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6 16회 광주비엔날레》(2026.9.5-11.15)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6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작품론
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2026 9.5 – 11.15
제임스 T. 홍 : 반복의 힘에 관하여
김수연
국가 권력 아래에서 자행되는 수많은 일들은 얼마나 묵인되고 또다시 들춰지는가. 국가권력은 때로는 한없이 덧없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권력이 행사되는 순간에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국가가 무언가를 승인하고 정당화한다는 것은 그 이름 아래 제도적 억압과 폭력이 더욱 쉽게 행해질 수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그 실수를 인정하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은 마치 과거의 비극을 모두 잊어버렸다는 듯이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며 끝없이 반복된다. 제임스 T. 홍(James T. Hong)은 제 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내 삶을 바꿔야 한다》에서 이러한 국가 권력 아래에서 자행된 사건들을 다시 수면으로 건져 올린다.
731이라는 숫자를 보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누군가에게는 낯선 숫자 조합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분명 대다수는 ‘마루타’라는 용어와 함께 익히 들어왔던 일본의 ‘731부대’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731부대를 떠올릴 때 흔히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해온 희생자들의 참혹한 사진을 떠올린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에게 무언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비엔날레 본 전시관 제2전시실에 들어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맨 안쪽 가벽에 17장의 드로잉이 일렬로 나열되어 있다. 당최 알 수 없는 모호한 이미지들이 반복되며 점점 흐려져 가는 이 드로잉들에서 우리가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것은 모든 드로잉 왼쪽 상단에 적힌 ‘M.17’이라는 표기뿐이다. 이는 작품 제목인 〈M.17〉(2026)과 일치하며, 그 의미는 드로잉 오른편에 있는 두 개의 서류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왼쪽 서류에는 CONFIDENTIAL이라는 문구와 함께 일부 표기들이 먹칠이 되어 있어, 해당 문서가 기밀 서류로 분류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 문서에는 M. 17을 비롯하여 M.으로 시작되는 표기가 붙은 삽화 총 6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오른쪽 서류에는 17이라는 표기와 함께 장기의 감염 상태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다. 이를 통해 마침내 M.17이 한 인간을 지칭하며, 앞선 17점의 드로잉들이 M.17의 신체 상태를 기록한 삽화이자 작가가 이 삽화를 반복해 그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또한, 탄저균 감염으로 소장과 대장에서 출혈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록을 통해 이 인물이 731부대의 생화학 실험에 동원된 희생자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기록은 결과와 수치를 토대로 이루어진다. 관람객들이 드로잉 오른편에서 확인한 기밀 서류는 작가가 마틴 퍼먼스키(Martin Furmanski) 박사에게 제공받은 731부대의 탄저균 실험에 관한 「A 보고서」의 일부이다.1) 이 보고서에는 탄저균 실험 희생자의 감염 상태와 그 경과가 삽화와 수치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삽화는 탄저균 실험 희생자의 감염 상태와 그 경과를 기록한 것임을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삽화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서에 기록된 희생자의 감염 상태 기록을 확인한 뒤 다시 삽화와 드로잉을 마주하는 순간, 그 이면에 자리한 거대한 국가 폭력의 실체를 서서히 목도하게 된다. 국가가 자행한 폭력의 결과는 연구 자료라는 명목 아래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그 폭력의 참혹함을 온전히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작가는 동일한 삽화를 17차례 반복해서 따라 그리는 방식을 시도했다. 이러한 반복은 권력 아래 행해진 폭력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기 위한 시도이자, 기록 속에 가려져 잊히기 시작하는 사건들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 서류로만 남은 희생자의 흔적들을 끝없이 환원하고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러한 작은 반복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망각된 순간들을 다시금 어떻게 사유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공간에는 실험의 참혹한 현장을 담은 사진도, 희생자의 목소리도 존재하지 않지만, 작가는 가해자가 남긴 기록을 반복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문서 속에 머물러 있던 폭력과 공포의 흔적을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불러낸다. 이러한 반복은 기록의 표면 아래 잠재되어 있던 공포를 서서히 드러내면서, 망각되어가는 폭력의 역사를 끊임없이 환기하고 기억해보려는 하나의 시도로 작동한다.
