 한국현대판화 10년 전을 연 것도, 그때 처음으로 신인 공모전을 연 것도 같은 해 창립된 한국현대판화가협회에 자극받은 부분이 있다). 
그리고 최영림(1916-1985)의 목판화는 일본 태평양 미술학교 유학 시절 당시 일본의 목판화가 무나카타 시코(1956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판화로 대상을 수상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리 부는 소년과 나체의 여인들을 소재로 한 목가적인 전원 풍경화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1934년과 40년에 각각 <일본창작판화가협회전>에 입선하기도 한 그는 국내 최초의 현대판화작가로도 평가된다. 

1981/ 81 한국미술: 판화대전 

1981년에는 <81 한국미술: 판화대전>을 열었는데, 전시에는 김구림, 이항성, 최영림, 최종태 등 작가들이 초대 전시되었다. 그중 김구림(1936)은 1981년 제 3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에 참가 출품한 작가의 작품이 설치작업의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로 전시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원래 1974년 작품을 그대로 재연한 작업에서 작가는 식탁보에 얼룩을 실크스크린하고, 그 위에 걸레를 얹어놓아 마치 걸레에서 배어 나온 물이 보에 스며든 것 같은, 일상 그대로의 효과(아니면 현상)를 연출한 것이다. 판화와 설치작업, 예술과 일상과의 경계와 구분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1980년에는 국내 최초의 전문 판화 공방을 개설하기도 했다. 
참고로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는 1970년 동아일보가 창간 5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것이다. 격년제로 열린 본 전시는 72년의 2회 전시와 81년의 3회 전시 사이에 공백이 있었고, 5회 전시 때는 외국인 심사위원을 배제하는 등 대외적인 위상과 공신력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본 전시가 한국현대판화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는데 적지 않게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 사실이다.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가 배출한 주요 작가로는 김상유(1970), 송번수(1972), 한운성(1981), 김태호(1986), 강애란(제6회 전시 대상 수상) 같은 작가들이 있다. 1992년 대상을 수상한 지석철을 끝으로 전시가 폐지되었다. 

1987-88/ 서울국제판화교류전과 프린트엔카운터전 

1987년에는 <서울국제판화교류전>을, 연이은 1988년에는 <프린트엔카운터전>을 연 것이 주목된다. 1978년부터 시작해 격년제로 열린, 중앙일보사(계간미술)와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공동 주최한 서울국제판화교류전은 1회 전시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었으며, 2회 전시부터는 공모전을 신설 병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국제판화교류전과 프린트엔카운터전에는 강애란, 안정민, 윤동천, 박영하, 임영길, 정일 같은 작가들이 참여했다. 작가들 가운데 강애란, 안정민, 윤동천은 <내일의 판화전>에도 주도적으로 참여 전시하기도 했다. 
참고로 <내일의 판화전>은 1995년, 1996년, 1997년 세 차례의 연이은 전시 이후 그 막을 내린다. 1995년에는 실험성을 수용하되 에디션이 가능한 작품으로 제한했고, 1996년 전시에서는 판화의 규모를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100호 이상의 대작을 중심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따로 원판이 존재하지 않는 작품을 제외했다. 그리고 1997년 전시에서는 평면성의 확장, 간접성의 확장, 복수성의 확장 등 확장된 개념으로 아티스트북과 컴퓨터프린트를 아우르는 등 판화 표현의 경계를 확장하는데 기여했다. 전시와 함께 비록 1호 간행에 그쳤지만, 판화 전문지 <Vision>을 창간하기도 했다. 그리고 연이은 3회 전시가 종결된 1999년에는 <off print전>을 열어 <내일의 판화전>이 갖는 성과와 의의를 되돌아보게 했다. 전시에는 강애란(전자책), 곽남신(설치판화), 김용식(대형 석판화), 서정희(오브제), 송대섭(모노타이프), 안정민(여성주의), 윤동천(개념미술), 정상곤(미디어와 이미지 정치학), 정원철(환경과 생태)과 같은 실험성이 강한 작가들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강애란(1960)은 <서울국제판화교류전>(87-91)과 <프린트엔카운터전> 그리고 <예술가가 만든 책전>(1999)에도 참여했는데, 작업의 경향을 보면, 책 보따리를 실물 그대로 캐스팅한 입체판화, 투명 폴리로 책을 캐스팅한 오브제 작업, 동영상을 도입한 전자책, 그리고 도서관이나 서가를 재현한 사진과 영상작업에 이르기까지 책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이 일련의 작업에서 작가는 책 속에서 인간의 역사를 보고 지식의 역사를 본다. 작가에게 책은 말하자면 정신적인 사유와 지식의 메타포의 한 형태로서 주어진 것이다. 

