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6 16회 광주비엔날레》(2026.9.5-11.15)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6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작품론
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2026 9.5 – 11.15
소흐랍 후라: 사진 바깥으로의 응시
민세현
‘엄마’와의 기억에는 애틋함과 그리움만큼이나, 끊임없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쌓여 온 갈등과 상처의 응어리 또한 자리하곤 한다. 마음 깊숙이 쌓여 묵혀 두었던 감정은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에 이르러 분출되고, 그때 우리는 친밀함 속에 감춰진 불편함과 애정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원망을 마주한다. 가족은 가장 가깝고도 각별한 사이이기에 그 안에서 경험하는 감정의 층위 역시 더욱 깊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흐랍 후라(Sohrab Hura, 1981- )는 이러한 감정의 복합성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였다. 1999년 어머니가 편집성 조현병(paranoid schizophrenia)을 진단받은 이후, 그는 2005년부터 약 10년에 걸쳐 불안과 위안이 함께 머물던 집안의 내밀한 풍경을 담아냈고, 이를 〈씁쓸하고도 달콤한 Bittersweet〉(2019)으로 완성하였다.
〈씁쓸하고도 달콤한〉은 후라의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된다. 어머니의 진단에 관한 설명을 끝으로, 스크린에는 어머니와 반려견 엘사, 그리고 후라 사이의 사적인 일상이 펼쳐진다. 엘사 곁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어머니, 담배를 꼬나문 채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머니, 카메라를 든 후라를 바라보며 눈을 치켜뜬 엘사의 모습 등 일상의 조각들이 영상과 사진으로 짜집기되어 전달된다. 이때 이미지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고주파 소리는 단순히 삽입된 배경음이 아니다.
이는 후라의 앞선 작업인 〈떠남에 대한 제안 A proposition for Departure〉(2017)에서 시도한 이미지-사운드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미지의 명암과 톤을 신시사이저로 스캔해 소리로 변환한 뒤, 이를 영상에 덧입혔다. 후라는 영상 전반에 흐르는 소리를 당시의 기억에 얽힌 감정의 위치를 짚어 주는 지도에 비유한다.1) 이로써 이미지와 소리가 교차하는 가운데 기억의 편린을 좇으며 영상 너머에 기저한 ‘씁쓸하고도 달콤한’ 감정을 경험한다.
후라는 사진을 침묵의 매체로 한정하지 않고, 이미지의 시각적 요소로부터 청각적 효과를 추출함으로써 사진의 표현 가능성을 기존의 범주 바깥으로 확장한다. 사진은 과거를 회상하는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포착된 순간이 감각적으로 전달되는 방식으로 재탄생한다. 후라의 작품은 더 이상 완벽한 타인의 경험으로만 남겨지지 않는다. 완전한 타자도, 완전한 동일시의 대상도 아닌 그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후라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게 된다.
코너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송출되는 영상을 통해 후라의 일상에 초대받고, 사진을 통해 장면 너머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그 옆으로 이어진 흰 벽에는 손글씨와 사진들로 구성된 〈삶은 다른 곳에 Life is elsewhere〉(2005-2011)가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후라와 어머니, 두 인물의 내밀한 진술을 제시하며 각자의 목소리에 담긴 솔직한 감정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한다.
가정의 혼돈 속 파편화된 삶을 살아온 후라는 카메라를 들어 어머니와 자신, 그리고 엘사가 살아가는 가장 취약한 장소를 다시 바라본다. 일기와 서신의 형식으로 전해지는 그의 고백은 단편적으로 제시된 사진들과 어우러져 어머니가 그에게 사랑과 두려움이 뒤엉킨 애증의 존재였음을 드러낸다. 악화된 증상으로 인해 터져 나온 어머니의 고함과 폭력 앞에서 후라가 감내해야 했던 현실을 증언하는 벽을 보며 그 고통의 일면을 마주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된다. 〈씁쓸하고도 달콤한〉과 짝을 이루는 작품 〈삶은 다른 곳에〉는 타인에게 솔직히 내보일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침묵하기도 어려운 굴레 속 쌓여 온 울분과 그럼에도 서로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건네는 위안을 함께 보여주며 두 감정이 얽힌 자리에 가족이라는 존재가 놓여 있음을 환기한다.
사진에서 어머니와 엘사는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위태롭고 침울하게 등장한다. 상반된 감정이 교차하는 일상에서 엘사는 불안정했던 후라와 어머니의 관계의 한 축을 차지한다. 갈등을 해소하거나 관계를 회복하는 대신, 엘사는 혼란스러운 어머니의 곁을 기꺼이 지키며 그들의 일상을 함께했다. 불행으로 얼룩졌다고 여겼던 삶의 이면에도 사랑은 존재했고, 그렇게 가족의 일상은 고독과 애정이 공존하는 가운데 지속되었다. 결국 후라가 말하는 삶의 ‘다른 곳’이란 환상으로 채워진 이상향이 아니라, 벗어나고 싶었으면서도 끝내 외면할 수 없었던 삶의 자리, 고통과 위안이 뒤엉켜 지속되는 바로 그곳이었다.