여전히 믿기 어렵지만 일본은 이 공포를 겪은 희생자들에게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3전시실에 들어서 우리가 보게 될 제임스 T. 홍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국가 권력 하에 자행된 수많은 행위에 대한 사과들(apologies)을 접할 수 있다. 무려 10시간 43분에 달하는 〈사과 Apologies〉(2012-)는 현재 200명의 국가 대변인이 사과하는 장면이 이어진다.2)
우리가 기억하는 국가 원수들, 그리고 낯선 국가 원수들. 이들이 발언하는 사과들은 모두 공식 석상에서 이루어졌으나, 우리는 이들이 행하는 사과의 배경이 되는 사건을 때로는 알고 있기도 하고, 모르고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한국인 관람객들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에 관한 발언과 일본 총리나 내각방장관이 말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발언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 프랑스나 캐나다, 독일, 벨기에 등의 국가 대변인들이 행하는 사과에 대해서는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사과 방식과 태도를 가만히 살펴보게 된다.
진정성 있는 사과란 무엇인가. 우리는 때때로 사과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사과를 하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사과를 받는 사람이 그 사과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사과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과는 사과를 받는 사람 혹은 피해자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에는 대체로 공감할 것이다.
〈사과〉에 등장하는 국가 대변인들의 사과는 사과의 의미에 대해 곱씹게 만든다. 가벼운 인사말, 누가 작성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정제된 원고를 읽는 대통령, 발표 직전과 직후의 무의미한 박수 세례, 사과 방송 송출을 위한 인력들, 피해자는 부재한 발표 자리, 당사자 동의 없이 선언되는 화합. 이 모든 것은 국가가 표명하는 사과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자아낸다. 또한, 가만히 영상을 보다 보면 동일한 사과가 몇 해에 걸쳐 반복되거나, 국가만 다를 뿐 유사한 사태들이 세계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작품의 연도 표기에서 알 수 있듯, 이 작업은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며 우리는 앞으로도 이러한 사과의 장면을 끊임없이 목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태를 바라보며, 공식 석상에서 이루어질 미래의 사과 장면들을 이미 머릿속으로 그려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임스 T. 홍은 두 작업에서 모두 반복이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M.17〉이 반복적인 드로잉을 통해 국가 권력에 희생된 피해자를 호명하는가 하면, 〈사과〉는 국가 대변인들이 행한 무수한 사과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반복은 역사적으로 국가 권력 하에 얼마나 수많은 일들이 행해졌는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우리가 이러한 사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유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반복이라는 것은 때로는 지겹고 따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반복이 언제나 옳은 방식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반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을까. 특정 사건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논의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는 “언제까지 그 이야기만 할 거냐, 지겹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피로감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이야기를 멈출 수는 없다. 반복은 잊혀졌던 수많은 일들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매우 짧은 순간일지라도 사람들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제임스 T. 홍은 이러한 반복을 통해 끊임없이 역사적 트라우마와 현대적 불의를 소환한다. 어쩌면 반복이 끊임없이 반복되면, 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수연, kudoksy@naver.com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과정 재학중. 부산현대미술관 《포스트모던 어린이 2부: 까다로운 어린이를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 마세요》(2023)와 《자연에 대한 공상적 시나리오》(2023) 전시 해설을 진행하였다. 한국 동시대 미술에 관심을 두고 있다.
2) 제임스 T. 홍은 은퇴한 공직자의 사과나 개인적 감정의 표출로 이루어지는 사과를 제외하고, 권력의 자리에서 전달되는 사과를 중심으로 이 작업을 제작했다. 2012년부터 제작해 온 이 영상 작업은 현재 제 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내 삶을 바꿔야 한다》에서 총 200명의 국가 대변인이 행한 사과를 모아 선보이고 있다. 1937년 주미 일본 대사의 사과에서부터 2023년 네덜란드 국왕까지의 사과를 전시에서 살펴볼 수 있으며, 이 작업은 현재에도 계속 진행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