1999/ 예술가가 만든 책전 

그리고 1999년에 미술관이 연 전시로 <예술가가 만든 책전>이 주목된다. 문화예술진흥원 시절 미술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전시로, 김찬동과 임영길이 문화예술진흥원과 공동주최한 전시다. 
전시의 취지를 보면, 한국의 현대판화가 현대미술 일반과 그 과정을 같이 하면서 지나치게 형식적인 성과에 기울어진 나머지 판화 본래의 소통성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것으로 인식하는 한편, 그 소통 가능성의 회복을 꾀한다. 그리고 그 주요 계기를 책의 형식으로부터 찾는 한편으로, 책과 판화가 겹치는 부분, 즉 소통 가능성의 형식실험에 주력한다. 책을 인식의 도구가 아닌, 그 자체 오브제로 접근한 책, 기존의 판화 기법을 이용해 만든 책, 여타의 종이 제작기법을 이용하여 만든 책, 복사 및 컴퓨터 프린트 및 영상 투사 방식의 첨단 미디어 혹은 멀티미디어 기법으로 제작한 전자책, 그리고 여기에 전통적인 의미의 장서표와 전각을 포함한다. 형식적으로는 평면과 입체 나아가 설치를 아우르는 등 정통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굳이 판화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판화 고유의 소통성을 회복하고 그것(소통)을 담아내는 여타의 형식실험을 모색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판화의 경계를 넘어 판화를 확장하는 또 다른 계기를 연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전과 홍익판화가협회전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지만 70, 80년대만 해도 각종 그룹전과 동인전 그리고 협회전이 미술계를 이끌었고, 담론 생산의 주체적 역할을 했다. 판화도 예외일 수 없었는데, 당시 미술관이 유치한 전시로는 <한국현대판화가협회전>과 <홍익판화가협회전>이 대표적이다. 


1968년 창립된 한국현대판화가협회에는 강환섭, 김민자, 김상유, 김정자, 김종학, 김훈, 배륭, 서승원, 유강렬, 윤명로, 이상욱, 전성우, 최영림이 창립회원으로 참여했으며, 제1회 <한국현대판화가협회전>을 신세계화랑에서 개최했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판화 관련 전시를 보면, 1980년 <한국현대판화드로잉대전>, 1993년 <한국현대판화40년전>, 1999년 <한국현대판화전>, 2003년 <한국현대판화모음전>이 있었는데, 이 모든 전시에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직간접으로 간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회관 시절 미술관이 유치한 경우로는 1988년 제25회, 1990년 제27회 협회전과 1997년 제17회 공모전이 있었고, 강승희, 신장식, 강동석과 같은 협회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했다. 


강승희(1960)는 새벽을 주제로 한 부식 동판화로 <가나가와 국제판화 트리엔날레>(1998), <오사카비엔날레>(1997), <세계현대판화전>(1995),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1994)와 같은 국내외 전시에 초대를 받았고, 제1회 <칭다오 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동상을(2000), 제4회 <와카야마 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2등상을(1991), 그리고 마침내 제5회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했다(1988). 판화를 보면, 정적과 여명에 감싸인 도심의 변두리 풍경을 통해 삭막한 도심의 이면을 들추어내 보이며, 이후 새벽녘의 강변을 소재로 어스름하고 파르스름한 대기의 분위기가 강한 시적이고 서정적인 화면을 재구성해내고 있다. 형상을 실루엣으로 단순화하고 화면의 상당 부분을 여백에 할애해 새벽녘의 대기를 강조하는 작가의 방식은 대상을 즉물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작가의 내면에서 한차례 걸러진 일종의 내면화된 풍경을 보여준다. 


참고로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는 원래 1980년 월간 건축 미술문화 잡지 <공간>을 창간한 고 김수근에 의해 창립된 <공간국제판화전>이 이후 개명된 것이다. 공간국제판화전은 공간국제소형판화전이 원래 명칭이었으며, 소형 판화의 섬세한 표현과 미학적 가치를 지향했다. 실제로 출품판화의 규격을 소형으로 제한했는데, 이후 이러한 제한 규정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고, 향후 현대판화의 경향성을 수용할 요량으로 소형 판화의 규격 제한을 폐지했다. 공간국제판화전이 배출한 주요 작가로는 장영숙(1980), 김형대, 김태호(1982), 전경자, 손철호(1986), 이재호, 강승희(1988), 정상곤, 김연규(1990), 박정호, 이상기(1994), 정헌조, 서희재(1996), 배선미(1998), 구자현(2002)과 같은 작가들이 있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장(2017-2020)을 역임하기도 한 신장식은 1991년 제11회 <서울국제판화교류전>에, 1999년 <예술가가 만든 책전>에 출품했으며, 1993년 제5회 <와카야마 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2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의 판화는 소멸법으로, 한판다색판화인 소멸법은 하나의 이미지를 판에 새겨 종이에 찍어내고, 다시 같은 판 위에 다른 이미지를 새겨 찍어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겹겹이 찍히면서 드러나는 중첩 효과로 인해, 다른 판법의 목판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밀도감이 있는 화면을 얻을 수 있다. 중첩된 색면과 스크래치 그리고 두터운 마티에르로 인해 회화적인 느낌이 강한 편이다. 이런 소멸법으로 제작한 신장식의 목판화는 초롱과 촛불을 반복 병렬하는 과정을 통해 한국적인 이미지를, 그리고 금강산과 같은 산수풍경을 소재로 한 전통적인 미적 감수성을 표출시킨다. 


