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6 16회 광주비엔날레》(2026.9.5-11.15)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6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작품론
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2026 9.5 – 11.15



진 바스: 완결되지 않은 낯선 신체



강혜은


누구나 분명 스스로가 완전히 낯선 타인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 혹은 사진에 찍힌 나의 표정과 신체의 외형을 새롭게 발견할 때, 우리는 익숙했던 나에게서 멀어져 스스로를 낯설어 하며 진정한 나는 무엇인지 고민에 빠지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내가 인식하지 못한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단일한 실체로서 나는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호주 브리즈번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진 바스(Jean Barth, 1993-)는 이와 같은 정체성, 그리고 신체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져왔다. 회화를 전공한 진 바스는 3D 모델링 기술을 활용해 아바타를 제작하여 디지털 장면을 구성하고, 이를 애니메이션 비디오로 변환하거나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한 유화로 전환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1) 유연하게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진 바스는 이번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에서 매체의 범위를 조각으로 확장한 《응집된 영혼 The Clumped Spirit》(2024) 연작을 선보인다.

분자처럼 여러 작품이 널브러져 있는 제1전시실에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갈색의 전시실 바닥 위 무기력하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진 바스의 작품을 발견하게 된다. 3D 프린팅 레진을 통해 이루어진 신체 근육과 뼈의 정교한 구현, 그리고 옆으로 기울어진 자연스러운 자세는 〈응집된 구성(휴식) Clumped Composition (Resting)〉(2024)이라는 작품명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과 닮아 있어 친근감을 유발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상도 잠시, 아연으로 코팅되어 차갑고 서늘한 회색빛의 표면과 동그랗게 움푹 파여 비워진 얼굴은 우리 눈 앞에 놓인 인물이 단순한 휴식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쳐 쓰러진, 혹은 어쩌면 죽음에 가까운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연상시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의아함을 품은 채 전시실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놓인 회색 형상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들은 하나의 통합된 신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손 옆에 또다른 손이 겹쳐지고, 발 옆에 또다른 발이 겹쳐지는 중첩된 형상은 마치 디지털 시스템에서 오류가 발생한 듯한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신체에 박혀 있는 사과, 블루베리, 바나나 등의 과일과 채소는 한 입 베어 물어진 채 여러 작품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대부분의 형상에서 표정이 과일에 가려져 있거나, 혹은 이목구비가 표현되어 있지 않아 인물의 감정을 읽어낼 수 없으나, 담담한 표정이 담긴 잘려진 두상은 권위를 얻은 듯 높은 좌대 위에 올려져 기괴한 낯섦을 자아낸다. 우리는 이러한 진 바스의 작업들이 인간의 신체를 묘사한 형상임을 예측하고 있지만, 실제로 구현된 구조와 형태는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로부터 한참 벗어나 있기에 완결된 신체에 대해 지니는 우리의 인식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교란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리넨에 유채로 채색된 스크린 프린트 작업 회화 〈응집된 영혼(공허) Clumped Spirit (Void)〉(2024)과 함께 전시된 〈응집된 구성(퍼포먼스 캡처) Clumped Composition (Performance Capture)〉(2024)은 첫 번째로 마주한 작품과 동일한 자세로 바닥에 누운 채 놓여 있다. 여기서 바닥에 밀착한 신체는 우리의 인식을 다시 한번 흔들어 놓는다. 바닥과 접촉한 형상은 이성을 겸비한 주체로서의 인간 형상에 무기력함을 스며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흔히 인간은 이성이라는 존재를 통해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특성을 지닌다고 평가한다. 그에 따라 인간을 재현할 때, 머리를 신체의 가장 상단에 두어 하늘을 향하게 하고, 두 다리로 꼿꼿하게 서서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존재로 연출한다. 그러나 진 바스는 그러한 인간 형태를 거부한다. 진 바스의 인간은 바닥에 접촉하고, 몸을 웅크리고, 벽에 의존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존재한다. 이 ‘응집된 영혼’들은 인간을 정의하는 익숙한 경계를 흔들며, 인간 신체의 정상성이라는 기준에 대해 우리에게 되묻는다. 이에 단절된 손가락과 팔을 이어 붙인 흔적, 그리고 부품을 생산할 때 찍어낸 듯한 장식이 더해져 이러한 인상을 한층 강화한다. 

이곳의 회색 조각에는 결코 확정적인 것이 없다. 몸을 뒤집어 물구나무를 서서 위태롭게 머리로만 온몸을 지탱하거나, 벽에 아슬아슬하게 기대어 곧바로 쓰러질 듯한 신체의 취약함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며 자신의 무게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잠재적인 힘을 내비치기도 한다. 또한 여러 겹으로 중첩된 신체의 표현은 본질로부터 분리되어 해체되는 형상이지만, 이는 하나의 덩어리로 압축되어 단일한 본질로 향하는 수렴의 형상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신체에서 피어난 과일은 재생과 생명의 가능성을 암시하지만, 그것이 뿌리내린 회색 지대에는 활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부패와 죽음의 이미지를 동시에 환기한다.

진 바스는 닫혀 있는 결과가 아닌, 열려 있는 대립적 과정의 상태들이 하나의 인간 형상 안에서 공존하는 모습을 살핀다. 이는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결국 진 바스는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이제껏 온전한 하나로 귀결된다고 인식했던 인간의 실체는 존재하는가? 우리가 인간의 신체라고 정의 내리는 형상은 어떤 기준에 의해 규정되는가?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나 자신을 낯설게 보는 순간은 익숙했던 스스로의 모습에 균열을 일으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서 나를 다시 감각하게 만든다. 진 바스는 우리에게 ‘낯설게 보기’를 제안한다. 




강혜은 hynnue@gmail.com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과정 재학 중. 한국 현대 실험미술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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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Queer Australian Art, “Jean Barth,” https://queeraustralianart.com/database/artists/james-barth (2026년 10월 18일 검색).



진 바스(Jean Barth), 〈Clumped Composition (Resting)〉, 2024, 
3D 프린팅 레진, 아연 스프레이 코팅, 27 x 100 x 110 cm (비정형). ⓒ 강혜은




진 바스(Jean Barth), 〈Clumped Composition (Crouching)〉, 2024, 
3D 프린팅 레진, 아연 스프레이 코팅, 60 x 60 x 110 cm. ⓒ 강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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