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이선영(미술평론가)
STUDIO 1750(김영현+손진희)의 ‘블루 아워(Blue Hour):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 전에는 북극의 식물들에서 영감받은 최근에 제작된 이색적 작품들이 나온다. 이번 전시에서 씨앗이나 씨앗 주머니, 그리고 식물의 생식기관이라 할 수 있는 꽃에 집중된 관심은 이들이 예술화한 기념비를 끝으로 그것들이 멸종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이 깔려있다. 인간 문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예술은 최후의 관찰자와 기록자의 역할을 해왔다. 물론 명확히 분류될 수 없는 생성 또한 감지한다. 최후와 최초는 연결될 수도 있다. 환경의 압력에 의해 종이 변종이 되는 순간이 그것이다. 브루스 매즐리시는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에서 종의 소멸은 처음부터 종의 기원과 함께 있어 왔으며, 멸종은 자연 선택에 따른 진화 과정에서 생기는 창조의 다른 측면이라고 말한다. ‘멸종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개별적인 투쟁, 즉 종간 투쟁과 종 내의 투쟁보다는 환경의 변화 때문에 일어난다.’(브루스 매즐리시)
블루 아워-개와 극대의 시간, 설치전경,2026
‘인류세’로까지 강조된 하나의 지배적 종은 지구 환경의 변화에 크게 개입해 왔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개와 늑대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을 통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는’ 상태를 은유한다. STUDIO 1750은 이 전시에 대해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한’ 시간 속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거나 혹은 처절하게 적응해 가는 생명체들의 찰나를 시각화한다’고 말한다. 기후변화에 의해 북극이 녹아 생기는 새로운 길, 요컨대 북극항로의 개척은 인류에게 기회가 될지 말지 알 수 없는데, 이를 추진하는 측은 유토피아적 청사진만 날린다.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대규모 기획이 추진될 때마다 결국 그 이익은 소수에게 돌아가고 나머지가 그 피해를 감당하는 구조가 되풀이됐던 경험은 한 현상에 대해 ‘개’와 ‘늑대’ 양면을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처음에는 자연만 축나는 듯하지만, 그 피해는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나비효과의 예가 알려주듯이, 피해는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며, 자자손손 대를 이어 지역을 넘어 전파된다.
오래전 그들이 유럽 여행을 할 때 무려 한 달 동안 썩지 않던 사과와 야채 샐러드를 보고 받은 섬뜩한 느낌은 자연을 다루는 자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게 했다. 이후 그들은 유전자 변형 식품(GMO)과 유전자 변형 생명체(LMO)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다. 이에 관련된 이전 작품 [LMO 3116]에서 뒤의 숫자는 먼 미래를 나타낸다. 생산량을 높이거나 유통기간을 늘리기 위해 먹을거리에 가하는 조작질은 당장에 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때 저걸 저렇게 했나?’하는 치명적인 시행착오가 드러나곤 한다. 그나마 그것은 그 폐해가 밝혀진 경우이고, 소리 없이 쌓이는 독이 더 무서운 것이다. STUDIO 1750의 작품이 단지 환경과 생태 문제에 대한 계몽 의식의 발로는 아니다. 다만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작품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의 치밀함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와 감탄, 그리고 그러한 소중한 것이 사라져서는 안된다는 생각 또한 깔리게 된다. 앎에의 의지가 한 주제를 전개시키는데 있어 지속과 도약을 가능하게 한다.
블루 아워-개와 극대의 시간, 설치전경,2026
전주의 공간 산아가든에서 열리는 ‘블루 아워...’ 전은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 옛날 고깃집을 개조한 곳으로, 작품들은 나무 색감의 30여 평 공간 여기저기에 설치된다. 인간 문명 또한 생태계의 변화같은 양상이 있는데, 자영업이나 지방이 힘들어지는 것도 그 예다. 식당은 정신적 양분을 섭취하는 미술 공간으로 변신했다. 인구 감소라는 한국의 상황은 보다 많은 유휴 공간을 변신의 압박 아래 놓이게 할 것이다. 환경의 압력은 이번 전시의 내용에도 포함된다. 예술은 근대 이래 늘 그런 압력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리 낯설지 않은 고난이다. 프리초프 카프라는 [생명의 그물]에서 ‘전체적인 진화 과정에 어떤 계획이나 목표, 또는 의도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진보에 대한 증거도 없다. 그러나 발생에 대한 인식가능한 패턴들은 존재한다. 그 중 수렴이라고 알려져 있는 하나의 패턴이 생물들이 비슷한 도전에 직면했을 때, 선조의 역사는 서로 다르더라도 비슷한 형태를 진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즉 환경의 압박은 모종의 변화를 유발하며, 살아남은 종의 전략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이번 전시 작품의 제목들이 대부분 그들이 관심을 가진 생명체의 이름이 포함된 것은 단지 이름(학명)이 존재라서가 아니라, 어느 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지 모를 취약한 존재들을 하나하나 호명해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다. 그들의 작품에 붙는 자연과 생태라는 코드는 환경에 대한 공통감각의 결과이다. 이번 전시에서 북극 식물에 대한 소재가 다뤄지지만, 그들의 근본적인 관심은 생명이다. 그럼에도 식물의 위상은 좀 더 독특하다. 발생의 순서도 지구상을 덮고 있는 영역도 식물이 우선적이며 지배적이다. 식물은 동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조성했다. 그만큼 식물의 위기는 모든 생명의 위기이기도 하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조건을 자기화하는데 힘쓴다. 북극이라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 생명의 본질적 면모가 드러날 수 있다. 6월에서 9월까지 이어지는 짧은 시기에 사는 북극 식물은 크기가 작다. 크고 화려한 열대식물과 달리, 수년간 몇 미리 밖에 자라는 것들도 많다.