그리고 1997년 제17회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강동석(1963)은 이외에도 일본 교토 <국제목판화협회전> 본상과 <슬로베니아 트리엔날레> 본상을 수상한 바 있고, 국내 유일의 판화 전문 미술관인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2010년 개관)에도 작품이 소장돼 있다. 강동석의 목판화는 요철효과로 촉각적인 느낌을 강조한 것으로, 마치 거친 붓으로 거침없이 그린 것 같은 즉흥성과 역동성이 강조돼 보인다. 엠보싱을 매개로 시각적인 이미지를 촉각적인 경험으로 확장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홍익판화가협회는 1974년 창립했으며, 창립 당시 강호은, 강구훈, 곽남신, 김선, 김용익, 김장섭, 장석원, 이인화, 이일과 같은 작가들이 창립회원으로 참여했다. 그동안 홍익판화회에서 홍익판화가회로, 그리고 지금의 홍익판화가협회로 개명하는 과정을 거쳤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 1981년(제8회)에서 1998년(제26회)까지 협회 전시가 미술회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그리고 미술관 소장품에는 없지만, 판화사와 관련한 주요 동향으로 1980년대 민중목판화운동, 1995년 한국판화미술진흥회 설립과 함께 같은 해 열린 서울판화미술제가 있다. 


1980년대 국내 화단은 소위 순수미술 진영과 민중미술 진영 간의 이념대립이 첨예화된 시기였다. 당시 민중미술은 민중을 계몽하는 한편, 자신의 이념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줄 수 있는 주요 수단으로 벽화 운동과 걸개그림 그리고 민중목판화운동을 널리 전개하기에 이른다. 그 주요 작가로는 오윤(목판화), 정원철(리놀륨판화), 김봉준, 김진하, 김종억(김억), 김준권(수성 목판화), 남궁산(장서표), 류연복, 이철수(선 목판화), 이인철, 정비파, 홍성담, 홍선웅(기행 목판화)과 같은 작가들이 주목된다. 80년대에 이념 운동에 주력하다가, 이후 생태와 환경 문제로 운동의 폭을 넓히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5년에는 한국판화미술진흥회가 창립되었고, 같은 해 동 회를 주축으로 판화 전문 아트페어인 서울판화미술제를 개최했다. 시행 초기에는 판화를 대상으로 했지만, 이후 점차 판화와 함께 사진과 조각을 포함하면서 에디션 개념을 중심으로 그 성격과 대상을 확장했다. 1994년 서울정도 600년을 기념해 순수한 민간차원에서 기획된 <서울판화도시탐험전>을 모태로 하는, 판화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기치로 내건 서울판화미술제는 1995년 3월 프랑스 사가(SAGA)에 이어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린 판화 전문 아트페어이기도 하다. 진흥회는 전시와 함께 판화 전문지 <M.o.o.k>를 발간하기도 했고, 공모전 형식의 <벨트전>을 통해 신진작가 발굴과 육성에도 일정한 힘을 기울여오고 있다. 

그리고 이후 시대가 다변화하면서 미술관의 성격도 지향도 변하고 있다. 장르가 해체되고 형식이 파괴되면서 모든 장르와 형식이 경계를 넘어 하나의 주제 아래 수렴되는 식의 주제전 중심으로 재편되고, 여기에 진즉에 도입된 큐레이터 제도가 정착되면서 탈과 해체, 지평 융합, 학제 간 연구방식, 네트워크와 초연결사회 이론, 종 다양성과 문화이론과 같은 담론을 형식실험하고 담론 이후를 묻는 전시공학이 가속되고 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 미술관이 있고, 미술관 전시가 있었다. 장르적 특수성이 해체되고 형식이 확장된 판화 역시 미술관 전시를 매개로 판화 이후를 예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