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빛 그림, 빛을 그리워하다

고충환 | 미술평론가



현존. 존재가 현현한다는, 존재가 드러나 보인다는, 존재가 있다는 말이다. 이미 존재가 있는데 존재가 있다고 하는 것이므로, 동어반복인가. 그렇지는 않다. 하이데거는 존재 혹은 존재 자체와 존재자를 구분했다. 존재는 존재자의 본성 혹은 본질이면서 존재자의 잠재적인 가능성이다. 드문 순간에만 존재는 존재자의 표면 위로 자기를 드러내 보인다. 그렇다면, 그 드문 순간이란 언제인가. 존재자가 존재다움을 실현한 순간이다. 정리하면, 존재는 존재자가 존재다움을 실현한 드문 순간에 비로소 드러나 보이는 존재자의 본성이면서, 존재자의 잠재적인 가능성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빛의 현존이라고 부른다. 빛의 현존이란 주제를 이 말에 적용해보면, 빛이 빛다움을 실현한 드문 순간에 비로소 드러나 보이는 빛의 본성이면서, 빛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겨냥한 것이 된다. 물리적인 현상으로서의 빛, 화학적인 반응의 소산으로서의 빛과 같은 감각적 층위에서의 빛을 넘어 빛의 본성이 드러나 보이고 빛의 잠재적인 가능성이 자기를 실현한 드문 순간을 포착해 그리는 것이 된다. 신성한 빛, 숭고한 빛, 내면적인 빛, 심상으로 우러나는 빛의 순간 포착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원래 먼 것인데 마치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각경험을 아우라 그러므로 분위기라고 불렀다. 바로 그런 빛의 아우라를, 빛의 분위기를, 빛의 기미를 그린 것일 터이다. 실제로도 어스름한 화면이 자기 속에 희붐한 빛의 기미를 품고 있는 것 같은, 작가의 그림은 조명으로 치자면 간접조명에서처럼 빛을 간접적으로, 암시적으로, 숨기면서 드러내는 방식으로 접근해 분위기가 강한 편이다. 어스름한 화면이 발하는 희붐한 빛의 기미가 원래 먼 것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편이다. 나에게 빛이란 언제나 부재와 결핍(그러므로 먼 것)에 대한 그리움의 대상이라고 적은, 작가 노트에도 부합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떻게 이런 빛의 아우라를, 빛의 분위기를, 빛의 기미를, 참 빛 그러므로 원형적인 빛의 질감을 그려놓고 있는가. 빛을 소재로 한 작가의 작업은 평면과 입체를 아우른다. 입체에서 시작해 평면으로 확장해가는 편인데, 입체를 보면, 정사각형의 입방체와 긴 막대처럼 생긴 직사각형의 입방체를 일정한 간격으로 병렬 배치한다. 전면을 부드러운 색감으로 칠하고, 좌우 측면을 포함하는 4방을 금박으로 마감한다. 그러면, 간접조명에서처럼 측면과 배면에서 우러나온 금빛이 전면의 색감에 반영되면서 본래의 색감과 우러나온 금빛이 하나로 혼용된 것 같은, 형용할 수 없는 색감을 얻을 수 있다. 금빛과 금빛이, 금빛과 색감이 서로 반영하고 반영되는, 형언할 수 없는 빛의 질감을 얻을 수 있다. 

입체의 측면과 배면에 빛의 원천을 숨기는, 숨기면서 드러내는 식의, 빛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사용한 것에 기인한 것인데, 이런 간접적인 접근은 입체에서 평면으로 넘어오면서, 이번에는 화면 안쪽으로 깊은 공간감을 만들어 그 속에 빛을 숨기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수성 바탕지(ground, 템페라)를 사용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종이처럼 흡수하는 성질을 바탕 화면에 조성했을 것이다. 그렇게 조성된 바탕 화면은 색감을 머금는 성질이 있어서 그 위에 색감을 쌓아 화면 속에 깊이를 만들기에 용이한 부분이 있다. 

그렇게 바탕 화면을 금빛으로 처리하고 그 위에 엷은 색감을 연거푸 올려 만든 화면이 마치 어두운 화면 속에 시간의 지층을 숨겨놓고 있는 것 같은, 화면 안쪽에 빛의 원천을 숨겨놓고 있는 것 같은, 화면 안쪽에서 희미한 빛의 기미가 발원하는 것 같은, 화면 스스로 은근한 빛을 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둠이 빛을 머금고 있는 것도 같고, 거꾸로 빛이 어둠을 가두고 있는 것도 같은, 그 속에서 빛의 기운들이 서로 부딪고 스미는 것도 같은, 그리고 여기에 칠흑 같은 우주가 열리는 것도 같고, 우주라는 대지에 빛의 씨알(씨앗)을 흩뿌려놓은 것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에게 빛은 모든 생명체(씨알)를 품어내는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 라고 적고 있는 작가 노트에도 부합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빛 그림이라고 부른다. 빛 그림은 빛을 그리워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고도 했다. 여기서 빛은 존재가 발하는 빛, 그러므로 존재의 씨알을, 존재의 씨앗을, 존재의 원천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빛을 그리면서, 존재의 원천을 그리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