가족 내부의 혼란과 취약한 일상을 응시하며 삶의 질서를 정돈하고자 했던 후라의 시선은 열기와 흥분으로 들끓는 축제의 한복판으로 향한다. 빈백에 앉아 스크린을 올려다보면, 어두운 전시장과 대비되는 붉은빛으로 물든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밤바다를 배경으로 누군가는 머리로 코코넛을 깨뜨려 터져 나온 즙을 얼굴에 들이붓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헐벗은 채 채찍 자국이 가득한 등을 내보이며, 온몸을 붉은색으로 칠갑 하고선 무아지경에 빠져 춤을 추기도 한다. 관람자는 광기로 휩싸인 분위기를 느끼며 의례의 한가운데에 서 그들을 관찰한다.
〈해안 The coast〉(2019)은 인도 타밀나두 지방의 종교 축제 기간에 밤바다로 뛰어드는 신도들의 모습에 주목한다. 황홀경(trance)에 빠진 그들은 본능에 충실한 감정을 분출하며 해방의 순간을 맞이한다. 〈씁쓸하고도 달콤한〉에서 소리가 개인의 사적인 일상으로 초대했다면, 〈해안〉에서는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날카로운 소리들이 영상 내내 귀를 파고들며 의례의 중심에서 혼란을 느끼는 한편, 현실에서 이탈된 듯한 기묘한 도취감을 선사한다.
격렬했던 축제 현장을 벗어나 화면은 밤바다로 전환된다. 소음과 광기에 사로잡혔던 신도들은 거센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향해 과감히 몸을 내던진다. 그들의 육체와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날것의 상태로 돌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목도하며 다시 고요한 소강 상태에 이른다.
후라는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을 매개로, 종교와 의례 행위가 깊숙이 침투한 인도의 현실을 드러낸다. 의례 가운데 마주하는 환상적 경험은 영상 말미에 이르러 파도와 함께 사라진 듯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바다의 정화 작용은 이러한 순간이 일시적으로 지나갈 뿐, 그들의 비일상적인 행위는 앞으로도 되풀이될 것임을 암시한다. 스크린 뒤편에 설치된 사진들은 영상에 미처 드러나지 않은 축제의 또 다른 단면을 제시한다. 한층 여과되지 않은 이미지들은 축제의 열기 속에서 범람하는 폭력과 욕망의 현장을 보여준다.
사진에는 강렬한 플래시에 노출된 탓에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 등장한다. 실제 혈흔인지 핏빛의 페인트인지 모를 것으로 뒤덮인 채 허공을 공허하게 응시하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공공연한 거리에서 짙은 애정행각을 벌이는 연인의 모습도 포착된다. 서로 다른 장면들을 담은 사진들은 어떠한 인과관계나 서사적 맥락을 형성하지 않은 채 무작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러한 파편적 구성은 개별 이미지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후라가 목격한 인도 거리의 혼란스러운 현실을 은유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영상이 소리와 움직임을 통해 의례의 광기와 집단적 도취를 감각적으로 전달한다면, 사진은 파편화된 장면들을 통해 사회의 혼란스러운 이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결국 객관적인 사실을 낱낱이 전달한다고 믿어지는 시각 이미지 역시 현실의 전부가 아닌 특정한 매체와 시점 속에서 일부만을 드러내는 데 그치고 만다. 후라는 화면에 나타난 것과 끝내 포착되지 않은 것 사이의 간극을 보여줌으로써, 하나의 이미지나 매체만으로는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사회의 복잡한 층위를 계속해서 추적해 나간다.
후라는 사진에서 출발해 텍스트와 이미지의 협업, 영상과 소리의 협주를 시도하며 사진의 변주 가능성을 탐색해 왔다. 그의 작업은 개인의 내밀한 일상에서 사회의 복잡한 현실에 이르기까지, 보다 확장된 시선으로 삶의 여러 단면을 들여다본다. 매체적 실험을 통해 현실을 포착하고, 재현하는 이미지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며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스크린 앞에 서서 저마다 다른 삶의 형태를 마주하고, 후라의 시선을 좇아가며 작품이 제기하는 문제를 다층적으로 탐색하기를 기대한다.
민세현(1999) gomsenee@gmail.com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수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현대미술 및 동시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ㅡㅡㅡㅡㅡ
1) Sohrab Hura, “Spill, Huis Marseille Museum for Photography 2021”, Sohrab Hura, September, 2021, https://sohrabhura.com/14-Spill-Huis-Marseille-Museum (2026년 10월 12일 검색)
참고문헌
Hura, Sohrab. “Spill, Huis Marseille Museum for Photography 2021”, Sohrab Hura, September, 2021. https://sohrabhura.com/14-Spill-Huis-Marseille-Museum (2026년 10월 12일 검색).

소흐랍 후라(Sohrab Hura), 〈씁쓸하고도 달콤한〉, 2019,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종이, 13분 48초, 작가 제공 ⓒ 민세현

소흐랍 후라(Sohrab Hura), 〈해안〉, 2013-2019,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컬러, 60.3 X 40 cm ⓒ 민세현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