황금빛 수술-북극담자리꽃회, 회전모터, 나무, 3D프린팅 오브제, 송풍기, 130(h)x90x90cm, 2026
황금빛 수술-북극담자리꽃회, 회전모터, 나무, 3D프린팅 오브제, 송풍기, 130(h)x90x90cm, 2026
식물로부터 영감을 받았고 전시 작품 중에는 북극 식물의 이미지를 압화 형식으로 자세히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식물은 진화의 압박에 의해 동물성을 획득한다. 동물을 식물이나 사물처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압박처럼 말이다. 한편 인공물은 자연처럼 변하기도 한다. 그들은 ‘내가 없는 틈에 자라는 가구’를 착상하여, 공기에 의해 부풀어 오르는 가구들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들의 이전에 발표한 많은 작품처럼 공기를 통한 움직임으로 생명력을 표현한다. 그들의 작품은 식물도 동물도 아닌 생명에 대한 상상의 결과이며, 미지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생태를 기념비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들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환경 속 변화된 존재들을 상상하고 시각화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변종 생물, 인공 환경 속 변화된 생명의 형태는 자연과 인공, 과거와 미래,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 존재들을 통해 환경 변화와 인간의 개입이 만들어낸 새로운 풍경으로 그려낸다’(STUDIO 1750)
단순한 재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 작품에서 소재는 구조적으로 파악되어야 했고, 움직임이나 조명을 통해서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현미경이나 망원경처럼 대상을 확대해야 하는 기구들은 잘 보이게 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한다.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이는 식물의 횡단면은 염색을 필요로 하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거리의 별들은 멀리서 오는 파장을 감지하여 시각적(때로는 청각적)으로 재구성되기도 한다. 대개 작은 것이 크게 확대되어 야광을 비롯한 화려한 색을 입는다. 그들의 이전 작품에서 인공 정원이나 심해 생물에 대한 관심이 표현된 작품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실제 식물원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는데, 푸른 식물들과 견주기 위해 색과 형태와 규모는 변화되어야 했다. 빛이 없는 심해의 생물을 드러내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의 실제 작품에 사용되었던 PVC 비닐 커튼을 겹겹이 쌓아 올린 작품 [박제된 연대기: 비닐지층(Vinyl Strata)]은 자연이 아닌, 자연에 상응한(또는 평행한) 그들의 작품이 인공언어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하얀 밤의 종소리-북극종꽃나무, 3D프린팅 모듈기둥, 비닐, 240(h)x100x100cm, 2026
하얀 밤의 종소리-북극종꽃나무, 3D프린팅 모듈기둥, 비닐, 240(h)x100x100cm, 2026
예술이라는 또 다른 인공적 생명의 원단인 셈이다. 마치 박물관의 수집물처럼 연출된 이 작품을 보고 미래의 고고학자들은 비닐과 플라스틱 퇴적물이 쌓인 지층에서 그 시대가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단서를 찾을지도 모른다. 북극은 물론 심해까지 뼏은 오염은 작가로 하여금 폐 비닐같은 해양 쓰레기로 [비닐 피쉬] 같은 괴물을 만들게도 했다. 북극의 지층이라는 상상력은 지금의 층을 상대화시킨다. 그들의 사전 조사에 의하면, 예전의 북극에는 야자수도 살았다고 한다. 마치 지금의 사막이 예전에는 바다였던 것과도 같다. 현재를 절대화하여 회복할 수 없는 오류를 저지르는 문명에 반대하여, 보다 장기 지속의 시간대를 염두에 둔다. 한편 알록달록 야광 빛을 발하는 화려한 색감은 ‘예쁜 쓰레기’를 생산하는 대열에 미술도 가세할지 모른다는 자기반성적인 자세가 있다. 그들은 3D프린터 등을 첨단 기계를 활용하여 자연의 조직화를 모방한다. 크기의 변화에 유연하며, 한 치의 오차 없이 아귀가 맞아 돌아가야 하는 정교함은 자연으로부터의 영감 외에, 과학적 분석과 기술적 과정이 어우러져야 한다.
1972, 1975년생 비슷한 또래의 두 작가 김영현과 손진희는 2014부터 ‘STUDIO 1750’이라는 이름으로 협업하면서 조소, 디자인, 건축 같은 여러 기반의 방법론은 두루 활용해 왔다. 유학 이후 국내외의 여러 곳을 다니며 작업하고 발표를 해왔기에, 이케아 가구처럼 조립의 방식이 많다. 진화적으로 그들의 작품 목록을 보자면, 구성요소를 확정하고 확장하는 그들이 기본 방식은 유목적 삶에 적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특정한 장소, 장르, 재료, 구성원에 제한을 두지 않는 유목적 작업 방식은 고정된 정체성보다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생성되는 작업의 가능성에 주목한다’고 말한다. [황금빛 수술: 북극담자리꽃 (Mountain Avens)]은 재료인 비닐과 털이 보온재라서 극한의 환경에서 생존하는 생태를 보여준다. 가운데의 회전하는 수술은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작동하는 생명의 양태다. 그들의 작품에 회전 모터나 송풍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형태 만큼이나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씨앗주머니 꽃, 투명우레탄비닐, 천, 송풍기, 타이머 180(h)x320x320cm, 2026
북극버들, 투명우레탄비닐, 아크릴관, 송풍기, 105(h)x65x65cm, 2026
북극버들, 투명우레탄비닐, 아크릴관, 송풍기, 105(h)x65x65cm, 2026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작품에 중요한 요소인 시간은 생명의 발생과 소멸의 축이며, 진화 또한 마찬가지다. 식물은 동물에 비해 수동적인 듯하나 붙박힌 자리에서 다차원적인 작용을 통해 생존하고 번식한다. 바람은 씨앗을 퍼트리게 하고 매개자인 동물을 끌어들인다. [하얀 밤의 종소리: 북극종꽃나무(Arctic Bell-flower Tree)]는 초롱 모양의 꽃이 달린 나무의 모습으로, 3D프린팅으로 제작한 잎을 쌓아 올려 조립했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듈 구조는 작업을 통해서 재연되고 확장될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은 구동하기 위해 실제의 기계가 필요하다는 것과 별개로, 기하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연의 미시적인 모습이 그렇기도 해서다. 그래서 자연은 일찍이 기계로 간주되었고, 자연의 운명을 답습하는 인간 또한 기계가 되어간다. 기계처럼 선재하는 질서(프로그래밍)가 새겨진 자연은 경이로우며 이는 종교를 비롯한 인간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 하지만 인간이 그 질서를 알고 지배한다고 믿었을 때 인간에게도 자연에게도 불행이 시작되었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자체적으로 소리를 낼 수 없지만, 종모양의 꽃은 소리를 상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공(共)감각적이다. 많은 종이 한번에 울린다면 마치 사이렌처럼 위험을 경고하는 소리일 수 있다. 같은 구조의 반복은 식물에도 선명한 프랙털 형태이다. 구조의 반복은 밀도를 상실함 없이 강도를 높여간다. 자기반복적인 구조는 나무의 특징이다. 로베르 뒤마는 [나무의 철학]에서 ‘나무는 몇 살을 먹었을지라도 완벽한 발달 계획을 갖고 있는 초보적인 작은 식물의 구조를 반복한다’고 말한다. ‘기둥에서 출발하여 큰 가지는 무수하게 자잘한 가지들을 분지한다. 이러한 분지 체계는 추상적인 계획과 수학적 분석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러한 분석들은 번개만큼이나 강줄기에 잘 맞고 나무에게서 만큼이나 혈액순환 기관의 문맥에 잘 적용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무는 ‘물리적 체계의 상호작용으로 내부의 직경과 힘이 작용하는 흐름의 법칙과 최적의 배열과 공간 점유의 법칙을 결합하면서 발달한다.’(로베르 뒤마)
박제된 연대기-비닐지층, 나무, PVC 비닐, 160(h)x100x30cm, 2026
작품 [씨앗주머니 꽃(Seed-Pocket Flower)]은 가운데를 감싸안는 바깥층들이 움직인다. 강한 조명은 나타남과 감춤의 주기를 극적으로 만든다. 옛 속담에도 있듯이 씨앗은 썩어야 싹을 틔운다. 그렇게 성장하여 또 다른 씨앗이 생성될 것이다. 이러한 당연한 자연의 순리를 배반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재, 식물 판 ‘노아의 방주’인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가 그 대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들은 이 저장고의 이미지를 움직이는 거대한 꽃으로 표현했다. 형태의 반복적 움직임은 격세유전적이다. 작품 [북극버들(Arctic Willow)]은 식물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압력의 변화를 표현한다. 팽팽하게 부푼 투명 우레탄 비닐 재질의 형태는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이전 작품에서는 센서 등을 활용하여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자연의 과정에서 수동적인 적응 뿐 아니라 창조적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일찍이 다윈은 진화의 힘에 대해 ‘인간의 미약한 노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며, 자연은 이것을 통해 자신의 예술을 펼친다’고 말한 바 있다.
출전; 2026 아트허브 평론지원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